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의 길>은 ‘노예 탈출의 길’: <노예의 길>

노계선 / 2021-02-05 / 조회: 2,110

중국에서 내어나 가정에서, 학교에서 오직 공산주의식 교육만 받아온 나에게 있어 20대 초반 대학 시절에 접한 한국의 인문학 서적들은 전혀 다른 세상의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충격의 세계였다. 공산국가들에서는 불변의 진리로 통하는 ‘사회발전 5단계설’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레닌-스탈린-모택동사상으로 이어지는 사회주의 이론에 대한 비판까지 학자들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하고 또 독자들은 자유롭게 그런 사상을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부럽기 그지 없었다.


왜 중국사람들은 중국공산당이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지식들에 대해 다른 의견을 제시할 권리마저 박탈당한 채 역사적 진실과 거리가 먼 내용들을 죽어라고 외우기만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이런 질문과 함께 나는 우리 말로 된 한국 서적들을 닥치는대로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만난 한국의 책들 중에는 외외로 사회주의를 동경하는 책들도 많았다. 수많은 사회주의 국가들의 전체주의 ‘실험’의 극단적 ‘오류’를 경험했음에도 '내'가, '우리'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리석음, 아니 지적 오만의 끝은 어디일까? 왜 인간은 개별인간에 대한 존중이 무시당하는 전체주의이념에 끝없는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이런 궁극적인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 년 전 한국에 정착한 후 자유주의를 공부하려고 모인 일군의 사람들과 함께 본격적으로 자유주의 도서들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노예의 길>은 바로 내가 읽은 첫 자유주의 안내서였다. 거의 80년 전에 출판된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은 한 구절, 한 구절 읽어내려갈 때마다 무릎을 치게 했다. 사회주의는 잘못된 이론이라는 사실을 막연하게 느꼈지만 명쾌한 답을 얻지 못했던 나에게 개인의 가치와 전체주의의 폐해에 대한 설명은 너무나 명징하게 다가왔다. 이미 지난 세기 40년대에도 사회주의냐, 자유주의냐 하는 논쟁이 뜨거웠다는 사실도 놀라웠고 역사는 돌고 도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류는 요즘도 그때랑 비슷한 논쟁에 빠져있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갈마들었다. 하이에크와 같은 자유주의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80% 이상의 신생 독립국들이 공산주의 체제로 건립되었고 개인의 자유를 무시하는 전체주의 시스템으로 국가가 운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국가의 ‘노예’가 되어 빈곤과 억압의 고통 속에서 허덕이지 않았던가!


자유주의와 사회주의의 이론의 가장 첨예한 대립은 바로 ‘인간’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자유주의는 인간을 ‘불완전한 존재’로 보는 반면 사회주의는 ‘인간을 완벽한 존재’로 본다. 특히 사회주의 정치이념에 빠져있는 엘리트 지식인들은 자신들을 ‘완벽한 존재’로 설정한 나머지 자신들이 이 세상 모든 것을 설계하고 실험을 통해 그것들을 성공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지배하에 들어간 대다수 국민들은 권력층이 제시하는 ‘공공의 선이 꽃피는’ 유토피아에 매료당한다. 혹여 지배층의 이념에 동의하지 않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은 ‘계급의 적’으로 몰려 숙청당하거나 명령에 따르도록 길들여진다. 전 국민들을 통제하기 위해 그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대개 ‘계급이론’이었고 ‘소유제 철폐’였으며 ‘중앙집권’이었다. 그들이 제시한 목표는 좋았을지 몰라도 수단과 방법은 틀렸던 것이다. 그들은 ‘인지적 한계를 지닌 개개인들이 경쟁과정을 통해 서로의 지식을 활용하는 동시에 어떤 생산방식이 저렴한지, 소비자들이 어떤 제품을 얼마나 필요로 하는지를 발견하는 끊임없는 발견과정임을 알려주는 시장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확신했으며 시장에 적극 개입했다. 그런 사회 시스템에서 개인의 창조적 능력과 능동적 활동은 제약을 받았고 개인은 중앙의 명령에 복종해야만 하는 단순한 도구, 단순한 숫자로 전락했다. 결과 이런 이른바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소수의 정치엘리트들이 신흥 기득권이 되어 부와 권력을 누리고 대다수가 빈곤에 빠지게 되었다. 관료주의적 혼란과 비효율성으로 결국은 무능한 정부를 만들었고 평등하고 다 같이 부유한 세상을 만들자던 저들의 이상과는 정반대로 모두가 가난한 세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가까운 이웃 나라들인 중국, 북한, 베트남 같은 국가들이 사회주의 중앙집권체제를 선택하여 오랜 세월동안 가난의 질곡에서 헤어나오지 못했고 그 중 중국과 베트남은 뒤늦게나마 시장경제를 도입하고 경제발전을 꾀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으나 개인의 자유가 제한되고 공산당의 일당 통치가 계속되는 한 그런 발전도 한계가 분명하다. 한국과는 불과 몇십 키로미터 떨어진 북한은 여전히 문을 닫아걸고 강력한 중앙통제 시스템을 고집하면서 오늘도 전 국민은 자유를 잃은 채 억압과 빈곤의 상태에서 생활하고 있다.


