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50의 나비효과,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이상진 / 2019-12-24 / 조회: 521

현 정권이 들어서면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양극화를 해소하고 그 처우 개선을 위한 정책으로 내세운 것 중 하나가 바로 '시급 1만원 시대'다. 이제는 그럴 때가 되었다며, 설문 조사에서도 국민의 압도적인 찬성이 대다수라며 막무가내 밀어 붙인 끝에 2019년 현재, 대한민국 최저시급은 8,350원으로 확정되었다.


지금보다 더 많은 돈을 주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정책이란 감정에 치우치거나, 숲이 아닌 나무만 봐서는 안 되는 것이며, 더군다나 정치적인 이해관계나 이슈에 편승한 정략적 색채로 변질되어서는 더욱 안 되는 것이다.


해마다 내년 최저 임금 문제를 놓고 노사정이 한 자리에 모여 논쟁이 벌어진다. 하지만 제 아무리 통계 수치를 들이 밀며 최저 임금의 비현실성을 꼬집어 봐도, 노조와 정치권은 두 눈과 두 귀를 막고는 오로지 'GO'만 외칠 뿐이다. 그나마 올해는 경제 내외 변수 및 지표 악화를 의식했는지 전년 대비 10.9% 인상한 작년에 비해 2.9% 인상된 8,590원으로 타결되었다. 현 정권이 들어선 2017년 이후, 최저 시급은 6,470원에서 7,530원으로, 또 다시 8,350원에서 8,590원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결정된 것에 따른 결과는 어떤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묻겠다. 그래서 8,530원의 시대를 살아 가는 우리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가. 그래서 우리 모두 행복한가. 그저 애매모호하거나 입맛에 맞는 통계와 설문조사를 발표하며 자화자찬할 것이 아니라, 지금 당장 밖으로 나와 서민들의 얼굴을 보라. 웃음기 하나 없이 희망조차 보이지 않는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눈물과 한숨이 보이고, 들리지 않는가.


8,350원의 시대가 열리자, 아르바이트 노동시장의 주 공급자인 대학가에서는 함성 소리가 터져 나왔다. 아르바이트만으로도 생활비와 등록금을 해결하고, 문화와 여가생활까지 누릴 수 있을거란 기대에서였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그 최저 임금을 지급하는 자영업자나 중소기업에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 그대로 순수익은 그만큼 줄어 들 수 밖에 없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 결과, 그 정책이 그릇되었다는 것을 증명케하는 부작용과 역효과는 머지 않아 수면 위로 올라 왔다.


최저 시급 8,350원이 시행되면서, 편의점이나 카페, 영화관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는 오히려 알바생을 줄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다. 혹자는 고작 시급이 820원 올랐을 뿐인데 또 다른 갑질이 아니냐고 했다. 미디어와 정치권 역시 당사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기 보다는 힘든 척 하는 것이라며 그저 모두가 잘 사는 '억지 상생'을 솔선수범하길 강요했다. 그들에게는 '갑질’과 '이기주의자’라는 프레임이 씌워졌다.


내수시장이 악화됨에 따라 서민들의 지갑은 점점 얇아졌고, 따라서 거리에서 지갑을 여는 일도 줄어 들었다. 나날이 까다로운 근로계약에 지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은 결심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매장엔 알바생 대신 소위 사장님의 이름표를 내려 놓은 그와 그의 가족들로 채워졌다. 큰 변화임에는 틀림 없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부정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일부 알바생과 달리, 자기 가게이기에 보다 더 쾌적한 공간을 유지하고, 친절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그들에게 호의적인 고객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비록 예전처럼 뒷짐 지고 한가롭게 매장을 둘러 보는 여유는 없어졌지만, 인건비를 줄이면서도 순수익은 증대시킬 수 있는 첫 단추이자 혁신의 시작이었다.


애덤 스미스는 개개의 모든 이해는 궁극적, 자연적으로 조화를 이룬다는 사상을 바탕으로 흔히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s)’이라 일컫는 '시장(market)’이야말로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영업계에서는 끊임없는 고민과 시도로 '혁신'을 선택했다. 매장에 무인발급기인 '키오스크'를 설치하여 굳이 대면하지 않아도 내가 원하는 상품과 서비스를 선택하고 결제까지 함으로써, 알바생의 불친절이나 실수에 따른 시간 허비나 감정 소모를 줄일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주문 번호에 따라 소비자가 직접 카운터에서 음식이나 음료를 가지러 가고, 다 먹은 음식물을 반납하게 되면서 인건비는 자연스레 감소되고, 그러한 수익은 고객에게 보다 합리적인 가격과 질 좋은 상품으로 제공되는 선순환을 만들게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주문한지가 언제인데 아직 안 오는거야’, '내가 먼저 주문했는데 왜?’, '내 돈 주고 내가 사먹는데 왜 눈치를 봐야 하지?’와 같은 불편과 부담감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받음으로써 궁극적으로 모두가 윈윈(win-win)하는 긍정적인 변화를 낳았다.


또 하나,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의 거리가 가까워지고, 보다 접점이 다양화됨에 따라 온 오프라인 채널을 통해 새로운 소통과 공유의 장이 되고 있다. 생산자 입장에서는 보다 가까이 그리고 직접적으로 소비자의 반응을 파악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되었고, 소비자 역시 채널을 통해 상품과 서비스에 대한 평가 및 보완점을 공급자에게 직접 전달하고 반영된다는 점에서 수익창출과 효용극대화가 동시에 충족되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계기가 되었다.


애덤 스미스가 관찰한 시장은 자율적으로 작동하면서 '기술혁신의 촉진, 인간 욕구의 충족, 낭비의 최소화, 탐욕스러운 기업의 규제, 민중의 부유를 가능케하는 기구'라고 말한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그것을 나누어야 하고, 만일 있는 자가 손해를 본다고 해서 그것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라는 삐뚤어진 경제관이야말로 '8350’이라는 이름하에 2019년 대한민국을 병들게 하고 있다. 최저시급 인상으로 20대 청년은 잠시 행복할지 몰라도, 결국 그들의 설 자리까지 사라졌다는 점에서 현실은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이자 임시방편 정책일 뿐이다. 누군가가 갈라 놓은 갑과 을 사이의 갈등과 혐오, 하지만 그들 모두 가정에서는 누군가의 부모이자 자녀라는 것을 왜 깨닫지 못 하는가. 240여 년 전, 경제는 개개인이나 정치권력이 아닌 시장이 해결해야 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충고를 우리는 왜 모르는가.


'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또는 빵집 주인의 자비가 아니라 그들이 자신의 이익, 즉 돈벌이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라는 애덤 스미스의 말을 마치 '자기 밖에 모르는 인정머리 없는 집단으로 양극화하여 프레임 씌우고, 시장경제에 개입하려는 위선(僞善)과 꼼수를 범하여서는 안 될 것이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또 어딘가에서는 밑도 끝도 없이 막 퍼주고, 국민들을 편 가르기하며 시장경제를 들었다 놨다하는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손의 움직임’에 평범한 직장인으로서 벌써부터 기대보다는 우려 섞인 한숨이 나오는건 왜일까..'답정너(답은 정해져 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라는 신조어처럼 전자와 후자, 두 '보이지 않는 손'의 성패는 이미 정해져 있었는지도 모른다.


2019년과 2020년, 8,350원과 8,590원 사이. 여러분의 살림살이는 좀 나아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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