소액주주운동 이야기

도서명 소액주주운동 이야기
저 자 대니엘 R. 피셸 / 김정호 역
페이지수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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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소개

이야기 시리즈 27


상세 내용


소액주주운동 이야기.pdf


최근 우리 나라에서도 소액주주 운동이 세를 불려가고 있다. 제일은행의 신광식 행장 등을 상대로 제기된 소액주주 대표소송, 누적투표제, 사외이사 및 감사제의 도입, 소수주주권 행사 요건의 완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과 증권거래법 개정 움직임 등은 모두 소액주주 운동의 구체적 수단들이다. 소액주주 운동이 우리 나라 만의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도 1970~1980년대에 그같은 움직임이 있었다. 이 글은 미국 시카고 대학교 법대의 차기 학장 지명자인 대니엘 피셸(Daniel R. Fischel) 교수가 이 글을 쓰던 당시(1982년) 미국에서 유행하던 소액주주 운동을 통렬히 비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가 지적하는 문제들은 우리 나라의 상황에도 거의 그대로 맞아 들어간다. 그의 글을 간단히 요약하고자 한다.


주식회사와 기업이론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법석을 떠는 것, 그것이 바로 피셸 교수의 눈에 비친 소액주주 운동이다. 그의 시각은 경제학의 기업이론으로부터 출발한다. 기업이론에 의하면 기업이란 계약의 복합체(nexus of contract)이다. 자본을 제공한 주주와 경영자, 원료 공급자, 채권자, 유통업자 등이 자발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는 현상이 바로 기업이다. 이 중에서 소액주주 운동가들이 문제시하는 것은 주로 주주와 경영자가 서로 다른 사람이어서 발생하는 대리인 비용의 문제이다. 대리인 비용이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등한시하고 게으름을 부린다든가, 회사의 재산을 빼돌린다든가 하는 등의 현상 때문에 발생하는 자원의 낭비를 말한다. 경영자와 주주가 같은 사람이 아닌 한 대리인 비용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러나 잘 발달된 주식시장, 자본시장, 상품시장에서의 타사와의 경쟁, 자신의 몸값을 높이려는 경영자들의 노력, 회사의 재산을 빼돌리는 행위에 대한 법원의 제재 등에 의해 대리인 비용은 상당한 수준으로 낮아져 있다. 소액주주 운동가들이 주장하는 식으로 경영자들의 행위에 간섭하게 되면 대리인 비용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경영자들이 안전만을 추구하게 되어 주가의 하락이라는 더 큰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


존재하지도 않는 문제

개혁론자들은 주식회사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조차 증명하지 못하고 있다. 경영자들의 위법 행위, 또는 유수 대기업들의 도산 같은 일을 불건전한 지배구조의 결과라고 그들은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경영자가 환경법 등의 법규를 위반하는 것은 회사의 이익, 결과적으로는 주주의 이익을 위함이다. 그것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을 지는 모르지만 지배구조의 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법을 어겨가면서까지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을 추구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대기업들의 도산도 지배구조의 문제와는 관련이 없다. 그것은 전반적인 경기 상황의 악화 때문이지 지배구조가 잘못되어서 생긴 현상은 아니다. 개혁론자들의 주장은 허구에 기초해 있다.


주식회사의 사회적 책임, 도덕적 책무를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인간 뿐이다. 오직 인간만이 의무와 책임을 부담할 수 있다. 그런데 기업은 계약의 덩어리이다. 즉 그것은 실체가 아니라 법에 의해서 만들어진 가상의 개념일 뿐이다. 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을 부담하는 것은 결국 주식회사의 주주와 근로자, 소비자 등 기업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있는 자연인들이기 때문이다. 주식회사를 통해서 사업을 한다고 해서 다른 부담을 져야 할 이유는 없다. 기업은 국가에 의해서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에 사회에 대해서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기업은 국가의 피조물이기 이전에 자발적 계약의 소산이다. 국가가 없었더라도 주식회사는 자발적으로 형성되었을 것이다.


소액주주 민주주의

대다수의 소액주주들은 자신이 직접 회사를 경영을 하지 않더라도 유능한 경영자의 경영능력으로부터 혜택을 보기 위해 주식을 산다. 즉 자기가 직접 경영을 하지 않고도 높은 투자수익을 얻기 위해 주식을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개혁론자들은 마치 주주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싶지만 기회가 없어서 못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소액주주들의 경영참여, 또는 주주민주주의는 실현되지도 않을 것이고 실현되어서도 안 된다. 주주들이 택할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대안은 마음에 들지 않는 기업의 주식을 팔아 치우는 것이다. 그것은 경영자들에게 매우 강력한 위협수단이 된다. 주주민주주의는 주주들을 위한 것이 아니다. 주주민주주의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그것을 주장하는 개혁론자들과 규제당국이다.


사외이사제

많은 사람들이 경영진을 감시할 사외이사제가 필요하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일상적인 경영업무와 감독업무가 확연히 분리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경영에 대해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 즉 사외이사들이 회사의 중요한 결정들에 대한 감독을 제대로 할 리 없다. 결국 회사의 고유한 업무에 대해서는 거수기 역할만 할 가능성이 높다. 사외이사는 오히려 여러 가지의 비용만을 주주들에게 부담시킬 것이다. 그들에게 직접 지출되는 비용은 말할 것도 없고, 그 밖에도 적대적 M&A의 가능성을 줄임으로써 대리인 비용을 높이게 된다. 어쩌면 개혁론자들이 사외이사제를 주장하는 이유는 경영의 효율성 때문이 아니라 공익의 추구에 있는지 모른다. 그들이 원하는 대로 사외이사들이 회사의 이윤 극대화보다는 여론의 동향을 좇아서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면 회사는 준공공적 성격의 기관이 되어버리고 투자수익률은 낮아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투자자들 전체에 손해를 안겨 준다.


경영자의 책임에 대한 논쟁

경영판단의 원칙이란 경영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내린 판단이 아닌 한 사후적으로 실패한 판단이라 할지라도 사법 심사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경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내린 결정만이 사법판단의 대상이 된다. 개혁론자들은 법원의 이 같은 원칙을 비판해왔다. 실패한 경영자의 판단에 대해서 법원이 더욱 깊숙이 관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업상의 판단을 내림에 있어서 법관들이 경영자보다 낫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자들의 과감한 결정을 존중해 줌으로써 미국 경제의 활력을 유지시켜왔다. 이와 관련하여 주주대표소송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것도 설득력이 없다.


이처럼 피셸 교수는 소액주주 운동이 이익은 없이 손해만 끼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주식회사의 지배구조에 그토록 문제가 많다면 어떻게 주식의 소유가 분산된 상장회사들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겠는가를 반문한다.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달리 소액주주 운동이란 존재하지도 않는 신기루를 보고 달려가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우리 나라의 소액주주 운동이라고 해서 그리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책은 1983년 출간된 Daniel. R. Fischel 교수의 “The Appraisal Remedy in Corporate Law”를 편역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