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전과 혁신으로 신화 만든 글로벌 경제인’

자유기업원 / 2017-08-01 / 조회: 9,759       미래한국

세상을 바꾼 기업가 시리즈 / 최종현 SK그룹 창업회장


문재인 정부가 2020년 최저임금 1만원과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을 중심으로 하는 ‘소득 주도 성장론’으로 역대 어느 정부도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하고 있다. 한정된 재정을 효과적으로 쓰기보다 각계의 불만을 재정지출을 늘려 달래려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단기적으로는 경기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재정 수지가 나빠질 경우 국가 신인도 하락으로 인한 외화자금 이탈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려는 가운데 기업들에 대한 각종 규제논의가 시작된 위축된 분위기 속에서 본지는 국가경쟁력을 키웠던 기업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연재한다.


<세상을 바꾼 기업가>시리즈는 시장경제 전문 연구기관인 자유기업원이 연재해 소개한 글이다. 지면의 한계 상 저자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본지가 압축, 요약했다. 시장경제 원리가 무시되는 분위기 속에서 독자들에게 바른 길잡이가 되어줄 것으로 기대한다.<편집자 주>


시장경제 존중하는 나라가 선진국


최종현 회장은 공익(公益)과 사익(私益)의 조화를 추구한 경세가였다. SK그룹 경영에 힘쓰면서도 재계총리로서 국가경제와 국가경쟁력강화에도 남다른 열정을 보였다. 1997년 10월, 당시 김영삼 대통령을 예방한 최 회장은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할 것을 대통령에게 긴급하게 제안했다.


금리인하, 5년간 임금동결, 환율 인상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최 회장은 반응이 없던 김 대통령에게 그해 11월 재차 방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후 1개월이 지난 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한국정부만큼 재계의 의견을 잘 수용하지 않는 나라도 드물다. 일본 정부는 재계대표단체인 경단련 회장의 말은 경청해준다. 한국은 전경련 회장이 정부정책에 비판적인 말을 하면 곧바로 ‘괘씸죄’에 걸린다. 대통령과 재계 회장 간에 국정운영과 국가경쟁력 강화 방안 등에 대해 활발한 토론은 거의 불가능하다.


최 회장은 지난 1995년 3번째 전경련 회장 취임 날 대기업규제정책에 대해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했다가 설화(舌禍)를 겪었다. 김영삼 정부가 소유분산을 통해 경제력집중을 억제하고, 그룹경영의 컨트롤타워인 기획조정실을 해체하는 것을 포함한 경제개혁안을 발표한 직후였다. 최 회장은 “문어발이니 업종전문화정책은 무한경쟁시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에디슨이 전구를 만들 때나 하는 이야기라고 소신을 피력했다.


최 회장은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글로벌라이제이션(세계화)에 대비해 기업과 국가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쓴 소리는 작은 정부에 대한 강한 소신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들어주는 데 그쳐야 한다는 것.


정부가 시시콜콜 업종전문화와 소유분산 문제로 기업에 간섭하고 규제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 정부가 산업정책에 대해 일일이 규제를 가하는 것은 기업경쟁력을 훼손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과도한 개입은 자유와 창의를 기본으로 하는 자유시장경제 질서를 심각하게 왜곡시킬 것이라고 본 것이다.


당시 청와대는 난리법석을 피웠다. 한이헌 경제수석은 감히 재계가 정부정책에 대든다며 흥분 했다. 청와대와 재경부, 공정위, 국세청은 재벌에 본때를 보여주자는 데 암묵적인 공조를 취했다. 국세청은 SK그룹에 대한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부당내부거래조사의 칼을 들이댔다. 전방위 보복을 단행한 것이다.


‘작은 정부’ 주장하다 정권의 미움 사


최 회장은 시장경제 주창자였다. 50년대 시장경제의 메카 시카고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하면서 시장경제 신봉자가 됐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게리 베커와 동문수학했다. 시카고 학풍에 영향을 받은 그는 대한민국이 시장경제를 채택해야만 세계초일류국가로 도약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회 될 때마다 시장경제원리를 존중하는 나라가 선진국이라고 강조했다. 시장경제는 자유기업경제라고 했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도 “시장경제의 요체는 정부가 기업에 공갈과 협박을 하지 못하는 경제”라고 했다. 정치가 경제를 이끌어가는 게 아니라 경제가 정치를 이끌어가는 체제를 말한다.


