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3법으로 사립유치원 실질적 국유화 길 들어섰다

김정호 / 2020-03-10 / 조회: 7,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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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jlfaWro5BXI&t=40s


유치원3법이 통과됐습니다.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에서 사립유치원 관련 일부 조항을 개정한 것인데요. 유치원 설립자가 급여 이외의 돈을 가져가면 형사처벌한다. 이사장이 원장을 겸하지 못한다. 회계는 에두파인이라는 것을 통해 교육청에 실시간 보고하고 감시를 받으라. 급식은 학교급식법에 따라 영양사 급식교사를 따로 둬라. 이런 내용들이 유치원3법이라는 것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치원 사태를 이해하려면 우리나라 사립유치원의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립유치원은 법적으로는 학교이면서도 재정적으로는 자영업처럼 운영되어 왔습니다. 유치원도 학교였기 때문에 교육과정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 통제를 받았지만 재정과 회계에 대해서는 수십 년간 거의 간섭이 없었습니다. 학부모들이 낸 돈을 어떻게 쓰든 유치원 소유자가 알아서 할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이 동네 약국에 낸 돈을 약국 주인이 어떻게 쓰든 자유인 것과 같습니다. 그것이 사립유치원에 대한 정부의 정책이었습니다.


2012년부터 이런 관행이 범죄로 취급 당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무상보육이 시작되었고 학부모들에게 월 20만여 원씩 바우처가 지급되면서 나타난 변화입니다. 국가가 부모에게 아이행복카드라는 것을 나눠주고 아이를 맡긴 사립유치원에 가서 매월 결제를 하는 방식입니다. 정부 돈이 들어가다 보니 사립유치원 회계에 대한 감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겁니다.


문제는 사립유치원에다가 국공립유치원과 똑같은 회계 기준을 적용했다는 겁니다. 그 결과 감사를 받은 거의 모든 사립유치원이 회계부정을 저지른 것으로 적발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립유치원은 회계처리도 허술했던 데다가 유치원 돈과 원장의 돈에 뚜렷한 구분이 없이 수입 지출이 이뤄져 왔던 거죠. 마치 약국 주인이 약국 돈과 개인 돈을 구분하지 않고 쓰는 것과 같은 겁니다. 약국 주인에게 약국 돈을 개인적으로 쓴 것이 범죄라며 처벌을 시작한 셈인 것이죠.


그래서 감사할 때마다 신문에 사립유치원 회계부정 사례가 대서특필되곤 했죠. 박용진 의원이 했던 일은 그 회계감사자료를 통째로 언론에 공개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지적당한 사립유치원들의 신상이 그대로 다 드러나서 난리가 났던 거죠.


명품백을 샀느니 성인용품을 샀느니 하는 이야기들이 다 그래서 나온 겁니다. 즉 유치원회계와 개인회계가 구분이 되지 않은 것을 억지로 구분하기 때문에 범죄가 되는 것이죠. 약국 주인이 고객과 보험공단에서 받은 돈으로 명품백을 사든 성인용품을 사든 무슨 문제가 되겠어요? 그런데 교육부의 기준에 따르면 사립유치원 원장은 급여 이외에는 어떤 돈이라도 사적으로 사용하면 범죄가 되는 것이죠.


유치원 설립자 원장들 입장에서는 2012년부터 상반된 두 가지의 파도가 밀려든 셈입니다. 무상보육으로 정부가 돈을 쏟아 부으니까 사립유치원의 수입이 크게 늘었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수입을 쓰면 범죄자로 몰리게 된 거죠.


그런데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린이집도 사립유치원과 비슷한 처지인데요. 정부가 감사에 적발된 어린이집을 검찰에 고발했고 재판이 열렸죠. 법원의 판결은 무죄였습니다. 즉 아이행복카드로 결제된 돈을 어린이집 원장이 어떻게 쓰든 범죄가 아니라는 겁니다. 결제된 후부터 원장의 사적 재산이기 때문이죠. 자기 돈을 자기가 쓰는 것을 범죄라고 공격하면 공격하는 사람이 잘못하는 거죠. 법원이 그렇게 판결을 내린 겁니다. 사립유치원도 법인이 아니라면 똑같은 원리가 적용되죠.


이제 교육청과 교육부 공무원들이 난처해졌죠. 자신들이 법을 어기지 않은 사립유치원장들을 겁박한 것이 된 겁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감사에 걸린 유치원들을 재판에 넘기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언론에 공개해서 인민재판만 해왔죠. 대다수 국민은 교육부가 만든 인민재판에 동참했습니다.


