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폐기의 딜레마: 북한 핵은 북한 체제 그 자체가 되어버렸다

이춘근 / 2006-12-11 / 조회: 11,450
들어가는 말


모하메드 엘 바라데이 국제 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12월 5일 베이징의 칭화대학(靑華大學) 의 연설에서 “북한과 이란의 핵 야욕으로 초래된 대립 상황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외교적 노력이 가장 효과적” 이라며 특히 “북한의 경우 이 같은 노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2006년 12월 6일자) '외교적 해결’ 이라니 정말 좋은 말이다. 북한 핵 문제처럼 어려운 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 될 수 있다면 이 세상에 그 보다 소망스런 일이 어디 있을 것인가? 문제는 '외교로 해결’ 하자는 것은 말하기는 제일 쉽지만 성공하기는 정말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리드리히 대왕은 '군사력이 동원되지 않는 외교는 악기 없는 음악회와 같다’고 말했다.


인간 역사 5000년 동안 전쟁이 무려 14,500회나 발발 했다는 사실과 세계 모든 나라들이 그토록 많은 군사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사실은 국제정치의 문제가 외교만으로 해결되기 어렵다는 반증이다. 북한이 수백만 인민이 아사 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외교의 한계를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1980년대 말엽 북한이 핵개발에 본격적인 박차를 가할 무렵, 주요 해결 당사자중 하나였던 IAEA는 이제 핵을 만드는 북한을 만류하는 입장이 아니라 핵을 이미 보유한 북한과 상대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핵을 만드는 과정도 막지 못한 국제원자력 기구의 사무총장이 완성된 북한 핵을 외교로 푸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 IAEA 의 한계일 것이다.


11월 18일 베트남의 하노이에서 열린 아태 경제 정상회담(APEC) 중 언론인들과 만난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북한이 핵무기와 핵 야망을 포기하면 북한의 안전 보장과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에 대한 협의에 들어갈 것이라는 것을 북한 지도자들이 알기를 바란다.” 고 말했으며 또한 같은 날 미국 백악관 토니 스노 대변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여러 방안 중에는 한국전의 종료를 선언하고 경제협력과 문화 교육 등 분야의 유대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이 포함 돼 있다” 고 말했다.


그러나 며칠 후 1차 북 핵 위기당시 민주당출신인 클린턴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던 윌리엄 페리는 북한 핵에 대해 전혀 딴판의 언급을 하고 있다. 이미 2003년 '한국 정부가 전쟁 반대와 평화만 얘기하면 북한이 오해 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던 페리 전 장관은 12월 1일 스탠포드 대학의 강연에서 핵무기 원료인 북한의 플루토늄이 외국에 유출되는 경우 미국은 북한을 쓸어버릴 것 (Wipe out) 이라고 말했다.(연합뉴스 12월 3일자)


우리나라 언론들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경우 미국이 한국 전쟁의 종료를 선언할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어 크게 보도 했다. 그리고 미국 측의 태도가 과거와는 상당히 달라진 것이라고 해석하고 그 이유를 부시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라고 해설 했다. 한국 정부가 PSI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 한지 얼마 되지 않는 시점이지만 부시 대통령은 오히려 한국의 PSI 지원에 감사한다는 아리송한 말을 던졌고, 북한 핵에 대해서도 해석이 제각각 일 수 있는 여러 가지 종류의 당근을 던지고 있다. '한국전쟁의 종료’ 언급에 대해 한국 언론은 이를 대대적인 뉴스로 다루었지만 미국 측에서는 큰 보도도 해설도 나오지 않았다.


과연 미국이 북한에게 핵 폐기의 조건으로 제시한 각종 언급들은 무슨 의미를 가지는 것이며 북한은 과연 미국이 제시하는 조건들과 자신들의 핵무기를 맞바꿀 수 있는 것일까? 미국이 북한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이며 북한은 미국이 어떤 대가를 제공 할 때 핵무기를 폐기 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왜 핵을 만들었으며 미국은 왜 북한 핵을 문제 삼고 있는가에 대해서 먼저 답해야 한다.