그가 제시한 시장경제란, 사유재산권 보장과 사익추구 인정이 핵심이다. 기업과 선택의 자유, 경쟁촉진, 시장 그리고 작은 정부도 핵심요소였다. 최 회장이 꿈꾸는 시장경제는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집약된다. 작은 정부야말로 초일류국가로 가는 데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작은 정부로 가기 위해선 정부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것이 선결과제였다. 공무원 수를 10분의 1로 줄이자는 파격적인 제안을 했다. 정부는 비즈니스를 하면 안 된다는 신념을 가졌기 때문이다. 국방 치안 외교 등을 제외하곤 모두 민영에 맡기는 민영화를 단행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정부는 기업 활동에 간여해서도 안 된다는 시각을 견지했다. 정부가 직접 또는 간접으로 소유, 운영 중인 영리단체는 모두 민영화해야 한다고 했다. 공사도 민영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철도 항공항만 해운과 모든 정보 통신 업무, 그리고 우편 업무의 상당 부분을 민영화해야 한다고 했다.


외환위기 이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는 한국통신(현 KT), 한국중공업(현 두산중공업), 포스코, 담배인삼공사(KT&G)등을 민영화했다. 반면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는 중단됐다. 최 회장은 큰 시장, 작은 정부가 가장 능률적이라고 보고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고 세제부문의 개혁도 제안했다.


노사문제도 제3의 해법을 제시했다. 회사의 더 많이 일하고 적게 받자(more work, less pay), 주장과 노조의 적게 일하고 많이 받자(less work, more pay), 요구를 조화시킨 많이 일하고 많이 받자(more work, more pay)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더 많은 이익이 나면 근로자와 경영자가 다 같이 배당을 받는 특별보너스 시스템을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SK는 이 같은 노사상생으로 인해 다른 기업들에 비해 파업 등 분규가 거의 없다.


최 회장은 한국을 세계일등국가로 만드는 데 많은 고민을 했다.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로 만드는 전략이 무엇일까에 골몰했다. 한국경제연구원 박사들과 세계 일등 국가 전략에 대해 수많은 토의를 했다. 93년 전경련 회장 취임 이후 국가 경쟁력 강화를 위한 보고서를 만들어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경제학의 한국화


최 회장은 대한민국을 초일류선진국으로 만드는 데 강한 열정을 가졌다. 1인당 국민소득 6만 달러를 달성하는 비전을 제시했다. 1998년 죽음을 눈앞에 둔 폐암 말기 투병 중에도 <21세기 일등국가가 되는 길>을 낼 정도였다.


경제학의 한국화를 추진한 것은 최 회장의 또 다른 업적이다. 초일류 선진국으로 가기위해선 한국적 현실에 맞는 경제학의 정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영미식 경제학은 한국 현실에 맞지 않는다고 봤다. 그가 생존할 때 선진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평균 3만 달러였다. 그는 한국이 서구를 단순히 추종하려면 영미식 경제이론과 모델을 그대로 따라 해도 된다고 판단했다. 서구 선진국보다 국민소득이 2~3배나 앞서는 초일류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면 한국 현실에 맞는 기업이론과 경제이론을 수립해야 한다는 점을 역설했다.


최 회장의 ‘경제학의 한국화’는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한국 경제는 지금 저성장 실업증가, 양극화 및 분배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 한국 경제가 이들 근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최 회장의 주장처럼 성장이 우선시돼야 한다.


좌파학자들은 한국 경제의 문제가 분배와 형평 등 경제민주화가 실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잘못 알고 있다. 그러나 성장과 효율을 소홀히 하고 평등 분배, 균형개발, 반기업 정책으로 가는 것은 경제를 더 침체로 떨어뜨릴 뿐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의 도래를 예견하다


최 회장은 90년대 초반부터 글로벌리제이션(세계화)을 언급했다. 지금은 일상용어가 됐지만, 당시엔 생소한 단어였다. 국내 인사 가운데 세계화시대의 도래를 먼저 예견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수년 후 1996년 세계화 선언을 했을 정도로 최 회장의 국제경제흐름을 꿰뚫는 선견지명은 뛰어났다.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의 도래를 강조한 것은 기업경쟁력이 곧 국가경쟁력이 됐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국가경제가 성장하기 위해선 민간주도의 시장경제체제의 확립이 중요하다고 봤다. 최 회장은 1993년 전경련, 상의, 무협,  경총, 기협중앙회 등 경제5단체가 참여하는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발족시켰다.


