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동독과 탈()북한, 차이와 의미

박상봉 / 2004-07-27 / 조회: 4,548
- 탈북자의 종착역은 통일 -



1. 들어가는 말


동남아에서 보호받고 체류해오던 탈북자 450명이 수일 내에 한국에 들어올 전망이다. 이들 대부분은 이미 수개월 전에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 4000 km 중국 본토를 종단해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 각국으로 탈출했던 북한주민들이다. 이런 여정 속에서 탈북자들은 사선을 두 번이나 넘는다. 한번은 두만강이나 압록강을 건너며 사선을 넘는 것이고 다른 한번은 중국 땅을 떠날 때 죽음의 고통을 넘어야 한다. 더욱이 중국 종단 4,000km는 편안한 여행이 아니다. 여권이나 공민증이 없이는 기차로 마음대로 탈 수 없는 상태에서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야밤에 한족의 온갖 멸시 속에서 감내해야할 모진 인생의 험로이다. 꿈에 그리던 남한에 대한 희망이 없이는 결코 이루어낼 수 있는 험로다.


이런 탈북러시는 15년 전 유럽을 시끄럽게 했던 동독인의 탈출러시를 기억나게 한다. 1989년 여름 동독인의 엑서더스가 조직적이고 대규모로 이루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그 해 8월 8일 131명의 동독인들이 동베를린 주재 서독대표부에 진입한 것을 시작으로 체코, 폴란드 주재 서독대사관에는 연일 동독인들의 잠입으로 몸살을 앓게 되었고 외교공관의 뜰은 이들을 수용하기 위한 임시천막이 설치되었다. 동독탈출은 헝가리정부가 오스트리아 국경을 개방하기로 결정한 것을 계기로 절정에 달했다. 동독정부의 각종 협박과 방해에도 불구하고 서독정부의 오스트리아 국경개방 요구를 수용한 헝가리 정부의 결단으로 개방 한 달 만에 무려 2만 4천 여 명의 동독인들이 헝가리를 통해 오스트리아로 탈출하게 되었다. 이들은 서독정부의 특별한 보호를 받으며 서독에 안착했다.


동일한 탈출이지만 동독탈출자와 북한탈출자(탈북자)의 모습은 이렇듯 천차만별이다. 전자가 국경을 넘는 순간 막강한 서독정부의 힘을 느끼며 안심했던 반면 후자는 또 다른 사선을 향해 고난의 행군을 지속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과정에서 한국정부의 힘은 왜소하기 짝이 없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방해자였던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국군포로나 그 가족이 탈출해도 한국정부의 무관심한 태도로 북한으로 강제 송환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이런 탈북자들에게 이제 국제사회의 따뜻한 손길이 미치고 있다. 60차 유엔인권위원회의 대북결의안으로 북한의 인권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보고관이 임명되었고 지난 7월 21일에는 미국의 하원에서 '북한인권법안(North Korean Human Rights Act of 2004)’이 만장일치를 채택되었다. 이 두 가지 국제사회의 북한인권 보호조치는 탈북자 보호의 새로운 차원을 의미한다. 그동안의 북한인권보호가 국제인권단체의 헌신적인 보호와 국제 언론의 보도에 의존된 정보전달과 도덕적 조치의 수준이었다고 한다면 이번의 조치는 유엔의 구체적인 조사활동과 미국정부의 2,400만달러 규모의 예산이 책정되어 북한 인권개선과 탈북자 수용 등 구체적인 조치들이 취해질 것이다.


2. 탈북자, 10년의 역사


북한주민들의 탈북사태는 지난 90년대 초 러시아 북한벌목공의 탈출로부터 시작해 이미 10년 이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일하던 북한벌목공들이 간부들의 억압과 만행을 참지 못해 작업장을 이탈해 남한으로 이주해 들어온 것을 시작으로 탈북사태는 오늘날까지 끊이지 않고 있다.


더욱이 10년 전만해도 북한주민들의 자유에 대한 갈망은 잠재적 가치에 머물러 있었으나 오늘날 북한을 탈출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유와 풍요로움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과 증거들을 목격한 자들이다. 직접 그 가치를 피부로 느끼고 체험하지는 못했더라도 중국을 넘나드는 친구, 동료, 가족, 친지들을 통해서 그리고 서방 세계와 남한으로부터 지원되는 쌀과 각종 구호품과 북한 방문객으로부터 바깥세상의 자유와 풍요로움을 간접 경험한 사람들이다.


