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의 마술사 김정일과 핵: 독일 슈피겔(Der Spiegel)지의 커버스토리

박상봉 / 2005-02-21 / 조회: 5,466

2월 10일 김정일 정권은 6자회담 당사국과 국제사회를 향해 공식적으로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음을 선언했다. 국제외교가에서는 이 선언을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특히 부시 2기 행정부의 외교수장인 라이스 장관이 유럽을 방문해 이라크 전쟁을 계기로 소원해진 독일, 프랑스와의 관계회복을 이루어내고 중동에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평화무드를 조성해 가는 시점을 기해 돌발 선언을 함으로 미국의 국제평화 노력에 찬물을 끼얹는 고도의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이런 김정일의 도발적 선언을 “외교적 핵공격"(Diplomatischer Atomschlag)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미 오래 전부터 북한의 핵을 관심있게 보도해온 독일의 최대 시사주간지 데어 슈피겔(Der Spiegel)은 작년 1월에 이어 올해 2월 14일자에도 독재자 김정일과 북한핵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보도하고 있다. 작년의 보도가 파키스탄의 핵 물리학자 압둘라 카디르 칸과 북한의 대량살상무기의 밀거래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면 올해에는 독재자이자 이성을 상실한 폭군 김정일과 정치적 수단으로서의 핵무기를 보도의 초점으로 삼고 있다.

슈피겔에 따르면 국제사회에는 핵을 포함한 대량살상무기 밀거래를 위한 네트워크가 생각보다 광범위하게 구축되어 있으며 아무도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 인류의 불행이다. 그리고 그 핵심에는 독일인 기술자들이 가담되어 있다. 또한 북한이 이단아 칸의 역할을 이어받아 핵 확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I. 이성을 상실한 미치광이 김정일


1. 독재자의 선물

2월 16일은 김정일의 63번째 생일이다. 독재자로서 감각적인 생존술을 터득하고 있는 김정일은 굶주림의 고통 속에 빠진 인민들에게 최대의 선물을 준비했다. 북한이 당당히 핵무기 보유국가의 반열에 올라섰다는 선전이다.

미 제국주의에 맞서 남조선을 해방시키고 선군강국의 꿈을 이뤄야한다고 세뇌 받아온 인민들은 외부세계와 단절된 채 위대한 영도자가 던져준 선물에 감격하는 듯 하다. 이런 김정일의 무모한 도발에 대해 미국과 중국은 물론이고 국제사회는 이성을 잃은 미치광이에게 다시 이성을 회복하도록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김정일은 과연 미치광이인가. 이런 우려와도 같이 김정일은 배고파 시달리고 있는 인민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도 기울이지 않는다. 슈피겔은 독재자의 이런 모습을 “김정일은 방탕자다. 최근에는 금발의 스칸디나비아 여성과 여흥을 나누며 술에 취한 채 한밤중에 차를 몰고 거리고 나가 총을 빼들고는 장난삼아 가로등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미치광이 같다”고 보도하고 있으며 “인민들은 굶어죽는데 헤네시 코냑의 최대고객이며 2천만 달러나 하는 200S 메르체데스 벤츠를 사들이는 것이 유일한 일이다”라고 쓰고 있다.

슈피겔은 또한 김정일은 “마피아 두목”과 같이 돈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한다고 쓰고 있다. 마약밀매, 위조달러, 무기수출로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그에게는 더러운 사업이라는 게 없다. 마피아 김정일에게 지난 2000년 남한의 대통령 김대중은 “정상적인 이성을 갖춘 지도자”라며 세계무대로의 진출을 선사했다. 비밀리에 수억 달러의 뒷돈을 대주고 성사시킨 정상회담이지만 김정일은 DJ의 노벨평화상 단독 수상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서울답방 약속을 파기하고 말았다. 퍼주기라는 비판을 들으면서도 북한을 지원한 것에 대해 일말의 고마움도 느끼지 못하는 김정일의 행태는 DJ의 노벨상 단독 수상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2. 개혁의 능력도 의지도 상실한 김정일

- 핵무기를 알 카에다의 손에 ? -


슈피겔은 김정일이 체제개혁을 할 능력도 없으며 의지도 없다고 보도하고 있다. 그 이유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나열하고 있다.

1995년 이래 2백 만명이 기아로 사망했고 생존자들도 육체적으로 발육부진에 처해있으며 정신적으로도 미 발육한 상태로 한 세대가 고통 받고 있다. 이런 국가적인 위기에도 불구하고 김정일의 관심은 군비를 확장하고 군사 강국을 만드는 데만 여념이 없다. 독재자 김정일은 내부에서 있었던 수차례 저항운동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으며 고위 당간부과 군 장교들이 탈출하는 일이 있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자신은 사회 전체를 완벽하게 장악하고 있고 믿고 있으며 실제로 이웃마을을 방문하는 데도 사전에 신청서를 제출해야 가능한 상태다. 이런 사회에 폭동이 일어나 독재자를 권좌에서 밀어낼 기회는 거의 없다.

