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는 좌익세력이 장악해 우익 콘텐츠는 설 곳이 없다?

이문원 / 2020-03-16 / 조회: 1,100

상당히 오래된 믿음이다. 아예 신문지상에서 그런 식으로 다루는 경우도 많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 우익언론매체에서 '좌익적’이라 평하거나, 아예 이데올로기적으로 바라볼 가치가 없다고 평가되는 할리우드 콘텐츠 중 상당수가 정작 미국언론에선 우익 콘텐츠로서 분류되기도 한단 점이다. 한국과 미국이 영화나 드라마 등 극예술 콘텐츠에 있어 그 이데올로기를 가르는 기준이 다르단 얘기다.


그럼 대체 무엇이 그렇게 다른 걸까. 일단 미국언론 곳곳에서 등장하고 있는 다양한 입장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에서 '기독교영화’는 근본적으로 우익영화로서 분류된다


첫째, 일단 기독교, 특히 개신교 관련해 그 신앙과 신앙심을 다룬 콘텐츠는 미국에서 일단 우익 콘텐츠로 본다. 인구 70~80%가 기독교도인 나라에서 좀 의아한 얘기긴 하지만, 애초에 미국 보수주의의 근간과도 같은 생활 및 사고방식들 상당 부분이 기독교신앙과 그 생활양식에서 도출됐다고 보는 입장이 존재한다. 그리고 미국선 명확한 종교색을 띠는 영화들이 꽤 많이 나오고, 또 상업적 호응도도 높다. 심지어 '백인사회’ 기독교영화와 '흑인사회’ 기독교영화가 서로 다른 제작사에서 따로 나와 거기서 다시 갈래가 갈라지기도 한다. 그렇게 각기 다른 인종 구분으로 기독교도 관객들을 모은다.


먼저 '백인사회’ 기독교영화를 만드는 제작사론 알렉스 켄드릭이 창립한 셔우드 픽쳐스를 대표로 들 수 있다. 셔우드 픽쳐스는 미국 조지아주에 위치한 셔우드 침례교회 사업 브랜치다. 회사 대표이자 감독까지 맡고 있는 켄드릭은 셔우드 침례교회의 미디어 관련 겸임목사다. 과거 크리스천 라디오 방송국 DJ로 일했던 경력이 있으며, 셔우드 픽쳐스에서 나온 '파이어프루프-사랑의 도전’, '용기와 구원’, '기도의 힘’, '오버커머’ 등 영화들은 모두 북미시장에서 3,000만 달러 이상 흥행을 거두며 '중박’ 라인에서 계속 수익을 올려왔다.


한편 '흑인사회’ 기독교영화 대표주자로 꼽히는 제작자이자 감독, 각본가이기도 한 타일러 페리 영화들은 그보다도 흥행수익이 높다. 거의 매년 한 편씩 새 영화를 내놓으며, '마디아’란 흑인 노파를 주인공 삼은 코미디영화들이 특히 인기가 높다. 4,000~9,000만 달러까지 북미지역에서 벌어들인다. 기독교신앙뿐 아니라 흑인사회와 그 구성원들 면면을 담아내는 측면도 있어 흑인관객들에게 인기가 높다.


둘째, 이른바 '음모론’ 관련 각종 미스테리/스릴러 콘텐츠도 미국선 그 방향성에 따라 우익과 좌익을 가르곤 한다. 한국 우익정치진영에서 '음모론’ 하면 바로 좌익세력 거짓선동을 떠올리는 분위기와는 크게 다르다. 그리고 그렇게 '우익 음모론’과 '좌익 음모론’ 콘텐츠를 가르는 기준은, 근본적으로 리버테리언적 관점에서 비롯된다.


예컨대, 미국 내 대표적 우익방송사로 알려진 폭스TV의 대히트 드라마 시리즈 'X-파일’을 들 수 있다 'X-파일’은 그 자체로 온갖 종류의 음모론 덩어리다. 확인되기 힘든 초자연적 현상 내지 사건들을 추적하는 두 FBI 수사관들의 모험을 다뤘다. 그런데 여기서 초점은 언제나 '공적개념’이다. 정부나 이런저런 정부기관 등이 계속 미국시민들에게 뭔가를 감추고, 그들 모르게 이런저런 일들을 진행하고 있다는 설정 말이다. 궁극적으론 마땅히 시민들에 알려져야 할 정보들을 감추며 자신들 이익에 맞도록 일을 진행하고 있는 공적개념에의 '경계’를 강조한다.