이제 이들의 탈북은 기아를 해결하기 위한 탈북이 아니다. 반세기 김정일 부자를 믿고 충성한 주민들에 대한 반란이요, 남한의 자유와 풍요로움을 찾아 떠나는 올인이다. 중국정부의 대대적인 체포와 강제송환이 이루어지고 남북 평화공존과 교류협력이 강화됨에도 아랑 곳 없이 탈북자 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늘어나고 있다. 바로 이런 현상 속에서 탈북의 진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한다.


독일통일의 또 하나의 교훈은 통일 전 동서독의 평화정착은 위선이요, 가짜였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전 세계의 찬사를 받으며 특히 우리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서독과 동독 간의 평화공존의 이면에는 동독 공산정권의 무차별 탄압으로 숨을 죽여야 했던 동독인들이 가리워져 있었다. 당의 창과 방패로 충성을 다해왔던 슈타지(비밀안전부)는 정규, 비정규 비밀요원을 수 십 만명 거느리고 권력과 당에 저항하는 세력들을 제거해왔다. 저능아를 비롯한 사회소외세력들은 특수시설에 격리 수용되어 온갖 인권유린을 당했으며 민주인사는 체포 구금되었고 정치범들은 투옥되었다. 많은 민주인사들은 동독사회에 살지 못하고 교회의 주선으로 모든 재산을 동독에 남겨둔 채 서독으로 이주해 살았다. 특히 정치범들은 서독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1인당 평균 9천만 DM를 지불하고 석방, 서독에 정착해왔다. 이렇게 석방시킨 정치범만 무려 3만 3,755명에 이르고 이를 위해 지불한 비용만 해도 34억 DM(1,7조원)에 달했다.


남북한정권이 주장하는 평화공존도 허구에 불과하다. 그 이면에 탈출자의 고통이 가리워져 있기 때문이다. 독재자와 탈북자는 공존할 수 없다. 권력에 눈먼 독재자가 존재하는 한 탈북자의 역사는 10년이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3. 탈북사태 : 역사적 사건, 통일의 열쇠


“100명의 간첩보다 1명의 탈북자를 막아야 한다”는 김정일의 지시가 내린 지도 3, 4년이 지났지만 탈북자의 수는 오히려 증가일로에 있다. 국내에 입국하는 탈북자의 수가 매년 두 배로 늘고 있다. 90년대 말 100명 미만에 머물던 국내입국 탈북민이 2000년대 들어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2000년에 321명에 불과하던 입국탈북자는 2001년에 583명, 2002년부터는 1,000명을 넘어서고 있고 올해에는 이미 지난 6월말 현재 700명을 넘어선데 이어 금명간 450명의 탈북자가 입국할 예정이다.
이런 탈북사태는 우리에게 몇 가지 사항을 시사하고 있다.


1) 탈북, 역사적 과정


탈북사태를 바라보는 우리정부의 시각은 탈출사태가 일시적이요, 경제적 어려움이 사라지면 해결될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은 개혁할 수밖에 없고 이때가 되면 탈북자문제도 해결될 것이니 '조용한 외교’를 통해 중국이나 북한을 자극하지 말자는 것이다. 중국을 자극할 경우 그나마 중국정부가 눈감아주어 비밀리에 중국에 은둔하거나 남한에 입국하는 탈북자도 불가능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이야 말로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요, 굴욕적인 외교요, 국제사회와 시대적 흐름을 읽어내지 못하는 민족공조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10년 이상 탈북자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통해 탈북자는 단순히 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을 건넌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미 감지했어야 했다. 이제 그들은 억압받기 싫은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 말하고 싶은 자유와 종교의 자유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고 있고 북한의 배고품과 결핍과 정치적 억압이 김정일 정권의 독재에 기인한다는 것을 감지하고 있다.


정권이 변한 것이 아니라 북한사람들이 변하고 있고 상당수가 이미 변했다. 탈북과정에서 사살되고 인신매매당하고 체포되어 강제 송환되는 한이 있더라고 이들의 탈출은 결코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역사적 과정이기 때문이다


2) 통일, 탈북자의 종착역


탈북자문제의 해결책은 어찌보면 단순하다. 김정일 정권이 우선 주민들의 곯은 배를 채워주기만 해도 해결의 실마리는 풀린다. 그러나 김정일 정권은 이런 단순한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으니 문제이다. 능력도 없고 의지도 없다. 현재 김정일의 유일한 관심은 세습정권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집중되어 있다. 남한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하에 이루려고 하는 평화공존 제스추어도 결국 권력유지가 목적이다. 하지만 남북이 함께 노력하는 평화공존도 동서독 평화공존과 마찬가지로 위선이요 가짜다.