북한이 핵을 만든 이유


국가들이 무장을 갖추는 이유는 다양하다. 우리는 국가들이 합리적인 이유 즉 국가 안보 때문에 무기를 갖추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것만이 이유가 아니다. 국가들이 국가안보 때문에 무장을 갖추고 있다는 설명 방법을 제임스 페인(James Payne) 교수는 '정책 합리적 접근 방법’ (Policy Rational Approach)이라고 말한다. 국가들이 무장하는 이유는 합리적인 이유보다 오히려 다른 이유 때문이라 주장하는 페인 교수는 국가들은 주로 '국내적인 이유’ 때문에 무장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바 있다. 특히 공산주의 국가, 이슬람 국가들이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보다 더 많은 군사력을 가지려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공산주의 및 이슬람의 정치 이데올로기가 다른 이데올로기보다 '적’()을 보다 분명하게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다음으로 국가들이 무장을 하는 이유는 국내정치적인 요인이다. 강한 군사력은 독립국의 상징이기도 하며 다른 부분에서 실패한 지도자들의 실책을 정당화 시키는 핑계거리가 되기도 한다. 심지어 실책을 만회하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지도자들도 있었다.(예로서 포클랜드 전쟁을 일으킨 아르헨티나 독재정권) 또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고, 군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한, 아무리 실패한 정권이고 독재 정권이라고 하더라도 권력을 상당기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정치학자들이 발견한 사실이다.


북한의 핵개발 역시 정책 합리적 접근 방법만 가지고는 완전히 설명 할 수 없다. 북한이 항상 주장하는 '미국과의 적대관계’가 북한의 핵개발 원인을 얼마나 설명할 수 있을까? 북한의 현 정권이 주장하듯 북한이 핵을 만드는 이유가 오직 미국 때문이라면 북한은 핵무기를 포기할 확률은 없다. 미국이 없어질 확률은 없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은 현 조지 부시 정권의 존재를 특히 핵을 개발하지 않을 수 없는 요인으로 강조한다. 그렇다면 북한은 클린턴 때는 왜 핵을 개발 했고, 부시가 겨우 8살 밖에 되지 않았던 1954년에는 왜 핵을 개발하려 했는가?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가 나쁠 때건 좋을 때건 계속 핵폭탄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은 북한의 핵개발이 북한 체제에 내재하고 있는 심층 동인(深層 動因)에 근거한 것이라는 점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다.


사실 북한이 최초로 핵폭탄에 대해 관심을 가진 것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부터였으며, 1950년대 중반 본격적으로 핵개발에 착수 한 이래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핵보유국이 되는 꿈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 북한이 이처럼 일찍이 핵을 가지려 한 이유는 한국 전쟁에서의 쓰라린 경험 때문이었다. 한국 전쟁 당시, 남한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고 있는데 반해 자신들은 동맹국이라는 소련으로부터, 그리고 중국으로부터도 만족스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결국 독자적인 국방력이 있어야만 된다고 생각한 북한은 그처럼 일찍 핵개발을 시작했고 50년 각고 끝에 지난 10월 9일 핵 보유국임을 증명해 보인 것이다.


김일성은 이미 1960 년대에 미국이 핵을 사용하면 북한도 핵으로 대응 할 수 있다고 호언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북한이 진짜 본격적으로 핵을 만들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말엽 무렵이다. 동부 유럽의 공산주의가 다 무너지고, 소련마저 휘청거리고 있었으며,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자본주의 노선을 따르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의 유지를 위해 핵폭탄을 보유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다. 1993년 중국이 한국과 수교 했을 당시 북한은 “이제 믿을 것 이라고는 핵무기 밖에 없다.” 라며 핵무기 제조 일꾼들을 독려 했었다고 한다. 1990년대 초반 소위 북한 핵 제 1 차 위기는 1994년 10월 21일 제네바 핵합의로 종료 되었다. 클린턴 행정부는 북한이 핵을 동결하는 대가로 중유, 경수로 발전소 건설, 식량 등 원조를 제공하기로 약속한 바 있었다.


물론 북한은 1994년 10월의 제네바 합의 이후에도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플루토늄 방식이 아닌 우라늄 농축을 통한 핵개발에 매달렸고 그것이 국제사회에 노출 된 것이 2002년 10월 3일의 일이었다. 이처럼 북한은 미국의 행정부가 어떤 행정부였던 간에 핵에 대한 집념을 버린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이다. 즉 부시 행정부의 존재가 현재 북한 핵의 존재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며 미국의 존재역시 북한 핵의 모든 이유는 아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할 수 있는 현실적 대가는 있는가?


