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일대기

김정호 / 2020-11-03 / 조회: 274


김정호_2020-35.pdf

동영상 보기▶ https://youtu.be/YMaEPqsAHtA


삼성그룹의 이건희 회장이 별세했습니다. 고() 이건희 회장의 일대기를 짤막하게 정리해 봅니다.


이건희 회장은 1942년 1월 9일 대구에서 출생했습니다. 위로 두 형과 네 명의 누나가 있었으니 일곱째로 태어난 겁니다. 아래로는 여동생 이명희가 있습니다. 아버지 이병철이 삼성상회를 연 것이 1938년. 만주에 청과물과 건어물을 수출하고 국수까지 만들어 팔던 시절이라 부부가 무척 바빴습니다. 자식이 그렇게 많으니 오죽 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 박두을 여사는 젖을 떼자마자 건희를 의령의 친가로 보냈습니다. 건희는 할머니가 엄마인 줄 알고 컸다 합니다. 1945년 해방이 된 후 대구에 가서 엄마와 다른 가족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1947년 아버지가 대구를 떠나 서울에서 삼성물산이라는 무역회사를 차리게 되었지요. 건희도 가족을 따라 상경했습니다. 하지만 곧 6·25가 터졌고 피난 생활 등등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겪었던 우여곡절을 소년 이건희도 겪었습니다. 이건희는 어릴 때부터 말 수가 적었는데 그 이유를 부모와 같이 지낸 시간이 적었던 때문이라고 회상을 하곤 했습니다.


중고등학교는 서울사대부중과 사대부고를 다녔습니다. 일류 학교 가운데 하나였죠. 대학은 와세대대학 상과를 졸업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일본 사정에 상당히 정통한 편이었습니다. 미국의 조지워싱턴대학 MBA 과정도 다녔습니다. 그 사이인 1967년 홍진기의 딸인 홍나희와 결혼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버지인 이병철과 홍진기가 결정한 혼사였습니다. 결혼 후 둘은 다시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이재용은 미국 유학 중에 태어났습니다.


1968년 아버지 이병철은 유학 중이던 이건희를 불러들여서 동양매스컴 이사에 임명합니다. 동양매스컴은 중앙일보와 TBC 동양방송을 말합니다. 당시 이병철은 소위 사카린 사건으로 경영일선에 물러나 있었고 삼성그룹의 경영은 장남인 이맹희가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이건희에게는 언론 사업을 맡기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었던 것이죠. 사돈인 홍진기를 동양매스컴의 대표이사에 앉힌 걸 보면 이건희의 몫은 확실히 언론사업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홍진기의 아들인 홍석현이 그 사업을 넘겨 받았죠.


이건희는 사람들과 같이 지내는 것을 매우 불편하게 여겼습니다. 사업가로서 치명적인 결격 사유이지요. 하지만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보는 능력은 굉장한 강점이었습니다. 동양방송 이사 시절에도 그런 능력이 발휘됩니다. 조연을 중용해서 드라마 시청률을 높여 놓은 것인데요. 그 때나 지금이나 TV 방송의 인기는 드라마 시청률이 좌우합니다. 이건희 눈에 들어온 것은 제작자들이 미남 미녀 주인공에만 관심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잘생기지는 않더라도 실감나게 만들어 주는 조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조연을 중용하게 되지요. 그 때 등용된 조연들이 이순재, 여운계, 강부자, 사미자 같은 배우들입니다. 그 덕분에 동양방송 드라마들이 대박을 내게 되었답니다. 그런데 그 동양방송 TBC는 1980년 신군부에 강탈당해서 KBS 2TV가 되었죠. 여의도에서 대방역으로 넘어가기 전에 있는 KBS 별관이 그 당시 새로 지은 동양방송의 신사옥이었습니다.


