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체중인 북한

신지호 / 2006-12-20 / 조회: 8,040
북한은 어디로 가는가? 이제껏 북한체제의 앞날과 관련해 조기붕괴론과 장기존속론이라는 두 가지의 상반된 해석이 존재해 왔다. 그러나 이 둘은 북한체제의 앞날을 예측하는데 한계와 오류를 노정했다. 이에 본고는 그 대안으로 국가해체론을 제기한다.


국가해체론은 경제를 비롯해 주요부문의 기능이 저하되거나 마비되어 북한 수령절대주의 체제가 지속적으로 약화되고 있음에 주목한다. 그러나 국가해체론은 조기붕괴론과는 다르다. 첫째, 국가의 해체와 붕괴를 구분하고자 한다. 특정기능(경제)이 마비됐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사망(붕괴)에 이르는 것은 아니다. 이와 같이 국가해체론은 해체와 붕괴를 동일한 현상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단 해체의 진행(양적 축적)이 붕괴(질적 전환)를 촉진시킨다는 '양질전화의 법칙’을 수용한다. 둘째, 기능저하?마비 및 체제약화의 구체적 메커니즘을 究明하고 그 진행정도를 측량하고자 한다. 먼저 경제파탄에서 시작된 국가해체 현상이 어떠한 경로를 통해 어디까지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다음으로 그 양상이 국가의 생명에 지장을 미칠 정도의 것인지를 판단하며, 마지막으로 향후의 진행 양상이 어떻게 될 것인지, 언제쯤 양질전화가 이루어질 것인지를 예측하고자 한다.


그렇다면 국가해체론은 어떻게 구성되는가? 그 기본 구도는 다음과 같다.


제1단계 : 경제파탄의 장기화와 당국의 통제력 상실
제2단계 : 사회질서의 이완 및 주민의식의 변화
제3단계 : 정권에 대한 불만고조와 정치통합력의 약화
제4단계 : 포스트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 격화 + 대외관계 악화
제5단계 : 체제붕괴


국가해체론의 대략적 상황인식은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시절부터 시작된 국가해체현상이 제2, 3단계를 거쳐 현재 제4단계까지 진행돼 있다는 것이다. 그 진행과정을 살펴보기로 하자.


(1) 제1단계 : 경제파탄의 장기화와 당국의 통제력 상실

사회주의권의 붕괴는 이른바 '사회주의우호무역’에 크게 의존해 온 북한경제에 치명적 타격을 안겨 주었다. 그 결과, 식량, 에너지 등 극심한 물자부족 현상이 발생하여 계획 메커니즘이 사실상 마비되었다. 공장 가동률은 30%이하로 떨어졌고 식량배급제와 국영상점 유통망도 기능정지 상태에 빠지게 됐다. 이의 여파로 지하경제 등 비공식부문이 급팽창하여 실물경제를 주도하게 되었다. 계획경제를 정상화시킬 능력이 없는 북한당국은 이러한 현상을 묵인할 수밖에 없었다.


1990년대 중반 이래 북한의 장마당은 국영 상업망의 단순한 보완수단이 아니라 대체수단으로 기능하고 있다. 근년 북한 주민은 식량의 60%이상과 생필품의 70%이상을 장마당을 통해 조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처럼 밑으로부터의 자생적 시장질서의 확대라는 현상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정착되고 있다. 당국은 경제흐름에 대한 통제력을 복원, 강화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러한 움직임이 개혁정책의 확대로 나타나고 있지만, 중국, 베트남과 같은 현실선도형 개혁정책이 아닌 원치 않은 현실추수형 개혁정책이라는 점에서 본질적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당국의 통제를 벗어난 자연발생적 시장 메커니즘의 확산현상은 이제 유통부문을 넘어 생산부문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상업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사람들이 일종의 사용료를 지불하고 기존 공장 및 기업소의 이름으로 무언가를 만들거나 채취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편 2005년 9월 북한당국은 장마당에서의 쌀 판매를 금지시키고 과거의 식량배급제를 부활시키려 했다. 자생적인 시장메커니즘의 확산을 차단하고 당국의 통제력을 복원시키고자 한 시도로 풀이된다. 이 조치가 성공을 거두자면 충분한 공급능력이 뒷받침되어야 하는데, 북한내부의 제한적 생산능력을 고려할 때 외부로부터의 안정적인 대량공급이 확보되어야 했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새로운 정책을 실시할 것이라는 예고는 했지만, 본격적인 실행에는 착수하지 못했다.


이처럼 최근 몇 년간 북한당국의 경제정책은 연속적으로 실패하고 있다. 무엇보다 확실한 정책방향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당국의 통제력을 복원시키려는 조치를 일관성 없이 취하다 보니 현실과의 접목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연속적 정책 실패로 당국의 권위는 더욱 실추되고 실물경제에 대한 통제력은 한층 저하되고 있다.