반면 '좌익 음모론’ 콘텐츠는, 얼핏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타깃이 정반대다. CBS 등 각종 민영방송사들과 영화계에서 나오고 있는 음모론 콘텐츠 상당수는 '대기업’이 자신들 이익을 위해 뭔가 음모를 꾸미고 있단 식이다. 거기다 같은 민간 내에서도 대기업과 소상공인을 또 한 번 가르기도 한다. 2001년작 '패스워드’에선 얼핏 빌 게이츠를 연상시키는 IT 대기업 총수가 자신들 창고에 틀어박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 중인 프로그래머들에게서 몰래 정보를 빼내거나 그들을 암살하기까지 하는 상황을 다뤘다.


결국 코드는 '대기업’을 '경계’해야 한단 설정이며, 여기선 정반대로 FBI 등 공적기구들은 이들 불온한(?) 대기업들 비리를 밝혀내는 정의의 사도로 등장한다. 공적개념에 대한 입장 차이가 이렇게 정반대로 드러나는 게 바로 미국식 좌우 '음모론’ 콘텐츠 구분이다.


리버테리어니즘에 입각해 대중문화 콘텐츠 이데올로기를 판단하는 미국


셋째로 꼽을 수 있는 건, 2008년 '아이언맨’의 대성공 이후 지난 10여 년 간 미국은 물론 전 세계 영화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슈퍼히어로’ 콘텐츠다. 영화를 중심으로 이제 TV드라마로까지 뻗어나가는 슈퍼히어로 콘텐츠에 대해 미국언론은 근본적으로 우익 콘텐츠란 입장을 취한다. 의외지만 실제로 그렇다. 이유는 단순하다. '남보다 뛰어난 능력’, '강한 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취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음모론’ 콘텐츠 사례에서 '대기업’에 대한 입장 차이와 견줘보면 상황을 쉽게 알 수 있다.


절대다수 슈퍼히어로 영화들에서 남보다 월등히 강한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들은 결과적으로 어떤 식으로건 인류 전체에 번영을 가져다준다. 절대 그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는 것이고, 그저 그들 가치관만 확인할 수 있으면 되는 일이다. 2002년 '스파이더-맨’에 등장하는 대사 “강한 힘은 강한 책임감을 필요로 한다”로 대변된다.


실제로 이 같은 입장이 미국사회에서 큰 화두로서 거론된 게 2004년 픽사의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 '인크레더블’이 등장했을 때다. '인크레더블’은 강한 힘을 지닌 슈퍼히어로 가족을 다뤘다. 그런데 곧 일반시민들은 그들이 그렇게 남다른 힘을 지녔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경계하며, 억압해 그 역할을 축소시키자 주장한다. 그들이 자기 일을 못하도록 '묶어놓자’는 것이다. 영화는 결국 시민들이 '강한 힘’은 곧 '큰 수혜’를 가져다준단 점을 이해하면서 '인크레더블’ 가족이 다시 자기 일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단 결말로 끝난다.


영화가 등장하자마자 가디언 지 등 전 세계 언론이 들썩였다. 특히 휴스턴프레스 같은 매체는 ''인크레더블’이 아인 랜드적 프로파간다인 5가지 이유’란 제목으로 긴 비판기사를 내보내기도 했다. 아인 랜드 소설 <아틀라스>에 등장하는 '강자’들에 대한 입장과 정확히 같은 스탠스를 취하고 있단 이유에서다. 틀린 얘기가 아니다. 나아가 슈퍼히어로 영화들 대부분이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단 점에서 사뭇 주목할 만하다.


슈퍼히어로 콘텐츠 관련해 더 언급할 부분이 있다. 이런저런 슈퍼히어로 영화들에 등장하는 '빌런(villain)’, 즉 악당 캐릭터들에 대해서다. 신기할 정도로 절대다수가 그냥 범죄마인드를 지닌 이기적인 이들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정치경제사회문화적 이상주의자들이며, 그 이상을 강력한 억압과 강제로서 실체화시키고 싶어 하는 설계주의자들이란 점이다. '스파이더-맨 2’(2004)에 등장하는 빌런, '닥터 옥토퍼스’가 대표적이다. 장애인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오히려 세상을 위협하고 압박하는 뒤틀린 이상주의자다.


