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권리가 아니다

김경훈 / 2019-12-05 / 조회: 5,219

대략 15년 전에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달빛천사’라는 일본 애니메이션이 있다. 2000년대 초반에는 매우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인데, 당시에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지금의 20대 초·중반 세대가 상당한 규모의 소비력을 확보했기 때문인지, 지난 9월에 해당 작품의 국내 더빙판 사운드트랙을 앨범으로 발매하고자 하는 크라우트펀딩이 개시된 바 있다. 20대 초·중반 세대의 문화소비 규모가 방대함을 입증하듯, 해당 프로젝트는 국내 크라우트펀딩 사상 최고 규모를 기록했으며, 당초 목표금액은 3300만원 수준이었으나, 최종적으로 약 7만여 명이 참가해 26억 4천만원 규모로 마감되었다. 그러나 26억원에 육박하는 대형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내용물이 부실하다는 지적이 엊그제부터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지적되기 시작했다. 앨범의 표지가 해당 애니메이션과는 전혀 무관하고, 그저 해당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의 목소리를 담당한 성우의 사진으로만 구성되었기 때문에, ‘달빛천사’라는 특정 애니메이션을 기념하는 앨범이 아니라, 특정 성우를 기념하는 앨범처럼 보인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이다. 필자가 보아도 이는 확실한 소비자 기만이자 사기 행위로서 강력한 대응이 필요해보인다. 이는 머레이 라스바드(Murray N. Rothbard)와 한스-헤르만 호페(Hans-Hermann Hoppe)가 정립한 자유주의 윤리학의 입장에서도 반박불가능한 범죄행위다. 그러나 자유주의 권리이론에 비추어볼 때 이 논란에서 문제시되는 점이 하나 있다.


이 프로젝트를 주도한 해당 애니메이션 여주인공의 성우는 “애니메이션 OST의 수익 절반을 음원유통사(구글)이, 그리고 나머지 절반은 원저작자가 가져가고 있다.” (출처) 라고 말하며 프로젝트 계획의도를 밝힌 바 있다. 즉 자신이 녹음한 한국판 OST의 수익이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고, 외부인들이 가져가고 있다는 논지이다. 애당초 프로젝트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었을 시점에 이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으나, 앨범의 표지가 해당 성우의 사진으로 교체된 이후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첫번째 비판 논지는 26억원이나 되는 수익을 창출했으면서, 이미 15년이나 지난 오래된 작품의 저작권을 취득하지 않겠다는 점이었으며, 두번째 논지는 해당 성우는 일본인 작곡가가 창조한 곡조에 자신에 목소리를 덧붙였을 뿐이기 때문에 원 작곡가 혹은 음원회사에 수익이 돌아가는 것이 정당하는 점이다. 그러나 자유주의 권리이론의 입장에서 볼 때 두 비판논지 모두 부당하다. 저작권은 권리가 아니며, 국가가 부여한 약탈권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해당 성우는 소비자 기만과 사기행위에 대해서만 비판을 받아야 한다. 위대한 자유주의 경제학자 머레이 라스바드의 표현을 빌리면, 해당 성우 역시 ‘삼각적 개입(triangular intervention)’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


자유주의가 개인의 권리를 극도로 중요시하면서, 저작권을 부당하다고 여기는 점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매우 의문시될 수 있다. 흔히 저작권은 ‘무에서 유를 이끌어낸’ 창조자의 정당한 권리라고 인식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문학작품의 작가가 책을 출판하면서 구매자들이 그것을 허가 없이 복제하거나 상업적으로 사용할 수 없음을 조건으로 해도, 그것은 정당한 권리가 될 수 없다. 모든 종류의 표절과 소위 ‘불법복제’는 적법하며 법적으로 처벌할 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저작물에 대한 재산권은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자유주의 권리이론가인 한스-헤르만 호페와 스테판 킨젤라(Stephan Kinsella)는 루트비히 폰 미제스(Ludwig von Mises)가 창안한 인간행동학(Praxeology) 방법론을 응용하여 지적재산권과 저작권의 논리적 불가능성을 논증한다. 호페의 논증에 따르면, 재산권은 근본적으로 자원의 희소성에서 기인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차지할 수 있는 자원의 양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자원 소유를 둘러싼 분쟁을 방지하기 위하여 고안되었다. 따라서 물리적 성격을 가지고 있는 자원에 있어서는 객관적으로 확인가능한 재산권 분배가 가능하다. 두 사람이 하나의 물리적 실체를 동시에 점유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에, 물리적 실체는 ‘희소’하다.


