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미국)의 대북한전략, 변한것은 없다

이춘근 / 2007-03-15 / 조회: 6,725
I. 들어가는 말


2월 13일 북경의 6자 회담에서 북한이 단계적으로 핵 시설을 폐기 하겠다고 약속한 이후, 우리나라 언론들에 의하면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현란할 정도로 긍정적인 외교적 움직임 전개 되고 있다. 신문의 1면 톱기사는 연일 미국과 북한이 곧 수교할 것이라는 내용으로 도배 되었다. 적어도 우리나라의 대부분 언론에 따르면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과 북한은 언제 그랬냐는 듯 정상적인 국제관계를 회복한 나라들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언론들은 북한 외무성 부상 김계관 씨가 미국에 와서 핵 폐기 관련 회의를 하고 미국과 북한 수교에 관해 논의한 것을 그야말로 보도 하는 둥 마는 둥 처리하고 있다. 허긴 미국의 주요 언론들은 2012년 한국이 전시 작전권을 돌려받는다는 소식도 거의 보도하지 않았다.


2월 13일 6자 회담 이후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특이한 현상은, 특히 그동안 부시 대통령의 대 북한 정책을 지지하던 보수적인 지식인들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이들은 미국에 대한 환멸과 부시에 대한 서운함을 여과 없이 분출하고 있다. 부시가 '배반’ 했다는 보수 논객의 기사도 있고, 부시의 외교를 미숙한 텍사스 소년에 비유하는 학자도 있다. 미국은 결국 북한에게 또 속고 말았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미국을 가지고 노는 북한이 자신이 원하는 한반도를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에 한국은 더욱 어려운 입장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그동안 반미, 친북적인 입장을 취하던 사람들은 이번 합의 및 그 이후 전개 되는 미국과 북한 관계의 현상을 결국 미국이 북한에게 굴복 한 결과라고 해설한다. 아무튼 2.13 북경 6자 회담 이후 국제정치의 변화는 헷갈릴 정도라는 것이 오늘 한국에 살고 있는 대부분 지식인들이 느끼는 현실이다.


그러나 필자는 작금 진행 되는 국제정세의 현상을 그다지 놀라운 것으로 보지 않으며 미국이 그동안(특히 9.11 테러사건이후) 일관되게 견지해 왔던 -북한은 물론 동북아시아 나아가서 세계 전체를 향한- 미국 대전략의 일부가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실현 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본 국제이슈 해설은 미국의 세계 대전략이라는 맥락에서 현재 진행 중인 북한 핵문제를 해설하고자 한다.


II. 2.13 이후 국제정치 변화에 대한 올바르지 못한 가설과 분석


미국이 변했다는 가설


2.13 북경 합의와 그 이후 나타나는 국제정세의 변화에 대한 진보, 보수의 공통적인 가설은 “미국이 변했다.” 라는 것이다. 이들은 미국, 특히 부시가 변했기 때문에 그동안 꽉 막혀 있던 북한 핵문제가 숨통을 트게 되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가설을 배경으로 하는 분석들은 미국이 변한 이유를 부시 정권이 다급한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혹은 라이스 장관이 그동안 아무런 업적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이제는 대북정책을 바꾸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라크 문제도 꼬이고 이란 핵문제도 안 풀리고 게다가 민주당이 의회를 장악했기 때문에 부시 행정부는 대북 정책을 수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라고 그럴듯하게 해설한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사람들은 민주당의 의회 장악을 부시 대북 정책 변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과연 그럴까? 필자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정상적인 지식인들은 모두 북한의 자발적인 '고립’을 질타했고 북한의 고립 정책이 오늘날 북한을 둘러싼 국제문제의 근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두들 북한에게 문호를 개방하고 핵을 폐기하는 것이 살길이라고 조언했다. 햇볕정책도 원래 고립적인 북한을 설득(사실은 속여서)해서 개방 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 아니었나?


콘돌리사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북한이 무엇인가를 잘 못할 때 마다 그러면 북한은 “고립 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다. 미국은 북한을 개방 시키는 것을 불변의 정책 목표로 삼아 왔던 나라다. 반면 줄기차게 고립정책을 도모 해 온 것은 북한이었다. 필자는 북한이 미국과 수교 하겠다고 나서며, 그것도 하루빨리 수교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 오히려 더욱 놀라운 변화라고 생각한다. 변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라고 보이는 것이다. 필자는 물론 시간벌기 작전이라는 측면이 있다는 것이 분명하지만 북한정권이 이대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려운 시점에 도달한 것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미국 국내정치가 변한 결과 미국의 대외정책에 변화가 초래 된 것이라면 부시가 제일 먼저 바꾸어야 할 것은 당연히 대 이라크 정책이어야 논리적으로 옳다. 민주당이 난리치는 것은 공화당의 대 이라크 정책이지 북한이 아니다. 민주당 인사들은 본시 이라크보다는 북한이 더 위험하다고 주장하고 있었다. 지난번 선거당시 민주당 후보 중 한 사람이었던 웨슬리 클라크 장군은 부시의 외교정책은 우선순위를 혼동했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라 비판하며 알카에다 테러리스트 그룹 다음으로 미국에게 위협인 것은 북한이고 그 다음이 이란, 그리고 그 다음이 이라크라고 지적하기도 했었다. 가장 최근 북한의 핵시설을 폭격해야 한다고 말한 사람은 민주당 대통령의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William Perry)였고 민주당 인사들은 오히려 대북 강경정책을 주문하고 있는 실정이다.