이런 식의 설정들은 여타 유소년층 타깃 미국 애니메이션들에서도 종종 발견된다. 2014년 작 애니메이션 '레고 무비’도 좋은 사례다. 영화는 궁극적으로 미리 '윗선’에서 짜놓은 레고의 틀 안에서만 사고하며 거기서 벗어나면 규제를 가하는 설계주의란 나쁜 것이며, 모두가 자유롭게 자기들 마음대로 새로운 규칙들=새로운 레고를 만들어갈 수 있는 열린 자유사회가 이상적이란 메시지를 전한다.


평범한 사회성공담도 우익 콘텐츠로 바라보는 이유


그와 비슷한 또 다른 사례들이 할리우드 도시액션영화들에서도 엿보인다. 미국언론에서 '우익영화’를 지칭할 때 그 표지모델처럼 등장하는 캐릭터, '더티 해리’에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맡은 형사 해리 캘러핸 경우다. 이를 넷째로 꼽아볼 만하다.


'더티 해리’ 시리즈는 총 5편까지 나왔다. 차례로 1971년, 1973년, 1976년, 1983년, 그리고 1988년에 완결됐다. 그만큼 인기가 엄청났던 캐릭터다. 배우로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대표 캐릭터로도 꼽힌다. 그런데 '더티 해리’는 그 시작부터 남달랐다. 명백한 연쇄살인범이 이런저런 '범죄자 인권’ 관련해 보호를 받으며 오히려 다시 사회로 풀려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 스스로 경찰배지를 던져버리고 직접 그를 좇아 사살한다.


신좌파 민권운동 시기였던 1970년대 초반 그에 대한 카운터컬쳐로서 등장해 엄청난 호응을 얻었고, 이어 수많은 도시액션영화들이 비슷한 스탠스를 취했다. 대표적으로 '자경주의’를 다룬 1974년 작 '데스 위시’가 있다. 찰스 브론슨 주연작이다. 평범한 건축가가 좀도둑들에 의해 아내를 잃고 딸이 강간당한 뒤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상황을 겪자, 관료주의 틀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경찰 대신 스스로 권총을 들고 나가 좀도둑들을 하나씩 사살한단 내용이다.


이런 종류의 '자경주의’ 영화들도 미국선 뚜렷한 우익영화로 분류된다. 미국의 좌우간 뜨거운 정치사회적 화두, 총기소유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공적개념이 개인의 이런저런 문제들을 해결하고 보호해주리란 공적개념 만능주의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자기 권리를 갖고 자기 안전과 사회정의를 실천해야 한다는 식 사고가 배있다.


마지막으로, '어려운 환경에서나마 꿈을 좇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식 보편적 메시지 영화들 역시 미국선 우익영화로 분류된다. 사회주의가 말하는 계급론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사회에선 실제적으로 그런 계급이 존재하지 않고, 또 얼마든지 스스로 노력을 통해 운명을 바꿀 수 있는 '열린사회’란 점을 긍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작 '행복을 찾아서’가 한 예다. 1980년대 초반 레이건정권의 고용유연화 정책 하에서 어느 고졸 흑인 방문판매원이 자기 운명을 바꾸고자 무급인턴으로 일하며 결국 성공한 주식거래인으로 거듭나 백만장자가 된단 내용을 담았다. 무급인턴 과정에서 돈이 없어 어린 아들과 지하철 화장실에서 자면서까지 고생을 했지만, 노력은 헛되지 않았단 메시지로 끝맺어진다.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로도 지명된 2009년 작 '블라인드 사이드’도 비슷한 맥락이다. 어느 빈곤층 흑인청년이 백인중산층 가정 후원으로 풋볼스타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블라인드 사이드’는 인종과 경제계층 차이까지도 넘나드는 성공담을 그렸단 점에서 더더욱 우익적이란 평가가 이뤄졌다. 그간 '흑인영화’들 대부분이 인종차별과 관련해 사회전복 등 도발적 메시지를 전해왔단 점에서 더더욱 그렇다.


