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바 재판` 외눈 뜨면 `상속 분식` ... 두눈 뜨면 `이익 실현`

허희영 / 2020-05-06 / 조회: 13,074       매일산업

시장경제 작동원리 간과 ...승계 프레임으로만 봐선 안돼

한국기업 경영환경 달라져야 할 때


업계에서 종종 신화를 낳는 성공스토리에는 반전과 극적인 요소들이 있다. 주가가 50만원을 상회하고 시가총액 40조원에 근접한 삼성바이오로직스(이하 '삼바’) 얘기다.


지난달엔 미국 업체와 3억6000만 달러(4400억원) 규모의 코로나19 치료제의 생산계약도 체결했다. 국내 바이오업계의 성공신화는 탄생할 수 있을까. 그간의 과정에는 R&D 투자와 조인트벤처, 권리증서인 콜옵션, 지분으로 구별되는 종속회사와 관계회사, 회계처리로 달라지는 장부가치와 시장가치, 주식의 상장과 대박을 실현하는 최초공모(IPO), 경영권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에 이르는 재무와 회계변수들이 많이 등장했다.


그런데 현실은 안타깝다. 성공의 뒤편에선 지금도 회계분식을 둘러싼 삼바의 법정다툼이 진행 중이다. 2년 전, 이 회사는 참여연대로부터 고발을 당했다. 제일모직-삼성물산의 합병 이후 제일모직의 가치를 부풀리기 위해 회계분식을 했다는 이유였다. 금융감독원은 혐의사실을 심의해 검찰에 고발했고, 재판이 거듭되면서 지금은 회계분식의 증거를 인멸한 혐의로 바뀌었다.


2011년부터 4년 연속 적자를 내던 삼바가 2015년 막대한 이익을 낸 2015년 결산서가 발단이다. 그 해 결산을 앞두고 삼바는 자회사인 삼성바이오에피스(이하 '에피스’)를 관계회사로 지위를 변경하고 자산을 재평가했다. 에피스의 지분가치는 2900억원대에서 4조8000억원대로 껑충 뛰었고, 시장가치가 반영된 순이익은 1조9049억원에 달했다. 재평가가 없었다면 장부가치대로 적자였다.


에피스는 어떤 회사인가. 삼바가 미국 바이오젠아이텍(이하 '바이오젠’)과 85:15의 비율로 투자해 2012년 설립한 합자회사다. 이 회사는 업계의 후발주자인 삼바가 주도했다. 당시 바이오젠은 불확실성을 우려해 공동투자의 인센티브로 콜옵션을 선택했고, 삼바는 현금투자로 절대지분을 보유했다. 그런데 2015년 11월 대박이 났다. 수년간의 고전 끝에 이룬 신약 개발의 쾌거였다. 유럽 의약품안전청이 류마티스 관련 신약개발을 승인했다는 보도를 접한 바이오젠은 곧바로 50%-1주를 확보할 콜옵션을 행사하겠다는 서한을 전달했다. 기업지배권을 넘길 위기에 처한 삼바는 신속히 대응했다. 대응은 에피스를 삼바의 자회사에서 관계회사로의 변경이었다. 시장가치로 재평가하면서 기업가치는 16배 넘게 뛰었다. 이듬해엔 액면가 5000원이던 삼바의 주식이 13만6000원의 공모가로 코스피에 상장되었고, 바이오젠도 콜옵션 행사를 행사했다. 에피스의 지배구조는 지금 50:50의 공동지분이지만 1주를 더 가진 삼바가 경영권을 쥐고 있다.


참여연대가 의혹을 제기한 배경은 무엇일까.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삼성그룹 승계를 돕기 위해 기업 간 합병과 회계분식을 했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삼바의 지분 46%를 보유했던 제일모직이 회계기준 변경으로 기업가치가 늘어나 이재용 부회장은 유리해졌다. 그동안 정권은 바뀌었고, 2018년 회계분식 의혹을 처음 심의했던 금융위원회의 증권선물위원회는 삼바가 콜옵션 보유사실을 2012∼2014년 공시에서 고의로 누락해 회계기준을 위반했고, 에피스의 장부가치를 시장가치로 바꾸면서 부당이익을 취했다는 결론을 냈다.


그러나 경영의 현실에서 보면 수긍하기 어려운 판단이다. 우선, 분식회계 여부에 대해 삼정, 안진, 삼일 등 국내 3대 회계법인의 적정의견을 받은 회계처리였음을 밝혔다. 한국공인회계사회도 부당이익을 취하지 않아 문제가 없다는 감리결과를 냈다. 자회사의 회계처리 변경은 바이오 복제약이 국제적 판매승인을 받자 주도권을 잡기 위한 삼바의 경영권 방어였고, 자산평가이익은 위험을 부담한 투자의 당연한 대가라는 해석이다.


회계처리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삼바의 일정도 제기된 의혹과는 차이가 있다. 2015년 하반기에 삼성은 바빴다. 당시 자산평가는 합병을 결정하는 주주총회 이전에 마무리해야 했다. 삼바는 관계회사 전환에 따른 시장가치를 연말 결산에 반영하고 감사보고서를 제출하기 전까지의 일정에서 보면, 삼성물산-제일보직 합병의 이사회 결의(2015. 5. 26)와 삼바의 2015년 말 회계처리는 시기상으로 앞뒤가 바뀌어 있다. 합병은 9월 1일 주주총회에서 공식 결정되었지만 합병 찬반을 묻는 주총 의결은 7월 17일에 70%가 넘는 찬성으로 확정된 상태였다. 삼성 측의 해명이 간과된 게 궁금한 대목이다.


삼바의 회계분식 논란에는 경쟁시장의 작동원리도 빠졌다. 시장에서 기업은 끊임없는 혁신을 통해 비교우위를 확보해야 생존·성장하는 생물이다. 신약개발은 바이오산업에서 최고의 도전이고 모험이다. 위험의 대가로 대박을 터뜨리고 초과이윤을 향유하려는 혁신노력인 것이다. 성공을 전제하면, 자본과 기술을 공유하는 조인트벤처에는 주도권 다툼이 종종 내재된다.


회계분식 의혹은 재벌기업의 편법상속의 프레임으로만 보면 가능한 얘기다. 현행 상속세제로는 정상적인 가업승계가 쉽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세계 각국은 법인세와 함께 상속세를 꾸준히 낮춰 가업승계를 유도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6개 회원국 중 13개국은 상속세가 아예 없다. 한국의 상속세는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다. 가업을 승계하더라도 실제 상속세율은 명목세율보다 오히려 더 높고, 승계조건도 까다롭다. 회사지분으로 승계하는 경우엔 50%의 기본세율에 경영권 프리미엄이 더해져 최고 세율은 65%까지 올라간다.


삼바는 작년에 매출이 두 배 이상 뛰면서 1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설립 8년 만의 첫 흑자다. 사업 초기부터 적자를 감내한 공격적 R&D로 의약품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한 결실이다. 회계는 경영활동의 기록이다. 돈의 흐름에 대한 인식과 측정은 일반적으로 인정된 회계원칙에 따르지만 해석에는 언제든지 차이가 발생한다. 회계처리를 둘러싼 기업과 금융당국의 견해차이로 기업가정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게 아쉽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은 세금을 많이 내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기업가가 존경받을 때 가능해진다. 한국기업들의 경영환경도 그렇게 변해야 한다.


허희영 한국항공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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