이제 김정일에게 남은 유일한 대안은 죽기 아니면 살기식 모험이다. 슈피겔은 이 모험을 “감각적인 생존술을 지닌 김정일이 세계사에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를 연출하고 있다. 유일 초강대국 미국에 대해 핵무장으로 도전하는 일”이라고 쓰고 있다. 김정일이 감히 이런 모험을 감행하는 이유는 중국, 일본, 러시아 심지어 남한도 북한의 붕괴를 절대 방치하지 못할 것이라는 나름대로의 계산이 깔려있다. 실제로 남한은 물론이고 중국, 일본, 러시아도 유사시 대량난민이 몰려올 것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슈피겔은 김정일의 이런 벼랑 끝 전략을 통해 미국과 양자 회담을 성사시키고 부시 대통령이 직접 서명한 미북간의 불가침 협정을 체결하려고 한다. 물론 부시는 이에 강력하게 반대한 바 있지만 당시 상원에서는 공화당에서 조차 김정일의 제안을 결국 수용하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컸다. 그러나 부시는 세계 최강의 나라마저 독재자 김정일에 굴복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북한의 제안을 거부했다. 이제 김정일은 한 단계 더 높은 차원에서 부시를 압박하려 할지 모른다. 슈피겔은 아마도 북한이 핵무기를 테러리스트 알 카에다의 손에 넘겨준다는 위험한 도박을 벌일 수도 있을 것임을 시사하고 있다.



II. 핵 밀거래 네트워크

비밀리에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핵 밀거래를 자행해온 세력의 중심에는 파키스탄의 핵 영웅 칸이 있다. 그는 이미 정부의 전용기를 이용해 북한을 10여 차례 방문하며 핵을 이전해 왔다. 그는 현재 가택 연금 상태이지만 지난 80년대 이래 그의 비밀 네트워크를 통해 핵 기술을 전수받은 사람들이 누구인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여기에 국제사회의 딜레마가 놓여있다.

2,200명의 인원으로 2억7천만 달러의 예산을 사용하고 있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대한 회의론도 불거지고 있다. 막대한 유엔 산하 국제기구가 그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한다는 것이며 알 바라데이 사무총장도 슈피겔 지와의 인터뷰에서 “국제원자력기구의 역할이 한계에 이르렀다. 새로운 통제시스템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곧 핵전쟁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며 통제 시스템을 벗어난 핵 무기 밀거래의 실태를 전하고 있다.

김정일은 이런 국제사회의 딜레마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며 이라크 전쟁으로 곤경에 처해있는 미국을 상대로 위험한 도박을 벌이려 한다. 핵 기술의 테러리스트 이전이라는 카드를 내미려하고 있다. 부시 정권의 최대약점을 물고 늘어져 미국의 양보를 받아낸다는 것이다. 서방의 주요 첩보망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일부 관계자들은 파키스탄에 이어 북한이 핵 밀거래 네크워크의 중심이 될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1. '빈국의 로빈후드’와 김정일

슈피겔은 김정일의 핵에 대한 집념은 부친 김일성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으로 보도하고 있다. 김정일 부자의 꿈은 세계를 제패하는 것으로 핵무기는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핵은 2천2백만에 불과한 북한주민(1인당 국민소득 800달러)을 2억9천만 미국인(국민소득 35,400달러)과 동등한 위치로 만들어 줄 것이라는 망상에 도취되어 있다.

당초 이 꿈은 정상적인 방법으로 실현할 수 없을 것 같았다. 1965년 큰 형님 격인 소련의 도움으로 영변에 원자로를 설치 가동했으나 1985년 핵 확산 방지조약에 서명함에 따라 꿈을 이룰 수 없었다. 하지만 평양의 미치광이에게 칸이 나타났다. '빈국의 로빈후드’라는 별칭을 들으며 이슬람 국가와 제3세계에 핵 기술을 제공해온 칸과 김정일의 만남은 비교적 쉽게 이루어졌다. 작년에 슈피겔(1월 16일)은 이 문제를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파키스탄 핵 영웅 압둘 카디르 칸의 일생과 북한을 포함한 사우디, 리비아에 대한 핵 밀거래에 대해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압둘 카디르 칸은 인도에서 태어나 16세에 파키스탄으로 이주했다. 학업성적이 뛰어나 서 베를린 공대와 네덜란드 벨기에에서 공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칸은 영국, 독일, 네덜란드 3국의 원심분리기 제조회사인 Urenco에 입사했고 곧바로 핵 정제시설을 건축 중인 네덜란드 알메로로 파견됐다. 이 곳에서 칸은 모든 기술자들의 꿈이기도 한 핵 점화기술을 익히게 되었고 우라늄, 플루토늄 등 핵연료를 추출하는 핵무기 제조기술의 모든 것을 배웠다.