(2) 제2단계 : 사회질서의 이완 및 주민의식의 변화


계획 메커니즘의 기능마비와 지하경제의 확산은 사회질서의 이완을 초래하였다. 통행증 제도가 유야무야되었고 각종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등 경제범죄가 증가하였다. 사회풍기도 문란해져 매춘 등이 일상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돈만 있으면 탈북 등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사회적 의식 또한 확산일로에 있다. 심지어 '우리식 사회주의의 최후보루’라 일컬어지는 군대에서조차 군수품을 빼돌려 장마당에 파는 행위가 일상화되고 있다.


사회질서의 이완 못지않게 주목해야 할 현상이 주민의식의 변화다. 2002년 '경제관리개선조치’를 통한 배급제의 중단은 수령절대주의의 물질적 기반이 해체되었음을 의미하는 사건이었다. 이는 배급제가 유지되던 시절 “수령님 덕분에 먹고 산다”던 생각이 “내가 먹고 사는 것과 장군님과는 상관없다”로 바뀌는 자연스런 계기를 제공해 주었다.


지금의 북한 주민은 10년 전 '어버이 수령’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던 그 '충성스러운 인민’들이 아니다.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에 열중하고 있는 '자본주의적 인간형’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런 상황을 예방하고 억제하기 위해 북한당국은 갖가지 방법을 통원하여 주민통제를 시도하고 있지만, 사회통제시스템 전반에 발생하는 균열현상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있다. 경기침체에 따른 굶주림의 확산과 정치권력에 의한 폭력의 반복적 행사는 북한주민의 불만을 증폭시킬 것이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통치패턴으로 볼 때, 김정일 정권이 이러한 위기상황을 근원적으로 해소할 획기적 조치를 내놓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3) 제3단계 : 정권에 대한 불만고조와 정치통합력의 약화

'강고한 정치체제’를 지탱시켜 온 주요축인 '종교적 세뇌’의 위력이 현저히 약화된 결과, 수령-당-인민으로 이어지는 삼위일체의 국가유기체론은 더 이상 효율적인 정치통합의 기제로 작동하기 힘들게 되었다. 인민은 이미 그 기제로부터 이탈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북한당국은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사상무장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김정일 정권은 사상무장 강조 등의 결과가 신통치 않자 폭압장치에 의한 강권통치를 강화하고 있다. 중단되었던 공개처형이 2005년에 재개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이는 필연적으로 김정일 정권에 대한 불만을 고조시키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 같은 불만이 체계적인정부 활동으로까지 발전하고 있지는 못하다. 내부에서의 적극적 저항보다 바깥으로의 소극적 탈출이 주된 형태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최근 북한 내에서김정일 운동조직의 실체가 확인되는 등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2002년 9월 17일에 있었던 북일 정상회담과 이후 진행과정은 김정일의 권위와 리더십에 대한 회의를 확산시켰다. 고이즈미 총리를 평양으로 불러들여 납치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파격적 '고백외교’를 펼쳤음에도 국교정상화 및 수교자금 획득 등 소기의 성과를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범죄국가로 세계적 낙인이 찍혀 국제관계에서 더욱 고립되자 고위층을 중심으로 김정일의 지도력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증가한 것으로 분석된다. '천출명장’의 전략실패에 따른 권위실추 현상이다.


2004년 4월의 용천역 폭발사고는 이러한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이었던 고건 총리는 사건의 여파로 평양에 친중 괴뢰정권이 들어설 것 같아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고백한 바 있다. 요컨대 용천역 사고가 북한당국의 주장처럼 단순사고가 아니라 중국이 개입된 북한 내 김정일 세력의 거사였다는 해석이다.


2006년 10월 9일 핵실험 이후 북한 주민들의 반응은 정치적 통합력 약화와 관련하여 또 하나의 중대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1998년 북한당국이 인공위성을 발사했다고 선전했을 때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인공위성을 만들 돈이 있으면 백성이나 먹여 살릴 것이지”하며 수군댔다고 한다. 최근의 핵 실험 이후에도 유사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핵실험의 성공을 자축하는 군중집회가 각지에서 열리고 있지만,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싸늘한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 김정일 정권의 핵실험으로 인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로 '제2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탈북자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4) 제4단계 : 포스트 김정일을 둘러싼 권력투쟁 격화 + 대외관계 악화

주지하듯이 김정일은 1964년에 조선노동당에 입당하여 1974년(김일성 62세, 김정일 32세)에 후계자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전례로 판단한다면 김정일이 환갑을 넘긴 현 시점에 제3대 '수령’이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2대 수령에서 3대 수령으로의 후계 작업은 수많은 파란 요소를 안고 있다.


첫째, 김일성 사후 10년 이상이 경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유훈통치’적 요소가 소멸되지 않고 있는 데서 나타나듯이, 김정일의 카리스마는 김일성에 비해 매우 떨어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후계 작업을 공식화하기는 곤란하다.