반면, ‘생각’은, 일단 누군가 한 번 떠올린 이후에는 희소성이 있을 수 없다. A가 생각한 것을 B가 똑같이 머릿속에서 떠올린다고 해서 B가 무언가를 A에게 갈취하는 것은 아니다. A는 여전히 방해받지 않고 똑같이 그것을 생각할 수 있으며, 그에게 줄어드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 정신적으로 창조한 모든 것은 일종의 ‘자유재(free goods)’이다. 그것은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으로, 인간이 원하는 만큼 소유가능한, 희소성이 부재한 재화이다. 어떤 갈등도 생겨날 수 없다. 모든 문학작품, 논문, 에세이, 음악의 곡조와 가사 등 인간정신의 모든 산물은 자유재에 해당한다.


인간정신의 산물이 자유재임을 부정하면 우리의 일상생활은 불가능해진다. 호페의 표현에 따르면, 필연적으로 ‘수행모순(performative contradiction)’에 부딪히게 된다. 가장 적나라한 예시를 들어보자. 우리는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면 모든 논리적 사고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인류 역사상 논리적 사고의 법칙을 최초로 문서화하여 발표한 사람이 아리스토텔레스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손 혹은 그의 친척의 자손이 권리를 주장한다면,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는 이상, 논리적 사고를 해선 안 될 것이다. 한글도 사용할 수 없을지 모른다. 세종대왕의 후손인 전주 이씨 종친회가 한글에 대한 저작권을 주장한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저작권료를 내지 않는 한 한글을 사용할 권리가 없다. 서양사람들이 주로 사용하는 데이비드, 존, 에이브러햄 등 성경에서 기인한 이름 역시 바티칸 교황청에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현행 국가체제에서는 이러한 논리적 파산을 피하기 위해 저작권에 기한을 정해두고 있다. 그러나 내가 창작한 관념적 실체가 나의 소유물이라면, 그것이 50년 혹은 70년 후에는 나에게서 벗어난다는 주장에는 근거가 없다. 단지 행정상의 편의를 위해 임의적으로 설정한 기한일 뿐이다. 비일관성의 모순을 피하려면 우리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 첫번째, 지적재산권 및 저작권을 완전히 부정한다. 두번째, 지적재산권 및 저작권이 물리적 실체에 대한 권리만큼 타당함을 인정하며, 물리적 실체에 대한 권리의 영구적 상속가능성을 지적재산권 및 저작권에도 인정하고, 따라서 만약 세종대왕의 후손인 전주 이씨 종친회가 한글에 대한 저작권을 요구한다면 그들에게 돈을 내고 한글을 사용하거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장 가까운 혈통상 혹은 족보상 후손이 모든 논리적 사고의 권리를 요구하면 그들에게 돈을 내기 전까지는 정신활동을 멈추는 것이다.


합리적인 재산권은 오직 물리적 실체에만 적용된다. 나는 나의 책을 소유한다. 누가 내 책을 도둑질하는 것은 범죄행위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내가 쓴 책의 내용을 마음대로 배끼고 자신의 창작물 마냥 출판하는 것은 비양심적일 뿐 법적 범죄가 아니다. 자유사회에서 표절이나 불법다운로드에 대한 법적 처벌은 없을 것이다. 다만 그것이 윤리적으로 비양심적인 것으로 간주되어, 민간사회에서의 자생적인 불이익이 따를 것이다.


마찬가지로, 해당 성우는 자신이 부른 노래에 대한 저작권료를 일본의 원 작곡자 혹은 음원회사에게 지불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는 우리 역시 그 성우의 음악을 소위 불법으로 다운로드해도 된다는 점을 의미한다. 해당 성우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앨범을 발매할 권리가 있다. 우리는 그 앨범을 구매하거나 구매하지 않고 음원만 인터넷상에서 추출할 권리가 있다.


‘달빛천사’ OST 앨범 발매 논란에 있어, 자유주의적 입장에서 유일하게 문제시되는 점은 해당 성우가 앨범의 표지를 자의적으로 변경하면서 따른 소비자 기만 및 사기 행위일 뿐이다. 저작권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당 성우가 일본 회사에 저작권료를 지불하지 않은 것은 정당하며, 저작권료 지불에 불만을 표하는 것 역시 정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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