한국에도 중앙집권적 공산주의 체제에 미련을 갖는 일군의 세력들이 있지만, 하이에크가 영국의 사회주의화에 대해 우려를 표했던 그 시기에 비하면 한국의 상황은 좀 나아보인다. 한국은 다행히도 2차 대전 이후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국가를 건립했고 6·25 전쟁과 근대화 과정을 거치면서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경험할 수 없었던 자유와 민주주의의 우월성을 경험한 세대가 있고 또 그 세대들이 쌓아 올린 자유와 풍요를 누리고 그것에 감사하는 후배세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이에크가 경고하듯이 어느 사회에든 재능이 있으면서 자발적으로 ‘가슴으로부터 우러나 사회주의자’가 되기를 자처하는 정치지식인들이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늘 열린 마음과 눈으로 자유가 침해당하지 않도록 자유주의자들의 각별한 노력이 요청된다.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유주의의 영원한 고전-<노예의 길>을 읽고 전체주의의 체제에 대한 유혹에서 벗어나 개인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체제와 시장경제 질서를 수호하는 개인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바란다. 세월을 거듭할수록 ‘개인의 자유’에 대한 가치는 더 빛을 발할 것이고 더 많은 개인이 스스로 자각하고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을 하는 그것이야말로 전 인류가 진정으로 ‘노예의 길’에서 탈출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 TOP

NO. 수상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10 대상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김유미 / 2022-08-24
김유미 2022-08-24
9 대상 자유와 인플레이션
김기영 / 2022-08-24
김기영 2022-08-24
8 최우수상 프리드먼이 말한다, 통아저씨 게임을 멈추어라
문예찬 / 2022-08-24
문예찬 2022-08-24
7 최우수상 자유와 모두의 이익
천지현 / 2022-08-24
천지현 2022-08-24
6 최우수상 오래전부터 예견된 현실을 바라보게 하다: 선택할 자유
박용진 / 2022-08-24
박용진 2022-08-24
5 우수상 The Ultimate Legacy
이규종 / 2022-08-24
이규종 2022-08-24
4 우수상 살아 역동하는, 인체의 청년 세포, 선택할 자유를 외치다!
손병찬 / 2022-08-24
손병찬 2022-08-24
3 우수상 우리 앞의 리바이어던
손영승 / 2022-08-24
손영승 2022-08-24
2 우수상 인생은 초콜릿 상자, 정부는 샤워기 꼭지
오유민 / 2022-08-24
오유민 2022-08-24
1 우수상 오롯이 꿈꿀 자유
황이진 / 2022-08-24
황이진 2022-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