전하는 메시지는 우익적인데, 정당은 좌익정당을 지지한다는 아이러니


한국서 영화나 드라마 등 극예술 콘텐츠를 놓고 좌익과 우익 이데올로기를 가르는 기준은 분명 이런 식은 아니다. 대부분 명확한 '반공주의’ 메시지가 들어가 있어야 우익 콘텐츠로 보며, 특히 6.25 등 직접적 소재를 택해 북한을 '악의 축’으로서 정확히 묘사해야 비로소 우익 콘텐츠로 분류되곤 한다. 더 있다. 영화감독 등 작가가 사회주의 기반 정당에 가입한 전력이 있거나 좌익정권에서 '자리’에 앉아본 경험이 있으면 더 볼 것도 없이 그 영화나 드라마 등도 좌익 콘텐츠로 분류된다.


좀 이상한 구분이다. 예컨대 노무현정권에서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역임했던 이창동 감독 같은 경우, 그의 2018년 작 '버닝’은 어떤 식으로건 좌익적 메시지를 전한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기생충’과 같은 경제계층갈등을 다뤘지만, '버닝’의 주인공은 이른바 '가진 자’들에 대한 피해의식과 열등감 탓에 그들을 '악()’으로서 간주, 그에 위해를 가하려 한다. 결국 모든 갈등은 '마음 속’에 있다는 유심론적 입장을 취한단 점에서, 환경이 그 마인드까지 지배한다는 식 유물론적 사고를 바탕으로 한 사회주의와는 정반대 입장에 서있다.


한편, 단순히 공산주의와 싸우는 반공영화 정도만 우익영화로 본다면, 그런 종류 영화는 한국, 미국을 포함 전 세계적으로 1990년대 초반 냉전종식 이후 사실상 사멸되다시피 했다. 1980년대 중반 '람보’ 등이 그 마지막 타선이라 볼만 하다. 소재로서 더 이상 흥미롭지 않고, 그만큼 상업적 호응도도 떨어져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6.25로 시작되는 이데올로기 전쟁이 아닌 '클린 워’ 시절, 제1, 2차 세계대전 영화들이 전쟁영화 콘텐츠 전반을 대체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한국은 여전히 남북분단 상황이기에 조건이 좀 다르긴 하다. 그러나 한국서도 북한을 다소간 명확한 '악의 축’으로 묘사한 6.25 전쟁영화들은 2010년대 들어서도 종종 등장해왔다. 2010년 작 '포화 속으로’, 2016년 작 '인천상륙작전’ 등이 예다. 둘 다 대중반응도 좋았다. 나아가 '국제시장’처럼 개발연대 자체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영화 역시 우익영화로 분류될 수 있다. '국제시장’은 1,000만 영화였다. 그런 점에서 보면 한국 역시 영화계 등 대중문화판을 좌익세력이 '점령’했다고까지 보긴 힘든 구석이 있다.


물론 할리우드건 충무로건 어디건, 전반적으로 대중문화인들이 리버럴 성향이라 볼 만한 소지는 많다. 그런데 그들이 다루는 콘텐츠 '메시지’에 주목해 상황을 되짚어보면, 의외로 그렇다고 보긴 힘든 구석도 많다. 특히 관점을 단순 반공주의에서 벗어나 리버테리언적 관점으로 확대시켜 놓고 보면 더더욱 그렇다. 공적개념 개입과 억압에서 벗어나 개인 중심 사고에 집중하고자 하는 콘텐츠는 생각보다 많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은 여러 가지로 지적된다. 대표적으로, 사실 대중문화인들 다수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충분한 지식을 지니지 않은 채, 상당부분 대중영합적 '패션’으로서 특정 정당이나 정치세력을 지지하고 있을 수 있단 것이다. 특히 한국서 이런 경향이 짙으며, 리버테리언적 사고를 오히려 좌익적, 사회주의적 스탠스인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이들도 상당수 존재한다.


알고 보면 저 많고 많다는 할리우드 리버럴들도 할리우드를 장악하고 있는 유태인 등의 인종적 경향성 탓인 경우가 많다. 그들이 콘텐츠를 통해 전하는 메시지는 또 다르단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어찌됐건 대중문화계는 '콘텐츠’ 산업이고, 대중문화인들 영향력도 바로 콘텐츠에서 비롯되는 것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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