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진보’라고 불러주어서는 안 되는 이유

현승효 / 2019-12-24 / 조회: 517

우리 가운데 현재까지도 그들은 '진보’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다. 누군가는 그렇게 불러주어야 인간관계를 원만히 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누군가는 '진보’라는 이미지가 좋은 것이고 '보수’는 나쁜 것이어서 '진보’라는 용어는 절대로 사용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러한 두 주장 가운데서 어느 쪽이 옳을까? 이 글에서는 '진보’라는 용어는 단순히 이미지의 문제가 아니고 더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절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역사적으로는 1980년대 이전 아직 소위 '학생운동’이라는 것이 거대한 세력이 되지 않았을 때부터 그들은 스스로 '진보’라고 불러왔고, 우리는 그들의 세력이 작았기 때문에 '진보’를 자처하는 것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87 체제’ 이후 그들은 하나의 세력이 되었고 '진보’라는 용어도 그들을 따라서 확산하게 된 것이다. 어느 논평가는 좋은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진보’로 부를 수 있으며 그렇지 않은 것은 '좌파’라고만 불러야 한다는 말을 하였는데, 이것 또한 올바른 용어 사용은 아니다. 왜 그런지 살펴보자.


'진보’라는 용어는 그들의 세계관인 정향진화설(定向進化說)에 근거한다. 이 용어는 생물학에서 기원하였는데, 생물이 진화할 때 생존에 유리하게 하려면 한 방향을 정해서, 단계를 밟아서 진화해 나간다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맞는 말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조류가 원래는 바다에서 헤엄치다가 육지로 와서 기는 생물이 되었다가 최종적으로 날게 되었으므로, 이동의 자유도가 높아지는 방향으로 정해놓고 진화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손을 낳을 때 무작위의 변이가 일어나서 생존에 유리한 개체가 살아남는다는 자연선택설이 현재는 진화론의 정설로 여겨진다.


스스로 '진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역사는 최종적으로 사회주의로 진화하는 것이며 따라서 인위적으로 사회주의로 만들어 가는 것이 옳다고 여긴다. 그들 스스로를 '진보’라고 용어 정의를 함으로써 은연중에 그들 사상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들을 '진보’라고 불러준다면 역사가 일정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정향진화설을 인정해 주는 꼴이 된다. 그런데 우리 자유주의자들은 자연선택설에 가까운 사고를 한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자유롭게 행동을 하고, 시장(市場)에서 행동함으로써 생존에 유리한 행동 양식은 살아남고 그렇지 않은 행동 양식은 사라진다고 믿는다. 이러한 사고에서는 그들은 '진보’가 아니다. 우리는 사회의 정향진화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자들은 한술 더 떠서 세상의 정향진화를 위해서는 인위적으로 사회를 바꾸어야 하고, 그들 가운데 선지자가 있어서 완전한 지식을 가지고 진화를 완성해 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그들의 완전한 지식을 바탕으로 적정한 최저임금은 1만원이고, 적정한 근로시간은 주 52시간이라고 마음대로 정해도 된다고 믿는다. 이에 반대되는 것은 '적폐’라고 불러도 된다고 믿는다. 선지자의 완전한 지식에 대항한다고 그들은 믿기 때문이다. 임금 때문에 실업자가 늘어나도, 근로시간 때문에 산업이 위축되어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러한 것쯤이야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소소한 희생일 뿐이다.


사회를 완벽하게 설계할 수는 없다. 카오스 이론에서는 '나비효과’가 있다. 물리학자 에드워드 노턴 로렌츠가 고안한 것으로,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의 토네이도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무엇이든 교훈적인 것과 연관지어 생각하려는 한국 사람들은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말고 신경 써서 좋은 나비효과를 만들어야 한다”라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비효과는 그런 의미가 아니다. 세상에는 셀 수 없는 나비들이 있고, 이 나비들이 어디에서 어떤 행동을 해서 토네이도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지 알 수 있는 완전한 지식은 우리에게 없다는 뜻이다. 따라서 사회는 완벽하게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것이 나비효과의 가르침이다.


이러한 가르침은 소설 『쥬라기 공원』에서 잘 나타난다. 이 소설에서는 카오스 이론과 나비효과를 인용해서 세상을 설계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주장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공룡을 복원해서 공원을 만들었는데, 통제할 수 없는 사건들이 일어나서 파국을 맞는다는 것이다. 같은 제목의 영화에서는 이런 이야기가 생략되어 있으므로 나비효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꼭 원작 소설을 읽어 보시기를 권해드린다.


결론적으로, 세상은 방향을 정해놓고 진화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상이 어떻게 변해 나갈지를 완전히 아는 지식은 우리에게 없다. 따라서 우리는 인위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사회를 개조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복거일 선생의 말씀대로, 진화하게 하라. 진화가 일어날 수 있도록 많은 화학반응이 일어나도록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이 반복하도록, 그렇게 자유롭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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