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근현대사 3부작 ③ 시진핑의 중국몽, 악몽 되나? 2013~현재, 공산당 본색 1인 독재 부활, 그 후

김정호 / 2020-04-07 / 조회: 325


김정호_2020-06.pdf

동영상 보기▶ https://www.youtube.com/watch?v=dnoiLkdaB8E&t=166s


이 글은 중국 근현대사 3부작의 제3부 마지막 편으로서 2013년 시진핑 집권 이후부터 현재까지를 다룹니다. 본론에 앞서 2013년 전후 시기를 간략히 대비하는 게 좋겠습니다. 1978년부터 2012년까지 중국인들은 꽤 강력해졌습니다. 개혁 개방 이후 중국인들은 상당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고, 그 덕분에 부유해지고 유식해졌습니다. 반면 모택동 시절에 비해서 공산당의 정치인들은 상대적으로 약해졌죠. 기업도 국퇴민진(國退民進), 즉 국영기업이 퇴조하고 민간기업들이 약진했습니다. 세계가 중국으로 몰려 들었고 중국인들도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2013년 이후의 중국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민은 내려앉고 시진핑만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자유가 후퇴하면서 경제도 성장속도가 떨어졌습니다.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려다 보니 세계 곳곳에서 마찰이 빚어지고 있습니다. 중국사 세 번째 편은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시진핑(习近平)은 2012년 11월 중국공산당 제18기 중전회에서 중국공산당 총서기에 선출됐습니다. 그리고 2013년 3월에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국가주석과 국가중앙군사위원회 주석으로도 선출되었습니다. 당과 국가, 군사의 3개 권력을 모두 장악한 것인데 이는 78년 이후 유지되어 오던 권력분산의 원칙이 무너졌음을 뜻합니다.


시진핑은 최고 권력을 장악하자마자 중국몽을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여러 가지 미사여구을 제하고 나면 결국 옛 중화제국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내용입니다. 그가 가장 먼저 착수한 것은 부패와의 전쟁이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거기에 대해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관료들의 부패는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뇌물을 주지 않고 중국에서 사업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나 경험한 바입니다. 당연히 당간부와 관리들은 뇌물과 특혜로 엄청난 돈들을 벌어 왔던 거죠. 부패한 관료들을 응징하는 모습에 중국 인민들은 속이 시원해졌던 것입니다.


극심한 부패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1989년 천안문광장에 100만 명이나 나와서 항의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잔혹한 학살이었습니다. 중국인들은 인권을 포기하는 대신 돈벌이에만 몰두하게 되었습니다. 그 덕분에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올라섰지만 부작용도 견디기 힘든 수준으로 커졌습니다.


그 적나라한 모습이 여러 군데서 흉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충칭 대지진 때 사람들을 경악시킨 것은 사상 실종자 48만 명이라는 피해규모만이 아니었습니다. 무너진 건물의 뼈대 속에는 철근대신 대나무가 드러났습니다. 건물들이 그렇게 눈가림식으로 지어졌으니 성한 건물이 없었던 것입니다. 2008년에는 중국산 분유에 치명적인 멜라민이 포함되었음이 밝혀져 중국산 유제품을 섭취했을 수도 있는 모든 세계인들이 불안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인민들의 안전이 이런 지경에 처했는데도 모든 당간부들, 공무원들은 위에서부터 말단까지 뇌물을 받아먹느라 눈을 감고 있었던 것입니다.


시진핑은 그들에게 철퇴를 가했습니다. 고위직은 호랑이, 하급직은 파리라 부르면서 부패 척결 작전을 벌인 결과 150만 명에 이르는 권력자들이 처형되거나 또는 어떤 식으로든 처벌을 받았습니다. 인민들은 시진핑에게 박수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뇌물을 받지 않은 관리들은 없었기에 부패 척결 작전은 반대파에 대한 숙청이기도 했습니다.


부패 척결은 전국민에 대한 감시 체제로 이어졌습니다. 시진핑의 통치가 진행되면서 중국은 전과는 다른 나라로 변해갔습니다. 그전까지는 비록 정치적 자유는 없었지만 경제적으로는 중국은 상당히 자유롭고 활기찬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시진핑 체제에서 중국 사회는 철저한 통제 체제로 변해갔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AI 안면인식 기술은 주민을 감사하고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 갔습니다.


국내적으로는 부패 척결과 감시 체제를 강화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 정책을 선언했습니다. 중국이 주도해서 세계를 도로, 철도, 파이프라인, 인터넷 등 인프라로 연결하겠다는 사업입니다. 중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나라들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인프라 투자를 해오고 있었습니다. 그 기반 위에서 시진핑은 실크로드의 이미지를 빌려와 일대일로 정책을 선언했습니다. 전세계를 중국의 영향권 하에 포섭하겠다는 원대한 계획입니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2019년 말까지 130여 개 국가가 이 프로젝트에 사인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금액은 월드뱅크 추산으로 5,750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는 690조원에 달합니다.


