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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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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제도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

김영용 | 2005-03-01 | 시대정신 28호 | 조회수 : 4,943

Ⅰ. 서론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를 포함한 각국의 연금제도는 복지국가 건설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우리 헌법 제34조 제1항에서도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함으로써 국민들의 일반적인 생존권 내지 생활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는 국가의 사회보장과 사회복지 증진 의무에 대하여 규정하고 있다. 또 제5항에서는 신체장애자, 질병, 노령 등의 사유로 생활 능력이 없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와 같이 우리 헌법도 복지제도에 국가가 깊이 개입할 것을 명시하고 있으며, 그런 점에서 헌법재판소도 우리 경제를 '사회적 시장경제’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주도의 복지국가 건설 논리는 이론적으로 취약할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달성하기 어렵다는 데 문제가 있다.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 가격은 정보전달 기능, 유인제공 기능, 그리고 소득분배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한다. 정보전달 기능이란 시장에서 수요와 공급의 변화 상황을 가격이 각 경제 주체에게 널리 알려주는 기능을 말하며, 유인제공 기능이란 각 경제 주체들이 가격 변화가 의미하는 시장 상황의 변화를 인지하고 이에 대처하게 하는 기능을 말한다. 그리고 소득분배 기능이란 각 경제 주체가 시장 활동을 통해 얻게 되는 소득이 자원의 소유량과 그 시장 가격에 의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을 말한다. 즉, 시장 활동을 통해 얻어지는 소득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생산 요소인 노동, 토지, 건물, 그리고 기타 자본재 등에 대한 지불로 구성되는데, 이는 다시 그러한 생산 요소의 종류 및 양과 그 시장 가격에 의해 결정되는 것을 말한다.

국가 주도 복지제도의 특징은 가격의 정보전달 및 유인제공 기능을 소득분배 기능과 분리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 기능은 분리 가능한 것이 아니라는 데 복지정책의 딜레마가 있다. 즉, 소득분배 기능을 정부가 수행하면 '분배방식’이 '생산’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가격의 세 기능은 모두 작동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개인의 선택의 폭을 제한하고 인기영합적인 소득재분배적 요소를 많이 포함하고 있는 국가 독점의 강제적 연금제도가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어려운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한국의 국민연금은 칠레의 민영화 사례를 거울삼아 연금 수령자가 많지 않은 지금, 민영화를 단행하는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서론에 이어 본고의 제2절에서는 현행 국민연금제도의 연혁에 대해 간단하게 기술하고, 제3절에서는 그 성격에 대해 기술하며, 제4절에서는 설계내용과 그에 따른 문제점을 검토한다. 그리고 제5절에서는 칠레의 민영화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의 국민연금제도의 개선 방안을 논의하며, 마지막으로 제6절은 결어로 삼는다.


Ⅱ. 국민연금제도의 연혁

한국의 공적 연금제도는 1973년 12월 24일 '국민복지연금법’(법률 제2655호)이 제정된 이래 2차례의 개정을 거쳐 기본 골격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경제적 불황과 사회 현실의 여건 미비로 그 시행이 보류되었다. 그 후 사회 경제적인 변동으로 노후 생계 보장에 대한 사회적 욕구 증대, 소득 수준의 향상으로 비용 부담 능력의 신장, 핵가족화, 그리고 평균 수명 연장에 따른 국민의 노후 대책과 사업장에서의 각종 사고 증대에 따른 소득 능력 상실자에 대한 생활보장의 요청이 현실적인 과제로 대두되었다. 이에 따라 1986년 12월 31일 법률 제3902호로 종래의 국민복지연금법을 '국민연금법’으로 전면 개정하고, 1987년 8월 14일 대통령령 12227호로 종래의 '국민복지연금법시행령’을 '국민연금법시행령’으로 전면 개정하여 1988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게 되었다.

이와 같은 배경을 가진 국민연금제도는 기존의 군인 연금, 공무원 연금, 그리고 사립학교교직원 연금에 이어 1988년 1월에 1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를 대상으로 처음 도입되었으며, 가입 대상자에 대한 강제 가입을 규정하였다. 이후 1991년 8월 10일 대통령령 13449호로 개정된 국민연금법시행령(1992년 1월 1일부터 시행됨)에서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의 근로자와 사용자까지 강제 가입 대상자로 확대하였고, 1995년 1월 5일 법률 제4909호로 개정된 법률(1995년 7월 1일부터 시행됨)에서 당연 적용 대상을 농어촌 지역 거주자와 도시 지역 거주 농어민으로 확대하였으며, 다시 1998년 12월 31일 법률 제5623호로 개정된 법률(1999년 4월 1일부터 시행됨)에서는 적용 대상을 전 도시 지역 거주자로 확대하였다.