유아교육법 개정 내용의 핵심은 법원이 합법으로 판결한 행위를 법을 바꿔서 범죄로 규정하는 것입니다. 그 법이 통과됐으니까 이제부터는 판사들도 유죄라고 판결할 가능성이 높겠네요.


유치원3법은 사립유치원을 실질적으로 국가가 몰수하겠다는 법입니다.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3가지를 개정한 건데요. 유아교육법은 설립자라고 하더라도 원장 급여 이외에 어떤 돈도 가져갈 수 없다. 그리고 사립유치원 돈의 출납은 실시간으로 교육청에 보고하고 감시 받아라. 이런 내용입니다. 그러니까 고용된 원장이나 자기가 세운 유치원의 원장을 하는 사람이나 급여 외에는 가져가지 말라. 이런 거죠. 어린이집처럼 급여까지 정해주면 그야말로 유치원을 헌납하게 되는 거죠. 게다가 에듀파인이라는 것은 매일매일 수입지출을 회계처리하고 온라인으로 보고하라는 것인데요. 유치원 원장이나 교사가 회계를 제대로 알리 없으니 직원 두 명은 고용해야 할 겁니다. 영세한 유치원으로선 만만찮은 비용이지요.


사립학교법 개정내용은 법인 유치원에만 해당되는 것인데요. 사립유치원 법인의 이사장이 원장을 겸직하지 못한다는 내용입니다. 이사장은 설립자 또는 소유자가 대부분인데요. 명예직이라 급여를 못 받습니다. 원장을 해야 급여를 받을 수 있는데요. 원장 겸직을 금지해버리니까 아예 무급 봉사직이 되어 버리는 거죠. 자기 돈 들여 유치원 지어 놓고 무급봉사라… 사립유치원 헌납하게 되는 셈이죠. 학교급식법은 유치원도 큰 학교들처럼 영양사, 급식교사, 급식실 이런 것 모두 갖추라는 겁니다.


사립유치원 돈 많은데 그 정도도 못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요. 정반대입니다. 원아 1인당 비용을 보면 압니다. 원아 1인당 매월 쓰는 비용이 사립유치원은 53만원이고 국공립유치원은 114만원이에요. 사립유치원, 이 53만원이 비용인 동시에 수입입니다. 사립이 국공립의 절반도 안 되는 돈을 씁니다. 그러니까 일부 규모가 큰 유치원을 제외하면 근근이 꾸려가는 데가 많아요. 거기에다가 회계직원, 행정직원, 영양사, 급식교사, 급식실 다 따로 두고 나면 대부분 적자를 면할 수 없을 거예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죠. 그런데 정부에서는 폐원도 못하게 막아요. 그러면 설립자는 자기 돈으로 적자 메우면서 망할 때까지 문을 열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그러라는 거죠.



하지만 막는데도 한계가 있지요. 정부가 막고 있는데도 폐원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휴·폐원 유치원 숫자를 보면 2017년 144개소였는데 2018년 사립유치원 사태가 터지면서 196개소로 늘었고요. 2019년 4월까지 360개소가 휴·폐원을 했습니다. 이게 4월 통계이니까 연말까지는 이보다 훨씬 많아졌겠죠. 더 이상 막을 수 없는 지경이 된 겁니다.



사립유치원은 문을 닫으려 하고, 국공립유치원이 생기는 속도는 느리죠. 정부에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요? 첫째는 부모들이 아이들 보낼 유치원 자리가 줄어듭니다. 둘째, 교육비가 늘어납니다. 국공립유치원은 사립에 비해서 두 배나 더 많은 돈이 듭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거꾸로 알고 있죠. 그러니까 사립이 줄어들수록 교육비는 급증합니다. 다만 학부모가 아니라 엉뚱한 국민이 세금으로 부담하는 거죠. 셋째, 유치원부터 획일적 교육이 될 겁니다. 사립유치원들은 부모의 선택을 받으려고 매우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죠. 이제 그런 거 필요 없습니다. 공무원 말 잘 듣는 것이 우선이죠. 사립도 국공립과 똑같아 집니다. 국립 탁아소로 변해가는 거죠.


스웨덴, 덴마크 같은 유아교육 선진국들은 사립이든 국공립이든 유치원에 자율권을 줍니다. 학비만 국가가 학부모들에게 바우처의 형태로 지원해주죠. 어떤 유치원, 어떤 교육 프로그램이 좋을지, 선택은 학부모가 하라는 겁니다. 자율과 다양성이 아이들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모든 것이 실질적으로 국유화되고 정부 통제 하에 들어가고 있습니다. 자율과 창의는 어디에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아이들이 걱정입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1.23 <디지틀조선TV>로 방영된 <유치원 3법은 국가가 실질적으로 사립유치원을 몰수하겠다는 것>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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