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와 한반도 전략구도

김기수 / 2007-04-09 / 조회: 7,051
1. 서 언


극적인 협상 드라마를 연출하며 타결된 후 한미 FTA는 국내외적으로 여러 가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과연 큰 협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누구나 갖게 되는데, 과거의 경제협상들과는 달리 금번 FTA에서는 안보를 포함한 권력구도 측면이 강조되고 있다는 사실이 눈에 띤다. 즉 한미 FTA가 단순한 경제적 호혜 수준을 벗어나 전략적으로 무언가를 암시하고 있다는 생각을 많은 사람들이 하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아도 한반도 주변에는 세계 5위 안에 드는 군사 강국 모두가 포진하고 있으며, 세계 10위권 내의 경제 강국이 5개나 자리 잡고 있다. 이 말은 뒤집어 이야기 하면 한반도 주변의 정세를 통해 세계 강국의 서열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반도에서의 전략게임이 사실상 국제정치경제의 역학구도를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여기서 한반도에서 무언가 큰 일이 터지면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국가 간의 경제관계가 경제적 호혜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경제관계의 이해득실은 수치상 명료하게 드러나는 반면 그 밖의 분야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이라는 큰 추세, 그리고 경제관계가 역학구도에 영향을 미친 구체적인 정황 등을 연계하여 살펴보면 비경제적 현상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는 없다는 것이 오랜 연구의 경험이다. 바로 그러한 정치경제 혼합 현상의 한 가운데에 한국이 위치하고 있으며, 또한 그 역학구도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며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국민 자신은 놀랍게도 이에 대해 대단히 둔감하다는 사실이 국제관계 연구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미 FTA에 대한 오해와 비판이 과거 역사에 대한 망각 혹은 현실에 대한 둔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논의는 자연스레 도출된다.


2. 경제개발과 안보전략의 연계


한국전쟁을 통해 그 중요성을 새로이 인식하며 한반도에 개입한 이후 미국은 다음의 고민을 안게 됐다.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해 미군이 한반도의 남쪽에 주둔하였음으로 군사적으로는 힘의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경제적으로 낙후된 한국이 지니는 문제는 또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후진국인 한국은 두 가지의 문제를 던져주었다. 하나는 경제적으로 낙후된 국가에서는 자생적 공산주의가 싹틀 수 있고 그것은 필시 국내 사회의 혼란 혹은 붕괴를 초래할 수 있음으로 공산주의의 팽창이 자동으로 연장되는 메커니즘이 생성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이는 역으로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한국경제의 낙후는 결국 한국 군사력의 약화를 의미하고 따라서 한국과 미국의 연합 방위력 증강은 기대할 수 없게 됨으로 한반도의 짐을 영원히 미국만이 져야하는 사태가 지속될 수 있다는 염려였다.


바로 그러한 미국의 고민이 역으로 표출된 것이 개방적 경제개발 전략인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이었다. 나아가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자본주의 선진국인 인접국 일본의 자본과 기술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한일 국교정상화도 동시에 종용했다. 1964년 수출주도형 정책이 한국에서 공식화되었고, 이듬해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된 사실은 미국의 생각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중요한 점이 발견된다. 우선 그토록 익숙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정책이 한국인의 아이디어가 아니었고, 다른 하나는 한국의 경제발전전략이 안보 논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미 FTA가 타결된 2007년 4월 현재 얼마나 많은 한국인이 이 사실을 알 고 있을까. 혹시 전문가들에게도 잊혀진 것은 아닐까 우려될 뿐이다.


수출주도형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개방적인 방대한 수입시장이 필요하다. 바로 이점을 충족시킬 자신이 있었기에 미국은 새로운 경제개발정책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밀어붙쳤던 것이다. 정책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68년부터 1972년까지 한국 수출의 미국시장 의존도가 약 50% 내외였고, 그 후 수치에 다소 변화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수출과 경제성장이 거의 극점을 달리던 1980년대 후반 의존도가 여전히 40% 내외였다는 사실은 미국이 어떠한 역할을 했는가를 짐작케 한다.