최근 북한은 처절한 빈곤과 기아를 해결하지 못한 모든 이유를 미국에게 돌리며 그래서 핵폭탄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제 핵폭탄을 만들었느니 앞으로는 경제에 매진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다. 드디어 미국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는 의미다. 북한의 논리대로 핵을 보유함으로서 미국의 위협에서 벗어나게 되었다면,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북한의 핵을 폐기 시킬 수 있는 유일한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방법은 미국이 북한에게 완전한 안전 보장을 제공하는 경우다.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에게 제공할 완전한 안전 보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포함 해야 하는 것일까? 북한은 체제의 보장을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김정일 정권의 유지를 보장 해 달라는 의미인지, 북한의 주체사상 체제의 유지를 의미하는 것인지, 혹은 사회주의 체제를 보장 해 달라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당연히 미국의 제의들도 애매모호하다.


더 큰 문제는 미국이 아무리 김정일 정권의 안전을 보장하고, 주체사상 혹은 북한식 사회주의 체제를 보장 해 주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그럴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의 여부다. 북한 김정일 정권의 안정은 궁극적으로는 북한 주민이 보장해 주는 것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 정권의 안정을 보장 해 준적도 없고, 보장 해 줄 능력도 없다. 만약 미국이 진짜 김정일 정권의 안정을 보장 해 주려면 북한 주민의 폭동이 일어날 경우, 혹은 북한내부에서 쿠데타 등 반발이 야기 될 경우 미군이 진압 작전을 대신 해 주어야 할 것이다. 불가능한 얘기다. 만약 북한이 원하는 것이 사회주의 체제의 보장이라면 막대한 돈을 퍼 부으면 될 것이다. 그러나 막대한 원조는 그것 자체로서 북한이 말하는 사회주의체제의 멸망과 직결될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많은 좌파 지식인들이 미국과 북한이 불가침 협정을 맺으면 된다고 말한다. 자가당착적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예로서 촘스키라던가 셀릭 해리슨 같은 좌파들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애초에 구제불능의 깡패로 인식한다. 그래서 이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으로 북한이 배운 교훈은 '미국의 표적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규모 위험을 야기할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촘스키, 패권인가 생존인가, 한국어 번역판 p.51) 한국의 어떤 교수는 미국의 엔진은 전쟁과 시장이라고 규정한다. 미국은 도저히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가진 구제불능의 나라라는 의미다. 미국을 태생적으로 전쟁할 수밖에 없는 나라라고 보는 좌파 지식인들이 북한보고 미국과 외교와 대화를 하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북한 역시 미국을 철천지원수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그들의 표현을 그대로 믿는 다면). 그렇다면 철천지원수가 해주는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포기하라고? 역시 불가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미국과 북한의 체질적 적대감은 현재 북한 정권이 존재하는 한 해소 될 가능성이 없는 일이다. 외교를 통해 두 나라 사이가 좋아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국제정치의 현실을 호도하는 것이다. 북한과 미국이 서로 체질적으로 적대관계에 있기 때문에 오늘 날과 같은 현상이 나타난 것이며 이러한 본질적 적대관계, 증오 관계가 협상으로 해결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이 일본에 대해 느끼는 적대감이 조약 몇 개 체결하고 원조 얼마 받는다고 해결 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최근 한국은 북한의 핵에 대해서는 별로 심각하게 반응하지 않았지만 일본이 핵무장 할 경우 한국도 가만있지 않을 것처럼 말했다. 미국과 북한 관계는 한국-일본 관계보다 훨씬 더 미움과 증오의 관계에 있다.


또 다른 문제가 있다. 만약 북한의 핵이 외교와 대화로 풀리기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적대 정책을 폐기하는 대가로 북한도 대미 적대 정책을 폐기해야 할 것이다. 반미주의는 그동안 김정일 정권을 지탱하는 굳건한 기둥이었다. 그런데 과연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반미주의’라는 국가적인 에토스(National Ethos) 없이도 존재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심각히 고려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북한은 핵보유를 체제의 성과라고 선전하고 있다. 그것도 미국과의 관계라는 맥락이 아니라 반만년 민족사라는 관점에서 말이다. 북한은 핵보유국이 되었다는 사실을 반만년 민족사의 위대한 역사적 사변으로 간주하고 있다. 이미 핵 보유는 북한의 체제 그 자체와 동의어가 되었다. 선군과 강성대국에 핵폭탄은 필수품이다. 핵이 없는 김정일 체제, 반미주의가 없는 북한 체제가 가능할 수 있을까?


미국 역시 9.11 이후 북한의 핵은 반드시 '폐기’ 되지 않으면 안 될 미국의 가장 시급한 안보 위험 요인으로 간주한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오로지 외교뿐이라고 말하는가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쓸어버린다는 험악한 표현도 거침없이 나오는 것이다.


이춘근 / 자유기업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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