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희 사망과 김정일의 후계체제 및 북한정세 전망

홍관희 / 2004-09-07 / 조회: 6,101

그동안 사망설에 휩쌓여 있던(월간조선 편집장 조갑제홈페이지 최초 보도) 김정일의 고영희(51)의 사망이 사실로 확인되는 분위기이다. 고영희는 이미 지난 8월 13일 사망했으며, 북한지도부는 이를 외부에 알리지 않고 장례까지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고영희는 김정일의 정식 부인은 아니지만ㅡ法的 부인은 1974년 결혼한 김영숙ㅡ현재까지 김정일과 같이 살아 온, 김정일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그리고 실제로 북한의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해 온 사실상의 공식 부인이다. 


고영희의 사망이 세간(世間)의 관심을 끄는 것은 「김정일 이후」 곧 김정일의 후계체제와 관련해서이다. 이미 고영희의 친자(親子)가 아닌, 곧 김정일이 성혜림과의 사이에 낳은 김정남(33)이 장남으로 존재해 있고, 고영희가 낳은 두 아들 정철(23)과 정운(21)이 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고영희의 죽음이 이들 3형제의 운세(運勢)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미칠 것인가가 후계체제와 관련하여 주목되는 점이다. 아울러, 김정일 후계구도가 북한체제의 장래에 미칠 영향과 파장도 우리의 커다란 관심사항이 아닐 수 없다. 


이 글은 고영희 사망을 계기로, 북한의 후계자론, 후계체제, 그리고 향후 김정일 이후의 후계구도 및 북한정세 대강(大綱)을 분석·전망해 보기로 한다.



1. 「후계」와 관련된 북한의 지도체제 및 이론적 배경


(i) 수령론


북한체제에서 “수령(首領, Supreme Leader)”은 매우 특수한 위상을 차지한다. 북한의 후계체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북한의 수령체제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지금은 거의 더 소멸하였지만, 과거 사회주의체제의 통치구조는 일반적으로 '당(, party)’과 '인민대중(大衆, the masses)’으로 구성되었다. 일찌기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대규모 폭동에 의한 자연발생적인 공산주의 혁명을 상정하였으나, 레닌은 현실 속에서 이의 어려움을 깨닫고, 직업적 혁명가들로 구성된 '전체주의 정당’ 모델을 제시하고 실제로 이를 건설함과 동시에, 이 공산정당의 지도와 전위적(前衛的) 역할을 통해 공산주의 혁명을 성공시킨 바 있다. 이후 사회주의체제에서 공산당과 인민대중은 체제를 구성하는 2대 요소가 되었다.


북한의 경우, 초기에는 이러한 '당-대중’ 모델에 충실하였으나, 1960년대초 김일성의 권력강화 과정에서 “수령”이라는 특이한 지위를 신설함으로써, 북한사회주의체제는 ①수령 ②당 그리고 ③인민대중의 3개 요소로 구성되는 '유일체계(唯一體系, Sole System)’로 전환하게 된다.


유일사상체계 곧 '혁명적 수령론’에 따라, 북한체제에서 혁명을 영도하는, 혁명의 전위로서의 역할은 혁명의 「뇌수(腦髓)」인 수령에게 양도되고, 당은 혁명의 참모부로 전락하게 된다. 수령은 스스로의 운명을 개척할 줄 모르는 인민대중을 “령도(領導)”하는 “전일체(專一體)”로서, 오류성(誤謬性)의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 인민은 그들 말로는 역사의 주체라고는 하나, 실제로는 수령의 영도를 받아야 하는, 혁명의 피동적 위치로 격하되었다. 이렇게 볼 때, 북한사회주의체제는 일반 사회주의체제와 그 유()를 달리하는 매우 독특한 전제적·독재적 요소를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후계자론」이라는 이론적 근거를 창안하여 권력의 세습 승계를 정당화하게 되는 것이다.


북한은 수령의 '탁월한’ 위상을 고려하여, 혁명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수령을 중심으로 한 혁명전통과 혁명위업을 후계자에 의해 고수(固守)하게 하고 계승·발전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i) 후계자론


1990년대에 들어서서 북한은 유난히 혁명의 계속성과 후계자론을 강조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사회주의체제의 전반적 붕괴 현상을 목도하면서, 북한체제 붕괴의 위기감에서 외부로부터의 영향을 막아보려는 시도에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김일성은 1990년대초 연속적으로 발표된 담화들에서,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기 위해서는 수령의 후계자를 바로 내세워야 수령의 혁명업적을 고수, 계승·발전시킬 수 있고, 또한 올바른 입장과 관점을 가지고 혁명을 지도할 수 있는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전개하였다. 이는 당시 김일성 지배하의 북한 지도부가 소련 및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체제 붕괴 원인을 일사불란하지 못했던 후계구도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음을 나타내 준다.