미국이 북한의 전략에 말려들고 있다는 가설


북한의 능수능란한 외교에 미국이 쩔쩔매고 있는 것처럼 분석하는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친북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하며 마음의 위로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같은 주장은 국제정치의 상식을 터무니없이 어긴 분석이라는 것이다. 미국과 북한 정도로 국력이 차이가 나는 국제 관계에서 강한 측이 약한 쪽에게 휘둘린다는 것은 도저히 말이 되지 않는다.


국제정치의 일반적인 모습을 생각해 보자. 지구상 어느 나라라도 자국의 힘을 증진시키기 위해 좋은 무기를 보유할 수 있다. 물론 북한은 미국과의 약속(1994년 10월 21일의 제네바 합의)을 어긴 것이지만 북한이 천신만고 끝에 핵무기를 보유했는데 미국이 그것을 '말로 할 때 알아서 폐기 하라’ 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 2002년 이후 미 북 관계의 본질이다. 미국은 북한에게 6자 회담이라는 장을 만들어 줄 테니 나와서 국제사회가 보는 앞에서 폐기한다는 약속을 하라고 요구 했으며, 북한 핵문제가 외교적인 수단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언제든지 다른 수단을 강구할 수 있다며 북한을 겁주며 또 그렇게 행동 해 왔다. 지난 3년간 북한은 항상 끌려나오듯 6자회담에 나왔었다. 북한이 버틴 결과 3년 동안 겨우 5번 회의를 할 수 있었을 뿐이었다. 이번 5차 6자 회담은 북한이 비교적 자발적으로 나온 회담이었는데 이는 북한이 어쩔 수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음을 스스로 반증하는 것이다.


미국은 지난번 6자 회담이 열리기 직전 F-117 스텔스 폭격기 15-20대(미국은 이 전투기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도를 한반도 기지에 전진 배치 시켰고, 6자 회담이 끝나자마자 더욱 막강한 F-22 랩터 전투기 12대를 오키나와 카데나 공군기지에 배치했다. 그것도 북한의 요구를 무시한 채 말이다.(자유기업원 홈페이지 Facts and Files 012 참조)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번 북경 6자 회담의 결과를 외교의 승리라고 알고 있지만 프레데릭 대왕의 말처럼 '군사력 없는 외교는 악기 없는 음악회’ 일 뿐이다. 강대국 외교의 전형인 포함외교(砲艦外交, Gunboat Diplomacy 즉 협상하려는 외교관의 뒤에 군함이 따라가서 상대방으로 하여금 협상에 응할 것을 강요하는) 가 바로 북한으로 하여금 이번 회의에서 핵 폐기를 말로나마 약속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상황이었다. 순수이 군사적인 입장에서만 말 한다면 미국이 F-117과 F-22 를 배치 한 것은 '우리는 당신네들이 이들 전투기들의 영공침투 사실을 알아채지도 못하는 사이에 핵 시설은 물론 북한 지휘부조차 격멸할 수 있다.’ 는 무언의 메시지를 북한 측에게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북한은 문제가 없다는 가설

필자는 작금 나타나고 있는 국제관계의 현란한 변화의 심층 동인을 북한에서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북한(정권)이 진정 튼튼했다면 6자 회담은 아예 열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미국이 동결한 BDA 은행 계좌 불과 몇 천 만 달러에 쩔쩔 맨 것이 북한이다. 미국은 이미 5년 이상 PSI를 통해 북한의 중요한 자금줄을 차단하고 있었고(PSI 공식 발표 이전에도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운반 선박, 마약 적재 선박 등을 집요하게 추적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 한 직후 만장일치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 1718은 북한의 목줄을 조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일본의 대대적인 금융제재는 북한 지휘부의 통치 자금을 고갈 시켰다. 2006-2007 겨울 동안 혹독한 추위에 상당수의 북한 주민이 동사했고, 국경 경비대가 탈출했다는 어이없는 일이 발생하는 등 북한은 건강한 국가로서의 기능이 점차 와해 되어가는 중에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 신문들은 2월 13일 6자 회담 직후 평양시가지 도처에 널려 있던 핵 폭탄보유를 자랑하던 선전 문구들이 모두 사라졌다고 보도 했지만 필자는 이미 6자회담이 시작되기도 전에 평양 시내 곳곳의 내 걸렸던 핵보유국임을 자랑하던 구호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은 적이 있었다. 북한이 먼저 유화적 행동을 보인 것이 이번 6자 회담이 결렬되지 않은 이유인 것이다.