이처럼 이건희는 삼성그룹을 맡을 가능성도, 뜻도 거의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던 이건희가 삼성그룹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1976년 9월 이병철이 암치료를 받기 위해 일본으로 떠나면서 3남인 이건희를 후계자로 낙점한 것입니다. 사실 이병철은 1971년에 이미 유언장에 이건희를 후계자로 낙점해 두었습니다. 본인에게는 1973년 무렵에 언질을 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장남인 이맹희를 포함한 식구들에게 공식화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본래 삼성의 후계자는 장남인 이맹희였습니다. 1966년 이병철이 사카린 밀수 사건에 대한 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면서 부사장이던 이맹희에게 경영에 대한 전권을 이양했습니다. 이병철은 임원들 앞에서 이맹희를 잘 보좌해달라고 직접 부탁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삼성은 어수선해졌습니다. 이병철의 눈에 이맹희 부사장은 삼성 후계자로서 부적격이었습니다. 1968년 이병철은 삼성전자 설립 선언과 더불어 다시 복귀했고 이맹희는 내쳐졌습니다. 그 후 한동안 후계자 자리는 비어 있었는데 결국 3남인 이건희가 낙점을 받은 것입니다.


그 때부터 이건희는 조심스럽게 후계자 수업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회장인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회사의 실정을 파악했고 어깨너머로 경영 수업을 받았습니다. 이건희에게 처음 맡겨진 중책은 민영화되는 유공을 인수하는 것이었습니다. 1979년 오일쇼크의 와중에 유공에 투자했던 걸프사가 철수하게 되었고 정부는 그 주식을 민간에 매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룹 부회장으로서 해외사업추진위원회를 맡고 있었던 이건희가 삼성의 유공 인수 프로젝트를 맡았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유공은 삼성 몫이 될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하지만 놀라운 일이 벌어졌죠. 유공은 삼성이 아니라 선경에게 돌아갔습니다. 사우디로부터 석유 도입을 성사시킨 것, 또 사우디 은행으로부터 운영자금 대출까지 얻어낸 것이 선경이 승리한 원인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이병철도 충격을 받았지만 이건희가 받은 충격은 엄청났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병철은 이건희에게서 결정권을 거둬들였습니다. 이름만 부회장일 뿐 허수아비가 된 것입니다. 그를 둘러싼 온갖 소문들이 돌기 시작했습니다. 후계자 자리를 흔들려는 시도였을 겁니다. 좌절과 고통의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그나마 낙 중의 하나는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것이었는데 그것이 더욱 큰 화를 몰고 왔습니다. 1982년 양재대로에 푸조 승용차를 몰고 가는데 덤프 트럭이 덮쳤습니다. 다행히 몸은 튕겨져 나가서 목숨은 건졌지만 한동안 진통제로 연명하는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런 세월이 흘렀습니다.


1987년 11월 19일 이병철 회장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회장으로 취임한 이건희는 제2창업을 선언했습니다.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기업으로 만들자고 임직원들에게 호소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삼성은 여전히 아버지 이병철의 것이었고 이병철의 분신인 삼성 비서실의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반도체 대박이 터진 덕분에 돈 걱정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반도체는 처음부터 이건희의 사업이었습니다. 1974년 이병철에게 반도체 투자를 건의했다가 거절당하자 자신의 사재 4억을 투자해서 자금난에 처한 한국반도체를 인수합니다. 이병철이 본격적으로 반도체 투자에 나선 것은 10년 후인 1983년입니다. 계속 적자만 보던 그 반도체가 1988년부터 대박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세계 반도체 시장은 일본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저가 PC가 나오면서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고가의 일본 반도체보다 수명은 짧더라도 저가인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폭발했고 삼성반도체가 적격이었던 겁니다. 그 덕분에 삼성은 그 동안 쌓였던 적자를 모두 털어내고도 남을 만큼 큰 돈을 벌었습니다. 하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다른 삼성 제품들은 여전히 싸구려 2류제품에 불과했습니다.


삼성 내에서도 이건희는 진짜 주인이 되지 못했습니다. 이건희에게는 은둔의 경영자라는 별명이 붙어다녔고 온갖 듣기 민망한 소문들이 떠돌았습니다. 그런 세월이 5년 넘게 흘렀습니다.


