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고·외고 폐지 정책, 다양성과 평등에 역행한다

조범수 / 2020-08-10 / 조회: 525

내년부터 대원국제중학교와 영훈국제중학교가 일반중학교로 전환된다. 필자의 모교인 용인외대부고도 역시 일반고등학교로 전환될 위기에 놓여있다. 문재인 정부가 2025년까지 모든 자율형사립고등학교와 외국어고등학교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9년 자사고 지정취소 처분을 받은 숭문고, 배재고, 이대부고 등 9개교는 지금까지 행정소송을 벌이고 있다.


다원주의적 사회를 지향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같은 정책 기조에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외고와 자사고를 없애는 정책은, 하나의 제도에서 하나의 생각만을 강요하는 관치교육의 폐단을 더욱 가중시키는 방향이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교육부가 정하는 교과 내용을 그들이 허락한 방식대로 가르치고, 그들이 결정한 평가 방식대로 재단하도록 '모든 학교'에 강요하는 것이 과연 다원주의에 부합하는 교육 제도인가? 자사고나 외고는 공교육의 획일적 구조에서 학교와 학생들에 아주 미약하게나마 숨통을 틔워주는 장치였다.


물론 ‘자율형’사립고등학교들도 충분한 수준의 자율을 누리지는 못한다. 교육 당국은 특정 과목에 최소 이수 시간을 규정하거나, 학교가 해외어학연수와 같은 특정 활동을 주도하지 못하게 제한하는 등, 학교 운영에 전반적으로 개입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성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일반고와 비교했을 때, 자사고는 분명 정부의 규제를 적게 받는다. 혹자는 자사고와 외고가 소위 ‘대입사관학교’로 전락했다며 폐지를 말하는데, 이는 어불성설이다. 공교육 제도가 요구하는 교육과정 상 고등학교의 주된 기능은 단연 학생들의 대학 진학을 돕는 것인데 직무유기를 하라는 것인가. 다만 자사고는 학생들의 대입을 도우면서도 동시에 다양한 교육의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생회를 조직하고, 자유롭게 동아리를 만들어 서로 협력·경쟁하고, 학교 안팎에서 행사를 여는 등 학생이 주체가 되어 교육의 역동성을 키워갈 수 있다.


많은 논자들은 바로 그런 교육을 ‘있는 집안’ 자제들만 받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한다. 필자도 이에 동의한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라도 더욱이 더 많은 학교들에 자율을 허하고 외고나 자사고처럼 변모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하는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공교육 제도 전반이 대대적으로 개혁되어야 할 것이지만 말이다. 신라호텔의 애플망고빙수를 소수만 먹는다고 해서 그것을 못 팔게 해버리겠다는 심보로는 빙수 시장에 아무런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하겠다는 정책의 핵심은 기득권들의 ‘특권’을 폐지하겠다는 데에 있다. 마치 부유층의 ‘전유물’인 자사고와 외고를 폐지하면 교육 평등의 대동 사회가 도래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사기를 치는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불평등은 교육을 평준화했을 때 심해진다. 자사고와 외고가 없어진다면, 강남 8학군 학교들의 인기는 더욱 뜨거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 학교는 강남 8학군으로 전입하지 않으면 입학이 어렵기 때문에 불평등은 더욱 심화하게 된다. 강남 집값은 또 한번 폭등하면서 경제 불평등도 동시에 가중될 것이고, '그들만의 리그'는 철옹성처럼 두터워지게 된다. 현재 외고나 자사고에는 물론 부유층 자녀들이 많겠지만, '강남 8학군'에 집을 소유하고 있지 않은 계층과 소수의 저소득층 자녀들도 어느 정도 있다. 여러 부차적인 입시 제도나 장학금 제도 등을 통해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약자의 진입장벽을 낮추었기 때문이다.


어디 강남 8학군 학교 뿐이겠는가. 자사고나 외고와 같은 수월성 교육의 창구를 막아버리면 해외 유학이나 국제학교에 대한 수요도 치솟게 된다. 값비싼 비용에 따른 해외 유학과 국제학교 진학의 높은 진입장벽을 고려할 때 이는 불평등을 더욱 가중시키는 조치다. 대표적으로 송도에 위치한 채드윅 국제학교의 학세권은 자사고 폐지 정책으로 이미 쏠쏠한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일반고에서 제공하는 교육이 가히 지리멸렬하다는 건 주지하는 사실이다. 그런데 이 무책임한 정부는 일반고 교육의 실패 원인을 외고와 자사고에서 찾는다. 하지만 사실 일반고의 실패는 공교육 레짐의 인력 충원 방식이나 예산 조달 방식, 교육과정 등의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자연스러운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연공서열제도나 교원순환제도를 비롯해서 교육 공급자들의 경쟁을 가로막는 모든 제도들이 공교육을 좀먹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들이 많은 국민들의 반발을 사는 이유는 현 정부 고위직들의 자녀 다수가 특목고나 국제학교, 또는 해외 보딩스쿨을 나왔기 때문이다. 당장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의 두 자녀가 모두 외고를 나왔고, 곽노현 전 교육감의 아들도 외고를 나왔다. 그러면서 조희연 교육감은 라디오 방송에서 "양반제 폐지는 양반이 주장해야 설득력있다"는 망발을 서슴치 않았다. 그는 두 아들을 고등학교에 보내기 훨씬 전부터 평등주의적 교육관을 가지고 있었고, 충분히 스스로 '양반'이 되길 거부할 수 있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결국 이러한 정책의 본질은 '사다리 걷어차기' 자체다. 자기 자식은 수월성 교육으로 명문대에 보내놓고 이제 와서 '수월성 교육은 안된다'며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절대로 더 튼튼하고 안전한 사다리를 많이 만드려는 생각은 안한다. 그저 썩은 동아줄만을 내어주며 생색을 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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