돌파구가 필요한 것은 미국이 아니라 북한이었다. 북한 정도의 국력을 가진 나라가 우리들이 지난 몇 년간 보아 온 것과 같은 전 방위적 국제 제재를 감당해 낼 수 있다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레이건 대통령은 취임 후 줄기차게 대소 강경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임기 말 미국의 어떤 대통령보다 소련과 화해 무드를 만들어 내었고 결국 소련을 평화적으로 변화 시킨 냉전의 승자가 되었다. 필자는 지금의 상황을 미국(부시)의 대 북 강압외교가 비로소 결실을 보기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물론 북한이 4월 15일 이후 진정으로 핵시설 불능화(不能化) 조치를 단행 할지는 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말이다)


III. 미국의 대 북한 정책의 지속성


부시가 변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즉 부시가 그동안 북한에 대해 강경 정책 일변도 였었는 데 지금 갑자기 유화적인 정책을 쓴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레이건 당시의 미국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줄기차게 대소 강경책을 쓴 레이건은 결국 임기 말엽에 이르렀을 때 미국 역사상 어떤 대통령보다 소련에 대해 더 유화적인 대통령 이었다. 레이건은 어떤 대통령 보다 소련과 더 많은 평화적 대화를 통해 협상을 타결시킨 대통령이 되었다. 레이건이 갑자기 변한 결과 냉전이 끝난 것이 아니다.


부시가 강경했다고들 말하지만 부시는 북한을 향해 군사력이라는 수단을 한번도 직접 사용한 적이 없고, 부시가 재임하는 6년 동안 미국과 북한 사이에 총 알 한방 날아간 적이 없으며, 클린턴이 재임하던 당시인 1994년 봄의 위기 상황과 필적할 수 있는 미국-북한 간의 위기 상황은 부시 행정부 아래서는 존재하지 않았다.

부시는 언제라도 북한 핵문제는 대화 및 외교로 풀어야 한다고 말 했지 북한의 핵 시설을 무력 공격 하겠다 혹은 미군으로 북한을 침략하겠다고 말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미국이 군사적인 '수단’을 외교적 '목적’을 위해 사용한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시가 북한을 향해 끈질기게 추진한 것은 강압외교(coercive diplomacy)였으며 이는 외교와 더불어 군사, 정치 적인 수단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서, 북한 정권을 코너로 몰고 가겠다는 것이었다. 군사적 수단은 평화라는 '목표’를 위해 언제라도 동원 될 수 있다는 것이 국제정치의 자연스런 현상이다.


필자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주장했지만 현재의 북한이 미국에게 문제가 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핵폭탄’ 그 자체가 아니다. 북한이 미국의 문제가 되는 것은 북한 정권이 테러리즘과 연계 될 수 있다는 점, 즉 북한정권이 국제테러리즘을 지원하며, 핵폭탄을 테러리스트에게 능히 건넬 의도가 있는 불량 정권이라는 점 때문이었다.


미국은 핵을 보유한 나라라 할지라도 그 나라가 미국 편인 경우 그 나라의 핵무기에 대해 시비 걸지 않는다. 영국, 프랑스, 이스라엘의 핵을 가지고 미국이 시비 건 적이 없다. 냉전 종식 후 미국은 수천 발에 이르는 러시아의 핵을 더 이상 시비 걸지 않는다. 인도의 핵은 오히려 도와주겠다고 할 정도다. 테러전쟁 시대에 미국의 동맹국이 된 파키스탄의 핵무기도 눈감아 준다.


미국은 오래 동안 북한의 문을 열고자 했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서는 날이 언제 올지 현재로서는 오리무중이지만(필자는 최근의 낙관론과 견해를 달리하며 그렇게 쉽게 일이 진행되기 어렵다고 보는 편이다) 미국은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의 대전략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된다. 하나는 테러리즘과의 싸움이며 다른 하나는 패권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는 노력이다. 중국이 미국 패권에 대한 주요 도전국 이라는 사실을 인정 한다면 미국이 북한과 적대관계를 해소 한다는 것은 미국이 중국과 패권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략적 거점을 하나 더 확보하는 일이 될 것이다. 평양에 미국 대사관이 들어서는 날 중국은 더 이상 북한을 자기 것처럼 (최근 중국은 한반도 북반이 전부 중국영토였다고 주장하였다)마음대로 다룰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미국과의 빠른 수교를 강력히 원하고 있는 모양인데 세계의 패권국 미국 대사관이 평양에 들어서는 날 북한은 사회주의, 주체사상, 선군정치, 강성대국 등 그동안 북한이 금과옥조처럼 외쳐온 중요한 정치사상과 북한 정권의 모든 잘못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담당 했던 '반미주의’라는 정치사상은 어떻게 하려는지 모르겠다.


( * 본 국제이슈해설은 두 편으로 나누어 기고 됩니다. 다음 국제이슈해설에서 계속 됩니다.)


이춘근 / 政博.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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