새로운 정책의 장점은 또 다른 데서도 발견된다. 미국이라는 방대하고 자유로운 시장은 한마디로 세계에서 경쟁이 가장 치열한 곳이다. 여기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수출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 아무튼 한국은 상품 경쟁력을 밑바닥부터 고생하며 강화시켰고 그 결과 선순환 구도가 정착됨으로써 자본축적과 기술개발을 이룰 수 있었다. 경제가 고도화되자 이번에는 한국의 수입시장에 대한 개방압력이 1980년대 이후 줄곧 가해졌다. 해외시장에서 경쟁력을 득했으니 이번에는 한국의 국내시장에서 경쟁해보자는 것이었다. 물론 국내에서는 마치 곧 망할 것처럼 난리가 벌어졌다. 하지만 개방은 지속되어 1990년대에는 금융서비스 시장이 열렸고, 특히 1996년 OECD에도 가입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선진 강국들과의 본격적인 경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두 가지의 중요한 점이 발견된다. 곧 망한다고 엄살을 떨었음에도 한국은 지속적인 개방을 통해 국제경쟁에 노출되며 성장했고, 또한 역설적으로 개방이 몇 가지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타의에 의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 때문에 한국인들은 개발도상국 발전사에 획기적인 업적으로 남아 있는 우수한 대외개방전략과 그에 따른 눈부신 업적을 망각한 채 지금도 개방이 더 되면 큰일 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이다. 물론 1997년 외환위기를 통해 개방의 위험을 인식할 수 있었고, 나아가 개방이 되는 경우 경쟁력이 약한 산업의 피해가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한국 경제발전사 그리고 경제이론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여주는 바는 개방의 이득이 그러한 피해보다 훨씬 크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 막대한 추가 이득을 국내 피해자들에게 어떻게 재배분 하는가는 개방의 문제가 아니라 전적으로 국내 정치경제 문제인 것이다.


3. 한반도 전략구도의 변화와 한미 FTA


한국의 대외경제관계가 전략적으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가는 상기의 짤막한 분석을 통해 그 기본 줄기가 읽혀진다. 하지만 이야기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계산을 더욱 복잡하게 한다. 1990년대 들어오면서 국제질서는 급격한 변화에 휩싸였다. 1991년 말 소련제국이 붕괴하며 시장경제는 범세계적으로 팽창하게 되었고, 중국이 급속한 경제발전을 이루며 새로운 강자로 등장하였으며, 소련 붕괴의 여파로 북한이 고립되어 빈곤의 나락으로 곤두박질치게 되자 핵무장을 생존전략으로 활용하게 되고, 비슷한 시기에 유럽과 북미 시장이 각기 하나로 통합됨으로써 자유무역협정이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제공되었다.


이런 와중에 동아시아에서 문제가 되었던 것은 우선 동아시아만의 지역주의 움직임이었다. 1990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수상이 제안한 동아시아경제협력체(EAEC)가 바로 그것인데, 당연히 미국의 반대에 직면하며 무산되었다. 자신이 배제됨으로써 초래될 영향력 감소를 방치할 수 없다는 것이 미국의 내심이었다. 대신 1993년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를 통해 동아시아만의 움직임이 전격적으로 흡수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여기서 분명한 것은 자유무역지대가 대외적으로 배타적인 일종의 경제동맹 성격을 띠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FTA를 통해 하나의 거대한 정치경제적 영향권이 창출된다는 현실적 계산에 기초, 미국은 지속적으로 자신의 영향력 약화를 의미하는 동아시아만의 지역주의를 반대하여 왔던 것이다.


중국의 경제적 부상이 한반도 역학구도에 어떤 방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우선 북한의 고립과 경제적 피폐를 아랑곳하지 않은 채, 소련 멸망 직후인 1992년 중국은 한국과 전격적으로 수교 했다. 소련의 멸망으로 북한에 남겨진 빈곤의 그림자를 지우려하지도 않았다. 한국과 중국이 밀착한 결과는 놀라웠는데, 2004년 드디어 중국이 미국을 제체고 한국의 제일 수출시장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한국전 이후 한미일의 남방 삼각구도와 북중소 북방 삼각구도 중 북쪽의 일각이 완전히 붕괴되며 과거 반세기 이상 지속되었던 한반도 전략균형 구도에 변화가 있었음을 여기서 일단 확인할 수 있다.