그러던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세상의 중심으로 떠오릅니다. 마누라하고 자식만 빼고 모두 다 바꾸라는 그 말, 바로 그 사건부터입니다. 1993년 6월 7일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캠핀스키 호텔에 직원들을 모아 놓고 열변을 토해 내기 시작했습니다. 삼성 제품들의 품질은 형편없다. 지금 각자가 변하지 않으면 절대로 일류제품을 만들 수 없다. 그러니 지금 당장 변화하라. 이런 메시지였습니다.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사장단들까지 독일로 불려들였습니다. 사람 만나는 것조차 꺼리던 회장이 마치 신이 들린 듯 수십 시간을 쉬지 않고 강연을 했습니다.


그리고 충격적 조치들이 뒤따랐습니다. 9시에 출근해서 밤늦게 퇴근하던 관행을 금지하고 7시에 출근해서 4시에 퇴근하게 했습니다. 기존의 타성을 깨버리자는 것입니다. 불량품 핸드폰을 쌓아 놓고 화형식을 벌이게 했고 불량품이 나오면 라인 전체를 세우는 라인스톱제를 도입했습니다. 아버지 대에 형성된 타성을 깨부수기 위한 충격요법들이었습니다. 소위 신경영 선언이라고 불리게 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을 거치면서 삼성이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 속도는 느렸습니다. 초일류기업이 되기 위한 결정적 변화는 위기와 더불어 본격화되었습니다.


1998년 외환위기가 덮쳤습니다. 매출은 급감하는 데 환율 급등으로 외채 부담이 치솟았습니다. 금리도 30%대로 높아졌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였습니다. 이건희는 과감하게 사업을 정리했고 거기서 마련한 돈으로 빚을 갚아 나갔습니다. 삼성중공업의 건설기계 사업은 볼보에, 지게차 사업은 클라크사에, 삼성물산의 유통사업은 테스코에, 방산사업은 프랑스 톰슨사에 매각했습니다. 정리한 수많은 사업 중에 삼성자동차를 법정관리에 넘긴 것은 정말 아픈 일이었을 겁니다. 아버지가 하지 못한 사업, 자신이 온전히 이뤄낸 사업이 삼성자동차였는데 그것의 실패를 인정해야 했으니 참담했겠지요. 2조 8,000억 원이라는 사재 출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거치면서 삼성은 빠른 속도로 거듭나기 시작합니다. 그 전까지 말로만 요란했던 개혁들이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연공서열 대신 성과급제도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고, 천문학적 연봉을 주고 세계적 인재를 충원하는 것도 가능해졌습니다. 이병철 회장이 만들어 놓았던 일본식 삼성이 이건희 식 초일류 글로벌기업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면서 삼성, 특히 삼성전자는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됩니다. 2005년 7월 드디어 삼성전자의 브랜드 가치가 소니를 넘어서게 됩니다. 1987년 회장에 취임하면서 내걸었던 초일류기업의 꿈이 이뤄졌습니다.


초일류기업을 만들어낸 이건희 회장이지만 도저히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상속 문제입니다. 상속세 최고세율 50%, 그리고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평가 30%, 합치면 65%입니다. 그것을 내고 나면 후대의 경영권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비자금이니 차명계좌니 편법 상속이니 하는 일들이 생기고 삼성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2008년 이건희 회장도 비자금이 드러나 기소되어 회장직에서 물러났다가 2010년 다시 복귀했습니다. 차명계좌는 2018년에도 또 다시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재용 부회장도 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2014년 5월 10일 이건희 회장은 자택에서 갑자기 호흡곤란으로 쓰러졌습니다. 그후로 병원에서 식물인간 상태로 지내다가 2020년 10월 25일 별세했습니다. 거인이 떠났습니다. 평안히 쉬십시요.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학교 경제대학원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10.26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이건희 일대기. 본질을 꿰뚫은 삶.>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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