기업경쟁력 대신 국가경쟁력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세계경제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만이 아닌 국가경쟁력을 키워야 했기 때문이다. 고질적인 병폐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를 뜯어고치고, 과감한 규제 완화를 통해 기업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데 힘썼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이 강해야 하고, 국제경쟁력이 강한 기업이 많아 나와야 국가의 경쟁력도 강하게 되기 때문이다.


혁신과 기업가정신의 아이콘


최 회장은 그룹 경영에서 10년, 20년, 30년 앞을 내다보는 경영을 했다. 임직원들에게 항상 “10년 뒤에 우리 회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봤습니까?”를 질문했다. 그가 10년 앞을 내다보고 포석을 하는 데 세 가지 원칙을 지켰다.


첫째, 남들이 하지 않는 사업을 해야 한다. 둘째 남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셋째 오랫동안 할 수 있는 것을 한다. 최 회장이 삼성과 LG가 선점한 전자 가전 사업에 뛰어들지 않은 것도 이 같은 이유 때문이다. SK텔레콤을 세계적인 통신사로 발전시킨 것은 남들이 하는 가전 사업을 하지 않는 대신 정보통신사업에 한발 먼저 진출해 주도권을 잡았기 때문이다.


SK그룹 성장사는 혁신과 도전의 역사였다. 국내 최초로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구축한 것이 대표적이다. 60년대 경쟁사들이 직물생산에 안주하고 있을 때 폴리에스터원사공장을 건설하는 데 성공했다. 원사공장은 대규모 투자가 필요한 사업이었다. 당시로선 무모하고 불가능한 사업으로 비쳐졌다.


선경직물은 자본금이 5000만 원에 불과했다. 원사공장 투자규모는 무려 32억 원이나 됐다. 당시 창업주이자 형인 최종건도 동생 최종현의 대담함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일본 최고의 폴리에스터 원사공장을 갖고 있던 데이진과 기술이전 협약을 맺는 데 성공했다. 투자 자금도 데이진 등 일본에서 조달했다.


최 회장은 하루가 멀다 하고 일본 출장길에 올랐다. 기술을 가진 일본 기업들에게 번번이 딱지만 맞는 수모를 당했다. 그는 굴하지 않고 일본 기업을 끈질기게 설득해 기술을 이전받는 데 마침내 성공했다. 대규모 투자 자금도 일본거래기업의 지급보증을 통해 해결하는 창의적 경영기법을 선보였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만 생산하던 폴리에스터필름 국산화에 나섰다. 숱한 실패와 그룹의 부도 위기 속에서 끝내 성공했다.


80년대 유공을 인수한 것도 정경유착 등의 시비가 붙지만, 10년 전부터 철저한 준비를 한 끝에 올린 개가였다. 유공의 매출은 당시 선경그룹의 10배나 컸다. 삼성 현대 등을 제치고 선경이 인수하자 새우가 고래를 삼켰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 회장은 그전부터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끈끈한 인맥을 쌓아 정유 산업 진출에 대비했다. SK는 유공 인수로 섬유 원사업체에서 종합 에너지 및 화학기업으로 도약했다. 사세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재계 10위로 점프했다.


94년 한국이동통신업을 인수하면서 한국의 정보통신산업을 주도한 것도 10년 앞을 내다본 치밀한 준비가 결실을 이뤘다. 당시 인수 가격은 시세보다 2000억 원이나 비쌌다. 그룹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사업이라면 인수 가격 부담은 중요하지 않았다.


최 회장은 이미 1980년대부터 정보통신산업이 미래 핵심 산업이라는 확신을 갖고 관련 조직신설과 투자를 해왔다. 1996년에는 이통 업계 세계 최초로 CDMA(코드부호다중접속방식) 상용화에 성공했다.


최 회장은 정보통신산업 진출 10년과 이후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재계보다 한 발 앞서 준비하고 설계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했기에 세계적인 정보통신기업을 키울 수 있었다. (이의춘 미디어펜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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