과거 한국전쟁 때와는 달리 균형의 변화는 주로 경제적 요인에 의해 발생했다. 중국의 경제적 팽창은 중화경제권의 결속이라는 원대한 계획으로 표출되었는데, 중국과 아세안 간의 자유무역협정은 이를 대변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중국으로 기운다면 중국은 일단 동아시아의 경제패권에 다가가는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관심이 촉발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서서히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북한 변수를 대입하면 더욱 흥미로운 그림이 나타난다. 북한의 생존전략인 핵무기 개발은 일단 1990년대 초 그들에게 드리워진 어둠의 그림자를 중국의 도움으로 해결하는 데는 한계가 있음을 의미한다. 즉 중국과의 경제 및 군사 협력이 제한되는 상황에서 일단 핵무기를 담보로 미국에 접근하는 전략을 새로이 그리게 된 것이다. 이는 뒤집어 이야기 하면 그들 문제의 해결사를 중국이 아닌 미국으로 북한이 계산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어떠한 연계도 없는 미국과 북한이 핵무기를 매개로 경제적인 호혜가 아닌 군사적인 상호 위협에 기대어 협력의 틀을 만든다는 것은 이들 용어 자체가 암시하듯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슷한 맥락에서 핵문제를 풀기 위한 6자회담은 다음의 외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과거 1994년 제네바 합의에서와는 달리 중국이 문제의 당사자로 초빙된 점이 우선 눈에 띤다. 이는 뒤집어 북한이 중국의 영향권 속해있다는 사실을 미국이 인정하니, 중국이 그 문제를 해결해 보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시도는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 그리고 핵 실험으로 유효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다. 결국 중국이 북한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음이 밝혀진 이상, 해결책은 군사적 옵션을 제외한다면 미국과 북한의 직접대화 뿐이었다. 중요하게도 중국을 통한 문제의 해결에 한계가 있음이 밝혀진 셈이다.


북한-중국 관계와는 역비례를 이루며 한국이 중국에 상당히 기우는 현상은 2000년대 들어오면서 더욱 가시화되었다. 한국이 일본과는 지속적인 마찰구도를 그리면서도 중국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추세가 지속되었고, 이는 한반도 남쪽 삼각 연대구도의 일각이 붕괴되고 있음을 의미했다. 여기에 한국과 미국 간에 벌어진 잦은 정책상의 마찰은 과거에는 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동북아시아의 맹주로 군림하고 있는 미국으로서는 어떤 형태로든 한반도 정세의 변화에 대응하여야 했고, 그 단초는 한반도의 남과 북에서 동시에 찾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이러한 전략구도 변화라는 새로운 환경 하에 단행된 것이 한미 FTA이다.


4. 한반도 전략구도의 선점 경쟁과 한미 FTA의 의의


한미 FTA가 처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반이다. 미국의 학자들이 주로 제안하는 형식을 통해 학계의 관심을 잠시 끌었을 뿐이다. 하지만 FTA가 중요하다는 인식이 국내에 뿌리 내리기 시작했고, 그것의 실천을 위해 칠레와 싱가포르를 스파링 파트너로 선정하며 FTA에 대한 실전 경험을 쌓게 되자, 다음으로 한국은 일본과의 FTA 협상을 대담하게 추진하게 된다. 하지만 일본의 미온적인 태도로 협상이 답보상태인 상황에서 미국의 새로운 전략적 계산과 무언가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는 한국의 고민이 맞아 떨어지며 한미FTA 협상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미국의 입장에서 한미 FTA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만약 한국이 중국에 더욱 기울어 양국 간에 FTA가 체결되는 경우 우선 일본이 영향을 받게 된다. 중국의 부상으로 가뜩이나 움츠러든 일본도 힘의 중심이 한반도의 북쪽에 실리게 되면 중력의 법칙에 따라 기존의 구도를 변화시킬 의도를 지닐 수밖에 없으며, 이 경우 미국 주도의 동북아시아 역학구도는 사실상 금이 가게 된다. 이러한 분석은 단순히 추론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역사적으로 비슷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1949년 10월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듬해 2월 중소동맹조약을 통해 일본을 가상 적으로 지정하며 한반도 및 일본열도를 중국과 소련이 압박하자 일본이 양국의 비위를 맞추려는 움직임이 있었고,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 미국이 1951년 9월 전격적으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체결하며 일본을 자신의 동맹국으로 끌어드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미 FTA는 한국이 중국에 기우는 것을 방지하는 중요한 균형추 역할을 하게 됨으로, 그 영향은 일본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 EAEC의 핵심 당사자는 한중일 삼국이었다. 당시 미국의 반대는 결국 한중일 삼각 경제연대에 대한 우려였던 셈이다. 중요하게도 한미 FTA를 통해 미국은 삼국이 자신을 배제한 채 하나로 묶이는 것을 견제할 수 있다. 아직은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삼국 경제연대가 현실화되는 경우에도 지정 및 지경학적으로 가운데에 위치한 한국에 확실한 교두보를 확보한 미국은 삼각연대에 개입할 수단을 늘 보유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미 양자관계를 놓고 보아도 미국의 이해는 크다. 미국의 최대 관심 분야인 한국의 금융 서비스 산업에 더욱 깊게 파고들 수 있음으로 과거의 양적인 것에서 질적인 것으로 상호의존이 심화되며 양국 관계가 더욱 발전하기 때문이다. 상호의존이 깊어지는 경우 동북아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선진 한국에 대한 영향력이 강화됨은 물론 그 영향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는 틀이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기존의 강력한 군상동맹이 이중으로 강화되는 효과 또한 부인할 수 없다. 결국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방식을 통해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것이다.