둘째, 차기 지도자로 김정남, 김정철, 김정운 등 김정일의 아들들이 거론되고 있으나, 현재와 같이 국가해체가 진행되고 있는 속에서 그와 같은 왕조식 권력세습이 과연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셋째, 설령 아들 중에서 후계자가 나온다 할지라도 누구로 결정될 것인가 하는 문제 역시 간단치 않다. 일각에서는 고영희의 장남인 김정철이 유력하다고 분석하고 있으나, 성혜림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이 완전히 제외되었다는 뚜렷한 징후도 포착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후계자 선정 과정에 들어간다면 권력층 내부의 충돌이 발생할 개연성이 높다. 후계자 문제의 부상은 그동안 김정일을 중심으로 통일돼 있던 정치세력들의 향후 생존 문제를 야기한다. 설령 김정일의 강력한 힘에 의해 정남, 정철, 정운 중 한명을 후계자로 세운다 하더라도 각 정치세력들의 보이지 않는 이합집산과 권력투쟁은 필연적으로 표면화될 것이다.


숙부 김영주와의 후계경쟁 경험이 있는 김정일은 이런 상황 예측에 따라 후계문제 처리를 연기시킬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김정일의 의도와는 달리 후계체제를 둘러싼 권력투쟁이 심화된다면 북한체제는 결정적 국면에 돌입하게 된다. 경제파탄과 의식변화라는 '밑으로부터의 변화’가 권력투쟁이라는 '위로부터의 변화’와 맞물려 국가해체의 진행이라는 양적 축적이 김정일 정권의 몰락이라는 질적 전화로 이어질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바깥’과 어떤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외적 요인’이 어떻게 내부 권력투쟁과 연결될 것인지가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최근의 핵실험은 이런 맥락에서 북한체제의 앞날과 관련해 중대한 전환점이 될 전망이다. UN결의안 1718호의 안보리 만장일치 채택과 대북제재의 강화, 특히 이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의 대북태도 변화로 그간 외부지원과 불법교역에 의존해 근근이 명맥을 유지해오던 북한경제는 枯死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10월말의 조건 없는 6자회담 복귀 천명은 바로 이러한 예봉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으로 풀이된다.


한편 10.9 핵실험을 전후해 북한 내 권력투쟁이 심화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핵, 미사일 실험을 주도했고 권력세습을 지지하는 군부강경파와 개혁개방과 집단지도체제를 선호하는 장성택을 중심으로 한 친중파 사이의 상호견제와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핵실험을 앞둔 9월말 장성택이 탄 차가 평양의 백주대로에서 군부차량에 받쳐 파손된 사건은 권력투쟁 과정에서 기획된 테러가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북한의 국가해체는 현재 4단계 초입부분까지 진행된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국가해체론의 4단계 진입이 자동적으로 5단계인 붕괴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대내외적 여건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따라 4단계에서 5단계로의 轉化가 지연될 수도, 촉진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향후의 진행방향과 속도를 결정할 가장 중요한 요인이겠는가? 미국과 중국의 김정일 정권에 대한 태도와 처방 그리고 양국 간 협력의 수위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와 관련, 부시 행정부는 10.9 핵실험 이후 정권교체(regime change)를 현실적 목표로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이 김정일 정권을 종식시키는 데는 중국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북한의 높은 대중 경제의존도와 중국의 북한 지도부에 대한 영향력 등은 결정적 요소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와 관련, 'WMD 없이 개혁개방 노선을 걷는 새로운 북한’이 자국의 이익에 가장 부합하다는 결론에 이르렀으나, 그 실현가능성으로 인해 주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중국은 '김정일 없는 북한’에 대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특히 김정일 이후의 북한이 자국의 절대적 영향력 하에 들어오는 질서변화는 더 바랄 나위없는 시나리오다. 요컨대 동북공정은 과거를 둘러싼 쟁투가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개척하는 야심찬 계획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미중 양국은 북한 처리를 놓고 '큰 거래’를 할 수 있다. 김정일 정권 제거를 통한 WMD 문제해결이라는 미국의 단기적 이익과 김정일 이후의 북한을 자국의 영향력 하에 놓으려는 중국의 중장기적 이익이 의기투합하는 시나리오다. 이 시나리오의 종착역은 '중국의 위성국으로서의 새로운 북한’의 탄생이다. 이와 같은 '제2의 카쓰라-태프트 밀약’을 통한 '북한의 중국화’는 영구분단 및 통일 불가능 상황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한국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한미동맹을 강화하고 대북 공동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김정일 정권의 종식을 시야에 넣은 행동에 적극 나서고 김정일 이후의 북한관리에 대해 국제사회가 수용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집권민주화세력은 김정일 돕기와 한미동맹 약화라는 정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그러나 한미동맹이 약화되면 될수록, '제2의 카쓰라-태프트 밀약’의 가능성은 높아진다. 문제는 집권민주화세력이 이 같은 동북아 국제정치의 역학을 전혀 체득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집권민주화세력의 '의도하지 않은 매국’ 행위가 지속될 것인가, 아니면 폐기될 것인가? 그런 점에서 2007년 대통령 선거는 한반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될 것이다.


신지호 / 자유주의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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