Ⅲ. 국민연금제도의 성격

국민연금과 같은 사회보험은 사회보장 사상에 그 뿌리를 둔 제도로써 노동보험을 중심으로 하여 발전해 온 것이며, 노동보험은 원래 노동능력을 상실한 근로자를 중심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그 후 사회보험은 노동 기회를 상실한 근로자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발전하였으며, 점차 그 대상 영역을 근로자에게만 한정하지 않고 전 국민에게까지 확장되었다.

그리고 헌법재판소는 국민연금 강제가입과 관련한 헌법소원의 판결문에서 사회보험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중요한 원리가 적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①사회보험에서 보장하는 소득보장의 수준은 최저생활 수준 이상이어야 한다. ②기여와 급여에 있어서 고소득자는 높은 비율의 기여와 낮은 비율의 급여를, 저소득자는 낮은 수준의 기여와 높은 비율의 급여가 행하여져 결과적으로 사회 계층 간에 소득재분배 효과가 나타나야 하며, 이때 어느 정도 수준으로 소득재분배의 효과를 추구할 것인지의 여부는 사회적 효율성과 개별적 공평성이라는 두 가지 목표 사이에서 적절히 선택된다. ③사회보험의 적용에 있어서는 구성원 전체의 통합과 국민연대의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원칙적으로 적용 대상을 전 국민 또는 특정 계층을 대상으로 입법한 경우에는 그 집단에 속한 전원에게 적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④사회보험의 운영에 필요한 재원은 사용자, 피용자, 그리고 국가가 분담하여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사회보험의 일종인 국민연금제도는 국민의 노령·폐질 또는 사망에 대하여 연금 급여를 실시함으로써 국민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에 기여할 목적으로(국민연금법 제1조) 그 부담을 국가적인 보험을 통하여 분산시키는 사회보험제도이다. 우리 헌법은 제34조 제1항에서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여 국민들에게 일반적인 생존권 내지 생활권을 보장하고 있으며 나아가 제2항에서는 국가의 사회보장·사회복지 증진의무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또 제5항에서는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에 대한 국가의 보호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보장에 관한 헌법 규정을 구체화하기 위하여 사회보장 기본법은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을 규정하고 있으며, 그 제3조 제1호에서 “사회보장이라 함은 질병·장애·노령·실업·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공공부조·사회복지 서비스 및 관련 복지제도를 말한다”고 규정하여 사회보험을 사회보장의 한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제3조 제2호에서는 “사회보험이라 함은 국민에게 발생하는 사회적 위험을 보험방식에 의하여 대처함으로써 국민건강과 소득을 보장하는 제도를 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IV. 설계 내용 및 문제점

국민연금은 정부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며, 가입 대상자는 예외 없이 모두 가입해야 한다. 가입 대상자는 국내에 거주하는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이며, 이는 사업장 가입자·지역 가입자·임의 가입자·임의계속 가입자 등 4종류로 구분된다. 사업장 가입자에는 가입이 강제되는 상시 5인 이상의 근로자를 사용하는 당연 적용 사업장 가입자와 그 이외의 임의적용 사업장 가입자가 있다. 지역 가입자는 사업장 가입자 이외의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국민이다.

국민연금법에 의한 급여의 종류는 노령연금, 장애연금, 유족연금과 연금 수급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중도 탈락자에게 연금 보험료의 해당 액수를 반환하는 반환 일시금이 있다. 모든 종류의 연금은 가입자의 소득과 가입 기간을 기준으로 한 기본 연금액과 부양가족을 고려한 가족 수당적 성격을 가지는 가급 연금액을 합산한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기본 연금액은 원칙적으로 ①연금수급 전년도의 평균소득월액(가입자 전원의 표준소득월액의 평균치)과 ②가입자 개인의 가입기간 중 매년의 표준소득월액의 평균액을 합산한 금액에 1,000분의 1,800을 곱한 금액으로 한다.

국민연금의 재정은 가입자 및 사용자로부터 징수한 연금 보험료를 주된 재원으로 한다. 국민연금의 적용대상에 따른 보험료율과 보험료율의 조정은 <표 1>과 같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지역 가입자와 임의 가입자의 부담은 2000년 6월까지 3%이던 것이 2000년 7월부터 2005년 6월까지 매년 1%씩 증가하며 2005년 7월부터는 9%로 책정될 예정이다. 또한 사업장 가입자에 대한 보험료율은 1988∼1992년에 3%이던 것이 1993∼1997년에는 6%로 올랐고 1998년 이후 9% 수준에 머물러 있다. 보험료는 가입자의 월표준 소득액에 보험료율을 곱한 금액으로서 사업장 가입자의 경우에는 가입자와 사용자가 각각 절반씩 부담하며 지역·임의·임의계속 가입자는 가입자가 전액 부담한다.

