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연하지 않다: 편리함과 불편함의 근원

조범수 / 2020-03-11 / 조회: 674

오랜 시간을 보내는 나의 방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무언가가 조금 낯설게 보일 때가 있다. "아~ 그 책이 저기에 꽂혀 있었구나!" "침대 위에 걸린 그림이 이렇게 멋있는 거였어?" 모두 이와 비슷한 경험이 있을거라 생각한다. 우리가 매일 생활하는 공간이어도, 심리학적으로 우리가 그 곳에서 의식적으로 인지하는 대상은 생각보다 한정적이다. 그런데 어느 날 어떠한 계기로 그 공간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되면,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것들이 그제서야 좀 더 자세히 머리 속에 담기기 시작한다.


사람들은 주변의 많은 것들을 너무나도 당연하게 여기고 그에 대해 깊이 사고하지 않는다. 특히 경제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매일 경험하는 편리함이나 불편이 대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물론 처음에는 자신이 애당초 통제할 수 없는 문제라고 느낀다거나, 너무 복잡한 문제라고 생각한다거나하는 모종의 이유로 관심을 두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무관심은 이내 무의식적인 습관으로 굳혀진다. 하지만 우리가 누리는 편리함의 원천과 우리가 겪는 불편의 원인을 파악하는 이 문제는 우리가 사회 문제에 있어 무엇을 가까이하고 무엇을 멀리해야 하는 지를 답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과제다. 우리에겐 우리 주변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새로운 눈'이 절실하다.


당신이 지금 손에 쥐고 있을 휴대폰. 지구 반대편의 사람과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통화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인터넷이라는 정보의 바다 속에서 언제 어디서든 모르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그 휴대폰부터 당연한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개성을 살리기 위해 몸에 걸친 옷가지도, 그제 원없이 먹었던 연어대왕초밥도 마찬가지다. "내가 열심히 일해서 사고 입고 먹는건데 왜?"라고 물을 수 있다. 맞다. 하지만 오십 여년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심지어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으로 태어났어도 당신이 당연스럽게 누리는 것들을 구경조차 못했다. 경제규모 대비 재산이 아마존 최고경영자 제프 베이조스의 그것의 몇갑절은 되었던 존 록펠러조차도, 가벼운 기기 하나를 손에 들고서 지구 건너편의 친구와 얼굴을 마주하며 대화하는 호사를 누리진 못했다.


대체 무엇이 전무후무한 갑부조차 누리지 못한 것들을 우리가 누릴 수 있게끔 하는가? 아무리 당신이 자본주의가 싫다 한들, 우리가 낼 수 있는 유일한 답은 '시장경제’뿐이다. 사유재산권과 자유로운 계약이 보장되어 개개인이 사익을 추구할 수 있도록 만드는 시장경제만이 이 같은 번영을 이룩할 수 있다. 혹자는 이 모든 것이 '기술 발전’ 덕분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답이다. 아무리 학술 논문이나 사람들의 머리 속에 새로운 기술에 대한 '지식’이 있더라도, 그것이 자유시장에서 저축을 기반으로 상품화되고 시장화되지 않는다면 한낱 기술은 물적인 발전을 이룩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유는 번영의 필요조건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분제의 붕괴 이후 대부분의 근대 국가가 사유재산권과 자유 계약을 원칙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는 점을 떠올리곤, 우리가 이미 그 필요조건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여기서 이야기하는 '자유’는 단지 원칙적인 차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국가권력은 매순간 소유권과 자유계약을 위태롭게 하고 침해해왔기 때문이다. 각종 노동시장 규제로 인해 사용자와 노동자가 자유롭게 계약을 체결할 수 없고 운송사업을 비롯한 각종사업에 세워진 진입장벽이 혁신을 가로막는 오늘날 한국 경제를 보아도 그렇다. 더구나 한국은 시장경제로부터 이탈하는 중이다. 예컨대 1969년, 전자공업협회의 59개 회원사들은 삼성의 전자산업 진출을 반대한다는 성명을 냈다. 반대의 요지는 “삼성 같은 '재벌’이 이미 포화상태인 전자 시장에 밀고 들어오면 어떡하냐”는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이러한 논리는 그 당시에도 상당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이 때 만약 정부가 '상생’이나 '보호’라는 미명으로 삼성전자를 인가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번영의 씨앗은 항상 벼랑 끝에서 위태로운 존재다.


마찬가지로, 당신이 요즘들어 유난히 직장이나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어려운 것이나, 저번주에 담배 냄새가 진동하는 택시에서 기사님과 난데없는 설전을 펼친 것도 당연한 게 아니다. 마트의 박스포장대에 어느 날부터 테이프가 없어져 테이프를 들고다니게 된 것도, 장을 보러 마트에 갔다가 휴업일인 것을 보고 집으로 차를 돌려야 했던 것도, 카페에 5분만 앉아있다가 나갈 건데 음료를 싸구려 플라스틱 용기에 담았다가 다시 일회용 컵에 옮겨 담아야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같이 우리 주변에 산재한 불편함은 겪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들이고, 나아가 시장의 편리함으로 대체될 수 있는 것들이다. 모두 정부의 불필요한 규제와 시장개입이 초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과 동시에 급진적인 반시장적 정책으로 한국 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었다. 경제지표가 연일 바닥을 모르고 추락해도 거짓과 변명, 남탓으로 일관했고 추호의 반성도 없이 정책 기조를 이어나갔다. 최저시급을 받는 아르바이트조차 구하기 힘들고, 거리마다 임대 딱지를 내걸은 점포가 늘어나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시장친화적 정책을 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어려움이었다. 택시 안에서 겪는 불편함도 마찬가지다. 정부의 허가를 받은 택시에 여객운송사업에 대한 독점권을 부여하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택시 안에서 담배를 피우거나 승객과 설전을 벌이는 기사를 만날 일은 없었을 것이다. 편안한 승차감과 환경, 휴대폰 충전서비스와 같은 섬세한 배려를 제공하는 모빌리티 서비스들이 시장을 차지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억울할지도 모르지만, 민주정에서 이 모든 부조리의 궁극적 책임은 시민들에 돌아간다. 우리가 '새로운 눈’으로 주변의 불편함을 돌아보고 그 원인을 파악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자유의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한 일이지만, 분명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타심을 갖고 남을 돌아보라는 것도, 어떠한 도덕적 규범을 따르라는 것도 아니다. 단지 스스로가 당연스럽게 누리는 번영의 혜택과 종종 마주하는 불편함을 '새로운 눈’으로 다시 한번 살펴보라는 의미다. 그렇게 주위를 돌아보고 고민하다 보면 당신은 어느샌가 자유의 소중함에 공감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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