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이성훈 / 2020-09-24 / 조회: 1,276

2020년은 많은 분들께 정말 여러 가지 아픈 기억이 많이 남는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특히 ‘부자유’의 추억이 뇌리에 깊이 박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날 갑자기 급속히 전 세계에 확산되기 시작한 코로나19는 특히 이러한 부자유의 여러 양상들을 한꺼번에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인류의 과학적 능력의 한계로 인한 부자유, 제도의 한계로 인한 부자유, 시장의 한계로 인한 부자유, 그리고 저 자신의 능력의 한계로 인한 부자유 등등.

   

이러한 부자유의 상황을 갑갑해 하면서 마음의 위안을 얻고자 이 책 저 책을 뒤져 보다가, 문득 이 문제는 자유를 제한하는 국가의 권력과 자유를 추구하는 국민의 권리의 관계를 생각해 보게 되었고, 그러던 중 리처드 파이프스 교수의 ‘Property and Freedom’을 서은경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소유와 자유’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파이프스 교수는 이 책에서 2020년 저를 비롯한 많은 분들께서 느끼는 이러한 여러 가지 부자유의 상황에 이르게 된 역사적 흐름에 대하여 담담하면서도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소유권은 민주주의의 기초였습니다. 고대 아테네 시대에는 자기 소유권을 보호하고자 하는 자영농들이 중심이 되어 고대 민주주의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소유가 나무라면 사회제도는 거기서 자라난 나뭇가지에 불과했습니다.


흔히 권리는 법 제도의 부산물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말하곤 합니다만, 그것은 근대 절대국가 이후 익숙해진 사고방식입니다. 법이 권리를 만든 것이 아니라, 권리가 법을 만들었습니다. 법은 그 스스로 알아서 진화를 한 것이 아니라, 권리를 실현하고 확대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법을 진화시킨 것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인류는 끊임없이 권리를 근거로 자유를 확대해 왔으며 그 과정에서 소유권을 통한 자기 영역의 확보는 언제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자유의 핵심을 구성해 나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라는 데카르트의 사고가 "나는 존재한다. 고로 나는 소유한다" 라는 로크의 사고에 이르는 과정은 관념적 자유에서 실재적 자유에 이르는 자유의 근대화 과정으로도 이해될 수 있겠습니다. 


그러나 민주주의 발전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국민 주권의 강화라는 명분으로 더욱 크고 강한 정부를 만들어 왔으나, 이는 실은 이와 더불어 국민 스스로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포기해 온 역사이기도 하다는 충격적인 현실에 맞닥뜨리게 되었습니다.


대개 사적 이익은 "공동선"을 지키는 보호자보다 훨씬 똑똑합니다. 왜냐하면 후자가 얻는 것보다 전자가 잃는 게 더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자유의 가장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었던 사적 소유는 현대 국민주권 국가에서 국민 모두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광범위하게 제한받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정부는 국민의 이름으로 사회 각 분야의 권리를 제한하고, 각 개인의 소유권을 제한하며, 정부의 입장에 반대하는 모든 개인들의 의견을 일거에 묵살할 수 있을 정도로 그 권한이 강화되었습니다. 저자는 현대와 와서 자유란 이름으로 국가에 저항하기란 이제 쉽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국가의 행동은 대부분의 자유시민의 자유의지를 반영한 것이라고 스스로 주장하고 또 많은 경우 국민들은 그러한 주장에 감히 이의를 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서 개인의 사적 소유는 더 이상 충분한 자유의 보호자 역할을 하지 못하며 그 생존조차 불확실해졌습니다. 이에 저자는 소유를 근본적인 인간의 권리로 보존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어 사회가 사회정의를 추구하면서 소유를 침해할 수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이의 달성은 법이나 제도만으로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이를 어떻게 적용할지를 결정하는 시민의 현명한 태도에 의해서 좌우된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는 사실 매 순간마다 우리의 소유에 기반을 두고서 생존을 지탱해 나갑니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서는 계속 소비해야만 하고, 우리가 소유하는 것들을 소비하면서 계속 살아나갑니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의 삶은 소유의 연속이며 동시에 소비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그 무엇은 이러한 소유와 소비의 연속이 나의 의지의 흐름과 어긋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는 관념적인 이념이 아니라 현실적인 삶의 상태입니다.


현대 국가는 국민의 권리를 위해서 누군가의 권리는 제한받을 수 있고 또 그래야만 한다고 국민들에게 말하며 자신의 권능을 확대합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상대편이 선택하지 않은 의무나 보상이 없는 책무, 비자발적 봉사를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권리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자는 아인 란드의 말을 인용합니다. 다른 누군가의 권리를 침해해야만 하는 인간의 모든 "권리" 주장은 권리가 아니며 권리가 될 수 없다는.


이 책을 읽으며, 어떤 국민의 권리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다른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국가의 권능은 반드시 국민의 권리를 위하여 제한되어야 한다는 점을 다시금 새기게 되었습니다. 미국 연방대법원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말처럼, 경험은 우리에게 정부의 목적이 자선적일 때, 자유를 보호하기 위해 경계해야만 한다고 가르칩니다. 자유를 타고난 인간은 사악한 통치자가 자신의 자유를 침해할 경우에는 자연적으로 이를 뿌리치지만, 자유에서 가장 큰 위험은 열정과 선의를 가진, 하지만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의한 잠행적 침해에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다 같은 민주 시민이라는 의미는 우리 중 누구도 다른 시민에게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자유를, 자신의 소유를 약탈당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의 권리를, 자신의 자유를, 그리고 자신의 소유를 지키는 데서 민주주의가 시작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민주주의는 소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 같이 기억했으면 합니다. 우리는 모두 민주 시민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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