또한 우리의 국민연금제도는 미국의 부과식(pay-as-you-go system)과는 달리 적립식(funded system)을 택하고 있다. 부과식은 젊은층으로부터 연금을 거두어 노년층에 지급하는 방식이며, 적립식은 자신이 불입한 보험료를 연금공단이 운용하여 일시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방식이다. 부과식은 노령화의 진전과 함께 젊은층이 부담해야 할 연금보험료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에 노령화 사회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으므로 적립식이 더 나은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1) 지속 가능성
현행 국민연금제도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지속 가능성이 낮다는 점이다. 이는 비단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소득재분배가 주 목적으로 고안된 모든 나라의 연금제도가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다. 우선 국민연금을 통하여 다음 세대로부터 현 세대로 소득재분배가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1988년 국민연금이 처음 도입되었을 때 연금 보험료율은 소득의 3%이던 것이 현재는 9%이다. 따라서 초기 가입자들은 이득을 보지만 나중에 가입한 사람이나 앞으로 노동시장에 진입할 차세대들은 높은 보험료를 내고 은퇴 후 받아가는 급여액은 작아 손해를 보게 된다. 더구나 한국과 같이 저비용-고수익으로 고안된 국민연금제도 하에서는 더욱 그렇다. 지금은 1988년에 비해 보험료율이 올라 그 계산치가 약간은 다르겠지만 한 연구에 의하면 1988년 40세이던 사람이 20년 동안 국민연금에 가입한 후 받게 되는 연금 수혜액(배우자 혜택 포함 현재가치)은 저소득층의 경우에는 총 납입보험료(현재가치)의 3∼5배, 고소득층의 경우에는 2∼2.5배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한국의 국민연금은 자신이 불입한 보험료를 국민연금공단이 운영하여 일시 또는 연금으로 지급하는 적립식이다. 미국과 같은 부과식은 노령화 사회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노령화의 진전과 함께 젊은층이 부담해야 할 연금보험료가 계속 증가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단점을 보완하고자 한국의 국민연금은 적립식으로 고안되었다. 자신들이 적립한 보험료를 노년이 되었을 때 지급받는 방식이다. 따라서 불입한 금액과 연금관리공단이 수익사업을 통하여 벌어들인 수익만큼을 더하여 지급받는다면 연금기금 고갈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연금제도는 위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저비용-고수익으로서 가입자는 평균적으로 불입액의 3배를 지급받는다. 문제는 연금기금을 운용하여 이런 정도의 수익을 올려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세대의 불입액은 커지고 급여액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불입액이 커지는 데도 한계가 있고 급여액이 줄어드는 데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국민연금은 지속될 수 없다. 추정에 따라 다르지만 2040년대에는 연금기금이 완전히 고갈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더구나 정부가 공공자금관리기금법에 의거하여 공공부문에 투입한 금액의 전부 또는 일부는 세금을 걷어 상환하여야 하지만, 이의 상환이 어려울 경우 연금기금 재정 고갈 시기는 앞당겨질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하여 국민연금 개정법안이 국회에 제출되었으나 아직 심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현재와 같이 설계된 국민연금은 자생적으로 지속되기 어렵고 정부 재정으로 적자를 보전할 수밖에 없는데, 이것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2) 정부 독점
현행 국민연금은 정부가 독점적으로 공급한다. 그러나 정부가 연금 상품의 공급을 독점해야 할 논리적 근거는 취약하다. 첫째, 소득재분배가 목적이라면 정부 독점적 연금이 아니라 정부의 조세권이 유용한 수단이 될 것이다.

둘째, 국민연금뿐만 아니라 무엇이든지 정부가 독점하면 민간이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극히 제한된다는 점에서 경제에 대한 국가 권력이 확대되고, 정부가 연금 판매를 독점할 경우 연금 수요자가 경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득을 박탈당하게 된다. 또한 정부 독점으로 인한 폐해는 다른 경쟁자가 없기 때문에 그 성과를 가늠하기가 어렵다. 달리기에 출전한 선수가 단 한 명이라면 그 선수의 기록이 어느 정도로 우수하거나 열등한 것인지 판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나 설령 그것이 시장 구조적으로는 독점이라고 하더라도, 정부에 의한 진입 장벽이 없는 상태에서의 민간 독점은 항상 잠재적 진입자에 의한 경쟁을 의식하여 경쟁적으로 행동하므로 정부 독점보다 훨씬 더 효율적이며, 전혀 문제 삼을 일이 아니다.