등소평은 개혁개방을 하면서 간부들에게 도광양회(韬光养晦)를 당부했습니다. 속마음을 감추고 실력부터 기르라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시진핑의 정책들은 도광양회가 아니라 돌돌핍인(咄咄逼人)으로 표현하는 것이 정확합니다. 돌돌핍인은 상대를 거칠게 몰아붙이는 전략을 말합니다.


중국 외교의 위압적 노선은 9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쌓여온 것이라 봐야 합니다. 그 무렵부터 경제력이 커진 중국인들은 그 힘을 드러내고 싶어했습니다. <노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이런 류의 책이 중국 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다는 것은 세계 패권에 대한 중국인들의 욕구가 어떤 지를 보여줍니다. 시진핑은 중국인민들을 대표해서 미국의 패권에 도전을 시작했습니다. 중국은 푸틴의 러시아와 더불어 세계 전체주의 세력의 후원자가 되어 갔습니다.


시진핑의 중국이 이렇게 거칠게 위세를 드러내고 있지만 중국의 힘은 오히려 약해지고 있습니다. 첫째는 경제력입니다. 중국의 힘은 놀랍도록 성장하는 경제의 성장 동력에 있습니다. 2007년에는 무려 14.2%의 성장률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 후로는 지속적으로 성장률이 추락을 해서 2019년은 6.1%로 내려 앉았습니다. 우한 폐렴사태로 시작한 올해는 4%도 달성할지 의문이다. 중국이 머지않아 미국을 누르고 세계 1위 경제대국이 될 거라는 예측은 실현되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우한폐렴 사태가 끝나더라도 성장률 하락 추세는 돌이키기 쉽지 않습니다. 중국 경제의 구조적 변화 때문입니다. 중국 경제의 성장을 안겨준 것은 세계를 향한 개방과 민간기업의 번창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두 가지가 다 사라지고 있습니다. 미국이 관세인상을 통해 중국 제품의 수출을 막아 섰고, 중국 스스로도 '중국제조 2025’ 등의 정책으로 자력갱생을 지향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와 더불어 국진민퇴(國進民退), 즉 민간기업이 위축되고 국영기업은 커지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국영기업은 민간 기업에 비해서 수익성이 낮기 때문에 국진민퇴는 중국 경제 전체의 성과를 낮추기 마련입니다.



셋째는 일대일로 정책의 한계 때문입니다. 일대일로는 규모가 크기는 하지만 경제성은 약한 투자입니다. 송유관, 가스관 같은 투자만 봐도 그렇습니다. 제가 다른 영상에서 말씀 드렸듯이 원유나 가스의 수송은 육상보다 해상수송이 저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것은 미국의 봉쇄 위험에 대비하기 위함입니다. 파키스탄, 미얀마 같은 나라에 돈을 빌려줘 가며 그런 투자를 하고 있는데 못 받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즉, 경제적 관점에서 봤을 때 일대일로는 뭔가 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쓸 데 없는, 안 해도 되는 일을 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런 투자가 많아질수록 중국 경제의 수익성은 낮아지기 마련입니다. 즉, 경제가 수렁으로 빠져든다는 말입니다.


2020년 중국은 우한폐렴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절체절명의 위기입니다. 시민들이 그리고 관리들이 자발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시진핑의 결정만을 기다려야 해서 생긴 일입니다. 시진핑 1인 독재, 공산당의 1당 독재의 한계가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1949년 중국 공산당이 집권한지 70년이 지났습니다. 대다수의 인민들이 사회주의 공화국의 탄생으로 낙원이 도래할 것을 기대하며 희망에 부풀었지만 현실로 닥친 것은 고통스러운 대약진운동, 학살로 얼룩진 문화대혁명이었습니다. 한편 1978년부터 34년 동안은 공산국가 같지 않은 시기였습니다. 그 덕분에 큰 돈을 벌었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었습니다. 2013년 시진핑 이후의 중국은 공산당 본래의 모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중국 인민들은 중국몽, 즉 위대한 중국의 꿈에 부풀었지만 실제로는 다시 고통 속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아메리칸드림은 모두는 아니지만 그래도 세계의 많은 이들을 이롭게 했습니다. 차이니즈 드림, 중국몽도 그럴까요? 지금의 모습은 그것과는 정반대입니다. 사람들은 중국을 빠져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인 자신도 고통의 심연으로 빠져들고 있습니다. 중국사 근현대사 3부작 여기서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김정호 / 김정호의 경제TV 크리에이터, 서강대 겸임교수




* 이 글은 2020.2.24 <김정호의 경제TV>로 방영된 <중국근현대사 3부. 시진핑의 중국몽, 악몽 되나. 공산당 본색 1인독재 부활, 그 후. 2013~현재>의 텍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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