이즈음 북한내 관변 이론가들은 특히 혁명의 “간고성(艱苦性)”과 “복잡성”을 감안할 때, 수령의 혁명위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장기간 계속되는 사업이므로, 수령의 후계자가 대를 이어 계속하여 혁명을 수행하게 해야 한다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리하여 북한에서 권력의 세습 승계를 합리화하는 이론적 틀은 '수령론’으로부터 '계속혁명론’, 그리고 '후계자론’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2. 「김일성-김정일」 권력승계의 경우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하였을 때, 많은 분석가들은 절대권력으로 군림하던 독재자가 사라진 북한에 체제붕괴에 버금가는 일대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을 높게 점쳤다. 그러나 김일성이 사라진 북한에서, 예상되었던 혼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김정일은 여유있게 3년간의 '유훈통치’ 기간을 거쳐 북한의 지배자로 부상했다. 김정일은 유훈통치 기간이 지나도록 공식적인 권력승계 절차를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 후에도 주석(主席)직을 맡지 않고 '국방위원장’직으로 북한을 통치해왔다. 김일성 사후 김정일은 사실상 아무 장애 없이 북한의 군부를 장악했으며, 그 결과 북한 전역을 통치하는 실제상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다. 그 원인은 무엇인가?


우선 2가지 요인으로 설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김정일의 후계작업이 김일성에 의해 일찍이 시작됨으로써,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북한 통치구조 구석구석에 오래전부터 스며들어 있었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정권장악 및 권력투쟁 과정을 통해 김정일 자신이 놀랄만한 정치감각과 스스로 생존·성장해 나가는 정치력을 체득하였다는 사실이다.


김정일의 당권장악은 이미 1964년 김정일이 만22세에 대학을 졸업하고 조선노동당에 발을 들여 놓음으로써 시작된다. 이후 10년만인 1973년 9월 조선노동당 중앙위 제5기 7차 전원회의에서 당비서로 선출됨으로써 권력 핵심부에 진입하였으며, 1974년 만32세에 일약 후계자로 공식 지명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김일성이 사망하기까지 20년간 김정일은 정치국 상무위원, 당비서, 중앙군사위원,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 등 당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후계자로서 김일성과 함께 강력한 권력을 행사해왔다.


김일성 사망 이후 아무런 동요나 혼란 없이, 김정일이 북한의 사실상 지배자로 군림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러한 오랜세월 동안의 권력 굳히기 과정이 숨어 있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 여기에 적법한 혈통의 적자(嫡子)로서, 그 누구로부터도 공식 후계지명에 도전받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상기 언급한 김정일 개인의 정치적 역량도 김정일의 무난한 권력계승을 도운 중요한 요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 고영희의 사망과 김정일의 후계체제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고영희의 사망이 김정일 이후 후계구도에 미치는 파장과 관련하여 많은 추론과 전망이 나오고 있다. 과연 김정일 이후에도 「김일성-김정일」 후계 구도와 같은 무난한 권력승계가 가능하게 될 것인가? 한마디로 김정일 이후의 후계구도는 앞서 분석한 「김일성-김정일」 후계계승 과정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예측불가한 요인들을 안고 있음을 지적해야 한다.


우선,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난 長男 김정남의 경우, 고영희의 사망으로 그동안 괄시받던 상황에서 벗어나 후계구도에서 '부활’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장남이라는 유리한 고지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해외에서 생활해왔다는 사실이 장애로 지적될 수 있다. 후계자로서 해외에 오래 머문다는 것은 국내 권력기반 조성에 치명적인 약점이 되기 때문이다. 더욱이 김정남은 2001년 5월 일본으로 밀입국하려다 추방된 사건 이후 김정일의 시야에서 멀어졌다는 사실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편 적지 않은 분석가들은 고영희와의 사이에서 낳은 셋째 아들 김정운(21)의 후계자 가능성을 높게 점치기도 한다. 장남 김정남의 생모인 성혜림이 2002년 5월 러시아에서 사망한 이후, 북한군 내부에서는 '고영희 우상화’ 작업이 시작되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는 고영희의 두 아들 김정철이나 김정운의 후계자 만들기 작업으로도 분석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나이는 각각 23세와 21세로서, 생모인 고영희가 사망한 시점에서 과연 후계자가 되기까지의 복잡한 권력암투 과정을 무난히 헤쳐나갈 수 있을 지는 커다란 의문사항이 아닐 수 없다. 막내인 김정운이 왕성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고 리더십도 갖추었다는 평가가 있긴 하지만, 김정일의 강력한 지원을 받던, 생모인 고영희가 사라진 현재, 과연 무난히 후계자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인지는 가히 예측불허의 난제(難題)라 하겠다.