평화공존을 주장하면서 대량살상무기를 수출하고 있고 핵무기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독버섯이 더 먹음직스럽고 아름답듯이 위선자의 특징은 더 선량하고 착한 모습으로 외부에 나타나는 데 있다. 반전평화를 내세우며 상대방의 약점을 물고 늘어진다. 김일성 시신를 미라로 보관한 금수산 궁전은 광장을 화강석으로, 내부는 수입 대리석으로 치장하는 등 640억원의 비용을 들였고 내부는 신전처럼 꾸며놓았다고 한다. 년간 유지보수 비용만으로도 천문학적 자금이 소요된다고 한다. 또한 미식가인 김정일은 상어지느러미와 프랑스제 코냑을 즐겨 마시고 있으며 창고에는 프랑스제 와인 1만여병이 보관되고 있다는 것이다. 독일의 다이믈러 벤츠는 김정일이 심복에게 주는 선물이고 이들의 차량은 김정일 생일인 2월 16일은 뜻하는 '216xx'이다. 김정일 요리사로 있다 일본에 망명한 후지모토 겐지 씨도 벤츠를 선물 받았다. 이런 무책임한 독재정권이 주민들의 고통을 이해할리 만무하며 이미 곪을대로 곪은 탈북자 문제를 해결해낼 수 없다. 독재자와의 평화공존 자체가 어불성설이요, 정치적 수사에 불과하다.


김정일의 마지막 카드는 핵을 빌미로 미국과 평화조약을 체결하고 남한의 친북세력과 사이비 지식인, 극단적인 진보주의자들을 선동해 마지막 출로를 찾으려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진리를 믿는 사람은 탈북자 문제가 위장전술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독일의 통일이 가능했던 것은 동독정권의 정체가 독재정권이었다는 사실에서 찾게 된다. 유럽인들은 거의 모두 동서독 통일을 원치 않았다. 더욱이 세계적 찬사를 받으며 평화적으로 공존하고 있던 동서독에 재통일을 허락할 이유가 없었다. 이런 불가능한 통일을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동독인의 엑서더스였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4. 맺음말


7월 21일 '북한인권법안’이 미국 하원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이것은 지난 4월 유럽연합이 발의한 대북결의안이 통과된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와 함께 향후 열악한 북한인권개선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다. 그 동안 국제사회의 탈북자 보호와 북한인권개선노력은 중국 현지에서 활동하는 국제인권단체들의 보호활동과 국제 언론의 보도를 통해 탈북자의 인권에 관심을 촉구하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올해 결의된 상기 두 가지 사항은 탈북자와 북한인권보호가 새로운 차원에 진입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제60차 유엔인권위원회 대북결의안에 따라 7월 10일 태국의 인권전문가 비팃 문타폰 출라롱콘 대학 교수가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으로 임명되었다. 49세의 비팃 문타폰 교수는 인권전문가로 유엔의 예산과 외교관에 준하는 신분으로 북한주민과 탈북자에 대한 인권실태를 조사해 매년 유엔인권위원회에 보고서를 제출하게 되어있다. 물론 북한이 조사활동에 갖은 방해공작을 다하겠지만 특별보고관의 활동 자체만으로도 탈북자와 북한내 인권상황은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다. 


특히 미국의 북한인권법안은 북한인권개선에 200만 달러, 북한자유촉진활동에 200만 달러, 그리고 탈북난민보호 활동에 2,000만 달러 등 년간 2,400만 달러(약 270억원)를 지출하도록 하고 있다. 북한인권법안이 9월쯤 상원을 통과하게 되면 본격적인 탈북자 지원과 북한주민 보호활동이 시작될 것이다. 북한지원의 투명성이 강화되고 한국의 대북정책과 무관하게 미국이 탈북자의 망명을 허용하게 될 것이다. 중국정부에 대해서는 유엔난민고등판무관(UNHCR)의 탈북자 접근을 무제한 허용하라는 강한 권고가 내려질 것이다.


김정일 정권의 무능력과 의지부재에 미국 등 국제사회의 노력, 그리고 대량살상무기,마약,위조달러의 수출을 막으려는 국제사회의 공조가 가미되어 김정일의 권력기반이 와해되기는 시간문제일 것이다. 이제 이 기회를 통일로 이끌어낼 수 있느냐의 여부는 온전히 우리의 몫으로 남게될 것이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센터 소장, 미래한국신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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