1976년 칸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 고향에 핵연구소를 설립했고 1985년 최초로 우라늄을 정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칸은 사우디, 리비아, 중국으로부터 재정적인 지원을 받아 '이슬람폭탄’이라는 프로젝트를 추진해 왔다.


칸은 무사라프의 보호 하에 핵무기를 제조해 가며 비밀리에 북한, 이란. 리비아는 물론이고 핵확산금지조약에 서명을 한 여러 나라로 핵 기술과 장비를 수출해왔다. 엘 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국제사회의 핵 확산 저지 시스템은 실패했음을 선언했고 새로운 통제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으면 핵전쟁의 가능성도 점점 다가오고 있다고 충격적인 발언을 한 것도 그 때문이다.

핵기술 암거래의 최초 주자는 이란이다. 독일의 연방정보국(BND)은 이란이 우라늄 정제기술을 개발하려 했으나 실패하자 1987년 파키스탄으로부터 관련기술을 들여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당시 이란에 대한 유럽의 핵 통제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소련 붕괴로 인한 핵무기의 무절제한 확산을 막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두 번째 핵 유출혐의는 사담 후세인이었다. 이것은 후세인에게 핵 기술을 제공했다는 두바이 출신의 브로커가 제보한 편지에 칸의 이름이 거명된 것에 기인하고 있으나 추후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사담 후세인과의 거래보다 확실한 핵 기술 유출 건은 북한으로의 핵 기술 유출이다. 1992년 칸은 십여 차례 평양을 방문해 독재자 김정일을 만났다. 여기서 김정일은 사정거리 1,500km에 핵탄두 탑재가 가능한 노동 미사일을 원심분리기술과 교환할 것을 제의했다. 이후로 1997년부터 북한은 무기에 사용 가능한 우라늄 정제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고 파키스탄의 미사일 기술도 크게 도약한 것으로 밝혀졌다. 슈피겔은 작년 1월 16일자 보도에서 칸과 북한의 핵 암거래가 밝혀지게 되자 위기를 느낀 북한이 양자간의 핵 거래를 성사시킨 강태윤을 살해하고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칸의 아내마저도 암살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2. 북한, 핵확산 중심지

이렇듯 칸은 자신을 '21세기의 로빈후드’라 자칭하며 광범위한 외부인사들을 접촉했다. 사우디 국방장관이 칸의 연구소를 방문한 것 이외에도 핵 밀거래를 위한 다양한 접촉이 이루어졌음이 드러나고 있다. 현재 칸은 이런 혐의들이 드러나 활동이 금지된 상태이나 기존의 암거래가 누구에게 어느 수준에 까지 진행되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아직까지 칸의 핵 기술이 알 카에다 등 테러단체의 손에 들어갔다는 증거는 없다. 하지만 오사마 빈 라덴의 핵무기에 대한 집념은 이미 여러 경로를 통해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북한의 김정일이 칸의 역할을 대신하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핵무기의 암거래 네트워크는 2003년 12월 미국 등 서방 국가들로 부터 철퇴를 맞았다. 그해 10월에 이탈리아 타란토에서 핵무기 제조부품들이 실린 독일 화물선 'BBC China'가 적발되었으며 이 배의 행선지가 리비아임이 밝혀졌다. 가다피는 미국의 보복이 두려워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핵무기의 암거래 실태를 스스로 털어놓았다. 이를 계기로 파키스탄의 핵 영웅으로 추앙받던 칸이 주도하고 있던 핵무기 암시장도 폐업하고 말았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를 긴장으로 몰아넣고 현재 20개국이 넘는 국가에서 누가 칸이 주도한 핵 암거래 시장에 관여했고 어떤 나라에 핵 기술들이 거래되고 판매되었는지 수사가 시작되었다. 지금까지의 수사결과는 이미 핵무기 제조기술이 광범위하게 유출되었으나 그 규모와 범위가 어느 정도인지 정확히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인류의 절반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도 있는 가공할 대량살상무기의 소재가 정확히 드러나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전문가들은 인류의 미래를 우려하고 있다.


서방의 정보요원들과 일부 국제원자력 기구(IAEA) 요원들은 슈피겔과의 인터뷰에서 김정일의 도박성을 근거로 향후 북한이 핵 확산의 새로운 중심지가 될 수 있음을 전하고 있다. 김정일은 모든 사람에게 핵무기를 팔 수 있는 인물이다. 그는 핵 무기가 있어야 외부공격을 막을 수 있고 북한의 붕괴를 막을 수 있다고 믿는다. 따라서 핵 무기는 정당방위다. 그가 이런 망상을 버리지 못하는 한 인류는 불행하다.


박상봉 / 독일통일정보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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