4. 김정일 후계자 문제와 북한체제의 장래


요약해 볼 때, 김일성이 김정일을 후계자로 양성했던 1970~1990년대와 지금은 북한 내부상황이 크게 달라졌다는 점이 먼저 지적되어야 한다. 김일성은 김정일을 일찍이 후계자로 지명하고 혼신을 다해 북한내 실력자로 키웠지만, 김정일은 아직 후계와 관련하여 어떠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없는 상황이다. 김정일의 나이가 만 62세로 충분히 일할 연령이고 아직 그의 통치가 상당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지만, 후계자를 일단 지명하고 나서도 '후계자의 유일적 영도체계’를 확립하는데는 긴 시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후계자 문제가 결코 간단함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현재 북한의 김정일 이후 권력승계 문제는 아무런 확고한 단서나 토대가 잡혀있지 않은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이 김일성 사망 이후와 김정일의 장차 유고시 북한내 권력지형 변화가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마디로, 김정일 이후 북한의 권력구도는 커다란 혼란을 맞이할 가능성을 높게 점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김정일의 신병(身柄)에 老化가 진행되고, 혹 유고(有故) 가능성이 높아질 수록, 북한의 체제위기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더욱이 현재 북한은 1970~1980년대와 달리 체제모순의 극대화 과정에 들어섰으며, 가히 체제 쇠퇴와 붕괴 일로를 걷고 있는 중이다. 향후 발생할 김정일 후계구도의 혼란은 북한체제의 위기에 기름을 붓는 격으로, 그 위기를 가중(加重)시키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연 김정일 이후의 후계선정과 권력승계 문제는 북한체제의 사활(死活)을 가름하는 일대 분수령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하겠다.


역사적으로 회고해 본다면, 김정일 후계구도는 과거 고구려 말기 연개소문의 후계구도 모습을 닮아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연개소문이나 김정일의 경우 히 무자비한 독재자로서 확고한 후계자를 선정·양성하지 못했고, 이들 독재자 밑에서 후계자 후보들은 뚜렷하고 강력한 주자 없이 난립(亂立)함으로써, 내분과 내전으로 이어지는 모습을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다. 향후 북한체제의 변화의 진원(震源)은 김정일의 후계문제에서 비롯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김정일의 후계구도 혼란으로 인한 북한체제의 위기는 한민족(韓民族)에게 통일을 위한 절호(絶好)의 기회를 제공해 줄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한국이 어떠한 외교·군사전략을 추진해 나가느냐에 달려있을 것이다. 북한체제가 결정적인 위기와 혼란을 맞게 될 경우, 우리의 대북정책은 가능한 한 빨리 김정일체제를 종식시키고, 유혈(流血)사태 없이 북한지역을 관리·통치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여, 대망의 민족통일을 달성하는 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김정일독재체제의 조기 종식과 가능한 한 빠른 시일내에 압제와 질곡으로부터 북한동포를 구원하는 일은 이미 국제사회가 일치하여 지지하는 북한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이 목표를 향한 외교적, 군사적 전략 마련에 나서야 한다. 정치권에서 “남북 공동발전”이나 “남북 공동번영” 등의 구호가 아직도 난무하는 것은 오늘의 정세를 정확하게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이들 구호는 그것이 외교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정책으로 추진될 경우, 결과적으로 김정일독재정권의 지탱과 복원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나아가 한국의 국가안보를 위협하게 될 역사적 정책목표가 아닐 수 없다. 지난 북한용천 참사 무렵에 대통령권한대행으로서 高建 前총리가 북한 유사시(有事時) 대처할 방법이 없어 우려했다고 회고한 내용은 이와 관련하여 중요한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김정일정권은 도덕적으로나 실효적으로 그 지배의 근거를 상실했으며, 그 붕괴는 피할 수 없는 대세(大勢)가 되어가고 있다. 우리는 그 붕괴를 촉진해야 하며, 또한 붕괴 이후의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위해 한·미동맹 강화는 중언(重言)의 필요없는 필수적인 외교전략이다. 한·미동맹의 토대 위에 북한지역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관여를 저지할 수 있는 방책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통일한국이 결코 중국에 위해(危害)가 되지 않는다는 확신을 중국지도부에 심어 주는 동시에, 한·미 군사동맹을 통한 힘의 배양으로서, 중국의 개입을 저지해 나가야 할 것이다.


홍관희 / 통일연구원 평화안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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