북한 역시 어떤 형태로든 본 협정의 영향권에 들어 있다. 개성공단 문제는 바로 그 점을 보여주고 있다. 북한이 핵 문제를 극복하고, 미국과의 파트너쉽을 강화하며 개혁개방을 하게 되면 북한은 사실상 미국 주도의 세계 자본주의체제를 수용하게 된다. 당연히 한국과의 경제교류가 가장 활발해 질 것임으로 북한은 한미 FTA라는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미국과 상호의존 관계를 더욱 깊게 맺을 수밖에 없다. 북한이 이를 어떻게 받아들이는가는 그들의 문제이다. 즉 북한체제의 역량이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될 것이다. 여기서 북한은 선택을 강요받게 되는데, 상기의 새로운 메커니즘에 편입되어 경제부흥을 구가할 수 있는 기회를 거부하게 되면, 결국 이중으로 강화된 한미동맹에 정면으로 대항하며 경쟁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도 정치경제적 이익은 막대하다고 할 수 있다. 우선 경제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의미는 우리에게 각별하다. 미국은 세계경제의 패권국이다. 이는 뒤집어 세계경제의 향방이 사실상 미국의 손에 달려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에 대한 금융제재만 보아도 그 위력은 여실히 드러난다. 미국이 조금 움직였음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대외적으로 금융거래를 할 수 없었고, 당연한 결과로 대외무역 또한 사실상 단절되었다. 방코 델타 아시아 은행의 북한자금을 중국은행이 인수하여 북한에 전달하라는 미국 측의 요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행들을 미국의 태도가 다시 변하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에 이를 거절하고 있는 웃지 못 할 상항이 전개되고 있다. 그런 세계경제패권국과 척진 국가 중 경제적으로 부흥한 예가 있는가. 반대의 경우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과거 소련의 멸망이 그것이다.


다음으로 누가 뭐라 해도 현대 첨단 기술의 상당 부분은 미국에 의해 개발되고 있다. 미국이 다른 국가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자원을 R&D 투자에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은 세계 과학기술분야에서 독점적 지위를 누리고 있는 미국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웅변해주고 있다. 또한 미국은 세계 최대의 수입시장을 갖고 있다. 가장 자유로운 시스템으로 운영됨으로 경쟁력 또한 최고이다. 미국 수입시장에서의 성패가 사실상 상품의 국제경쟁력을 의미한다고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특히 미국의 독보적인 자산인 첨단의 금융 및 서비스 산업은 다른 어떤 선진국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국가든 경제가 고도화되면 미국의 금융 및 서비스 산업과 더욱 깊게 연계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은 멀리 갈 것도 없이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행보를 통해 잘 드러난다.


