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비와 자유주의

김경훈 / 2020-06-04 / 조회: 6,900

우선 로비의 정의를 명확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로비는 ‘압력단체의 이익을 위해서 의회에서 입법의 촉진이나 저지를 하고 또한 거기에 소용되는 영향을 행사하는 원외 운동’을 말한다. 대체로 입법부와 관련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총기 옹호론자들은 총기규제 법안을 막기 위하여 공화당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공급한다. 이것은 ‘저지를 위한’ 로비이다. 반면 유대계 미국인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미국의 원조를 이끌어내기 위한 로비를 하는데, 이 경우는 ‘촉진을 위한’ 로비에 해당한다.


사람들은 종종 로비를 자본주의 제도를 정치에 응용한 결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추론은 표면만을 보고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오류이다.


정확한 경제학의 본산지인 미제스 연구소의 설립자이며, 론 폴 공화당 의원의 비서로서 미국 하원에서 오랜 시간 일한 류 락웰(Llewellyn H. Rockwell Jr.)은 아마 이론과 경험 양 측면 모두에서 로비가 도대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할 능력이 있는 최적의 인물일 것이다. 락웰은 로비가 ‘제도화된 절도(an institutionalized theft)’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특히 미국의) 정치인들은 오직 특수 이익 단체로부터 돈과 권력을 취하기 위해, 즉 로비를 받기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물론 그의 통찰은 학문적으로 엄밀하기 보다는 개인적 노하우에서 기인한 것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 보아도 그의 인식은 대체로 정확하다.


일반적으로, 대기업/특수이익단체는 뇌물을 이용해 경쟁업체에 불리한 정치적, 제도적 환경을 조성하고, 더 많은 정부 지원금 혹은 정부사업 수주를 따내고자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대기업이 얻는 혜택은 물론 국민으로부터 정부로 이양된 혈세 혹은 인플레이션 세금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로비는 비폭력적인 재산 규범에 근거한 평화적 경쟁이 아니라, 공격적 힘의 활용과 투쟁에 바탕한 폭력적 경쟁이며, 자본주의와 전혀 무관하다.


로비가 존재하는 한, 이론상의 기업가정신과 충돌하는 부패하고 사악한 기업가들이 현실에 나타난다. 다시 말해, 기업가정신은 거의 100%의 확률로 정경유착을 형성한다. 기업가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이끌어내고자 하며, 국가와 야합하는 것이 그러한 목적에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 및 사회 전체에 일방적으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독점기관으로서의 정부와 국가가 존재하는 한, 로비가 사라지기는 어렵다. 따라서 국가의 기능을 재정의하거나 대대적으로 개편하여 로비가 구조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을 조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어떻게 해야 가능할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자는 이렇게 막강한 로비를 이용하여 더 작은 정부와 더 큰 시장경제라는 목적에 기여할 수 있을까? 즉, 정치인들을 돈으로 (혹은 다른 무엇으로) 설득하여 그들이 자유주의 입법을 추진하도록 압력을 넣을 수 있을까?


이 점에 대하여 로비와 자유주의의 본고장 미국의 자유주의자들이 대체로 공유하는 견해는, 자유주의자는 로비를 해선 안된다는 것이다. 로비는 근본적으로 기득권 입법과정에 종속된 보조활동이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적 목적에 도달할 수 있는 적절한 수단이 아니다. 대신에 그들은 자유주의적 목적을 위한 실천 수단으로서 교육과 계몽활동을 제시한다. 비록 멀리 돌아가는 보다 고된 길이지만, 결국 근본적으로 자유주의에 부합하는 유일한 수단은 그것뿐이라는 것이다.


정치를 대신하여 시민사회와 시장의 힘을 믿는 자유주의자는 필연적으로 반-정치적이다. 자유주의자가 정치에 반대하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실질적 삶과 사회적 번영의 원동력인 자생적 질서를 왜곡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자유주의 활동은 언제나 자생적 질서를 올바른 방향으로 유도하는 간접적인 방향으로만 이루어져야 한다. 자생적 질서를 옹호하면서 그것과 충돌하는 정치적 수단을 활용하는 것은 일종의 모순이다.

       

▲ TOP

NO. 제 목 글쓴이 등록일자
201 [칼럼] 대형마트 규제 완화, 시대에 발맞춰 변화하고 있나?
양지수 / 2024-03-21
양지수 2024-03-21
200 [칼럼] 상속세 부담 낮춰야 한다
천나경 / 2024-03-14
천나경 2024-03-14
199 [칼럼] 대형마트 주말 의무휴일, 상생을 위한 것이 맞을까?
박주현 / 2024-03-06
박주현 2024-03-06
198 [칼럼] 리볼빙이 쏘아올린 2030 신용불량
박수현 / 2024-02-29
박수현 2024-02-29
197 [칼럼] 풀어도 풀어도 끝나지 않는 게임규제
이민영 / 2024-02-20
이민영 2024-02-20
196 [자유발언대]강성노조와 규제에 묶인 노동 자유
오수빈 / 2023-12-29
오수빈 2023-12-29
195 [자유발언대]e스포츠 샐러리 캡 도입 논란을 보며...
김은준 / 2023-12-22
김은준 2023-12-22
194 [자유발언대] 법인세제, 어떻게 개편돼야 할까?
오민아 / 2023-12-15
오민아 2023-12-15
193 [자유발언대] 스팀(STEAM) 학습으로 새로운 교육 경로를 열자
오하진 / 2023-12-08
오하진 2023-12-08
192 [자유발언대]핀테크 규제와 앞으로 나아가야할 방향
배지연 / 2023-12-01
배지연 2023-12-01
191 [자유발언대]재정위기에 빠진 그리스와 스페인의 상반된 경로
김형수 / 2023-11-24
김형수 2023-11-24
190 [자유발언대]청년의 경제적 자립 돕는 ‘청년도약계좌’ 잘 따져봐야
하선호 / 2023-11-17
하선호 2023-11-17
189 [자유발언대] 공교육은 지금 개혁이 필요하다
김강민 / 2023-11-10
김강민 2023-11-10
188 [자유발언대] ESG 공시 규제, 기업 발목 잡을까 우려
박혜린 / 2023-10-20
박혜린 2023-10-20
187 [자유발언대]더는 참을 수 없는 노조의 횡포 ... 불법 대신 순기능 회복해야
전현수 / 2023-09-22
전현수 2023-09-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