그러한 미국과 국경을 허문 채 교류한다는 것은 싫든 좋든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 기회가 제공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FTA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개혁이 급하다고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과거 40년간의 경제개발사는 한국이 스스로의 개방에는 미숙했지만, 일단 개방이 되어 경쟁이 벌어지는 경우 다른 어느 국가보다도 승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금번 FTA를 통해 미국과 더욱 개방적인 거래를 함으로 인해 한국경제가 한 단계 고도화된다는 것은 한국이 사실상 경제 선진국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한미 FTA의 경제적인 이해를 보다 큰 눈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한미 FTA의 전략적 의미는 미국 못지않게 심대하다. 서두에서 언급했지만 한반도는 세계 최강의 경제력과 군사력으로 무장한 국가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 특히 중국과 일본은 지역패권에 도전할 수 있는 국력을 지니고 있다. 한반도에 인접하여 우리와 분쟁의 소지를 늘 안고 있는 이들 모두는 기본적으로 우리의 경쟁 상대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도 기존의 균형구도에 반해 한쪽 국가에 기우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짓임을 알 수 있다. 한미 FTA는 바로 이를 방지하는 균형추 역할을 하기에 전략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물론 그것은 미국이 가장 바라는 바이지만 한국 또한 균형추 없이 주변국을 견제하고 그들과 경쟁하며 발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미국은 한국과 국경을 맞대지 않고 있는 유일한 한반도 이해 당사국이다. 뒤집어 이야기 하면 한국과 미국의 분쟁 가능성이 그 만큼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균형추 역할을 담당할 국가 중 미국보다 이상적인 조건을 구비한 국가가 또 있을까.


한미 FTA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국경제가 미국에 종속되는 것을 우려한다. 그런 식이라면 세계 어느 국가도 미국에 종속되지 않은 국가는 없다. 국제정치에서는 같은 현상을 상호의존이라는 고아한 용어로 표현하지만 원래 완전한 상호의존은 존재하지 않는다. 국력과 대비한 의존이 있을 뿐이다. 중국은 물론 일본, 나아가 세계 최강의 기술력을 자랑하는 독일조차도 미국에 대단히 의존되어 있다. 논리적으로도 미국이 세계경제의 패권국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이 용어는 그 자체로 세계 모든 자본주의 국가가 미국에 의존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이상의 양자 수준(bilateral)을 넘어 논의들 체제 차원(systemic)으로 확장하면 더욱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현 국제경제질서의 창시자이며, 패권국인 미국도 자신이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 이 거대한 체제에 어느 정도는 종속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도 모든 것을 마음대로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체결된 지 불과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한미 FTA는 한반도의 역학구도를 극명히 보여주고 있다. 협정이 타결되자 중국과 일본이 이구동성으로 한국과 FTA를 맺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중국은 총리까지 나서 공개적으로 구애를 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을 등에 업었을 때 그 힘이 극대화된다는 사실이 여지없이 드러난 셈이다. 같은 논리는 한미 군사동맹의 약화를 우려하는 사람들에 의해 줄곧 강조되어 왔다. 즉 한국이 군사적으로 미국을 업고 있기에 주변국에 대해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런데 그토록 중요한 사실이 군사가 아닌 경제분야에서 입증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결국 한국외교의 축이 어디에 있는지 확인된 셈이다.


반복되는 이야기이지만 한국 경제발전사는 사실상 개방의 역사였다. 스스로의 의지보다는 타인에 의행 강요된 측면이 많았다는 사실이 문제였다. 따라서 한국 국민은 심리적으로 개방의 실익에 대해 늘 둔감할 수밖에 없었다. 한미 FTA를 통해 그러한 심리적 굴레조차도 벗을 수 있게 된다면 큰 자산 하나가 추가되는 셈이다. 또 그렇게 되어야만 국제사회에서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선진국 국민들의 자신 있는 태도와 행보를 우리도 취할 수 있게 된다. 끝으로 경제전략 상 중요한 문제 하나를 짚어 본다. 장기적으로 미국과의 연대를 통해 우리가 취할 최대의 경제적 이익은 무엇이냐는 것이다. 예상에는 미치지 못했다는 지적이 있지만 아마도 금융 서비스 분야의 개방이 가져다주는 우리 경제의 경쟁력 강화가 최대의 자산이 아닐까 싶다. 동북아시아 역학구도에 비추어 봐도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데, 과거의 경제발전 궤적 그리고 국민성, 사회 인프라 등을 고려할 때 중국과 일본이 다이내믹하고 신속한 행동, 나아가 기민한 머리를 요하는 금융 서비스 분야의 강자가 되기는 힘들다고 사료되기 때문이다. 이는 역으로 중국과 일본의 샌드위치 신세를 벗어나는 열쇠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의미한다.


김기수 / 수석연구위원, 세종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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