셋째, 정부가 연금 상품의 공급을 독점함으로써 규모의 경제가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정부가 민간에 비해 비교우위에 있어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수 있다면 민간의 연금 판매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논리적 모순에 봉착하게 된다. 민간과 경쟁하더라도 정부의 연금 사업은 번창할 것이기 때문이다. 비교우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연금 판매를 독점한다면 연금 수요자가 경쟁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익을 박탈하게 된다.

넷째, 정부 독점이 연금 가입의 의무화를 달성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정부 독점만이 유일한 길은 아니다. 연금 가입의 의무화가 목적이라면 민간이 판매하는 연금 상품 중 자신의 선택에 의해 가입했다는 증명을 제출하도록 법으로 정하면 된다.

다섯째, 각 개인은 무지하기 때문에 정부가 연금 전문가들로 하여금 잘 설계된 연금을 고안하도록 함으로써 무지한 사람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소비자가 무지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적 오만의 결과이다. 스티글러(Stigler)의 지적처럼 소비자는 자신을 위한 고유한 방어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민간에 의한 연금 판매가 허용되면 각 연금 취급 기관은 경쟁적으로 금융 기법을 개발하고 자금 운용을 효율적으로 할 유인을 가지며, 연금 소비자들은 이 중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상품을 선택하게 될 것이다. 이 모든 사항을 종합해 볼 때, 정부가 연금 판매를 독점해야 한다는 논리적 근거는 매우 취약하다. 정부 비대화와 개인의 자유 제한에 따른 비용만 있을 뿐이다.

(3) 강제 가입
연금 가입을 강제로 의무화하는 것도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앞 절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정부가 연금 판매를 독점함으로써 가입 대상자로 하여금 모두 연금에 가입하도록 할 수 있는 이점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연금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논리 역시 온정주의에 입각한 것인데, 이는 노후에 생활 능력이 없는 사람이 연금에도 가입하지 않아 곤궁하게 사는 것이 가슴 아픈 일이라는 것이다. 물론 각 개인이 충분히 이성적이어서 모두 다 연금에 가입한다면 강제할 필요가 없겠지만, 모든 개인이 다 그렇지만은 않기 때문에 좀 더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다수가 다소 이성적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하여 대신 판단해 주고, 따라서 그들도 강제적으로 연금에 가입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리드만(Friedman)의 지적처럼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은 개인들이 실수할 자유도 신봉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개인들이 현재와 미래의 소비에 대해 선호하는 바는 각각 다르다. 어떤 사람은 오늘의 소비생활을 즐기기 위해 미래를 위한 저축을 게을리 할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은 반대의 선호를 가질 수 있다. 어느 누가 어떤 사람의 소비 행태는 옳고 또 어떤 사람의 소비 행태는 틀렸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는 없다. 각 개인이 스스로 선택할 일이다. 그러나 연금에 강제적으로 가입하도록 하는 것은 현재 소득의 일부를 노후 소비를 위하여 이연(移延)시킬 것을 강제하는 것이다. 즉, 개인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소득의 일부를 연금 구매로 처분하도록 강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또한 연금 가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사람이 늙어서 자신을 부양할 능력이 없는 경우, 그 결과로 자신만 고통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 또는 사회 전체에 부담을 지운다는 말이다. 많은 사람이 연금에 가입하지 않고 또 자신을 부양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다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폐를 끼치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주장의 타당성은 그러한 사람이 연금 가입 대상자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달라진다. 거의 모든 사람이 늙어서 자신을 부양할 능력과 방법을 가지고 있다면, 그렇지 못한 몇 명의 사람들 때문에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강제하는 것은 타당성이 없다. 전통적으로 한국이나 다른 나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노후 생활을 자식들에게 의존해 왔다. 그러나 근래에는 자식들에게 의존하는 형태가 줄어들고 스스로 재산을 모아 자신의 노후 생활을 부양할 방법을 강구하거나 연금을 구입하는 방식으로 변천해 오고 있다. 어떠한 형태로 자신의 노후 생활 대책을 세울 것인지는 전적으로 자신이 판단할 문제이기 때문에 온정주의에 입각한 연금의 강제 구입은 그 정당성을 부여받기 어렵다.


Ⅴ. 국민연금 개선 방안

현재 국민연금은 그 수혜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재정이 건실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연금 수혜자가 늘어나기 시작하면 보험료 수입과 그 동안의 적립액으로 지출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재정은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연금 수혜자가 많아지는 시점에 연금기금이 고갈되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국민연금의 민영화만이 앞으로 다가올 국민연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다. 그리고 국민연금 민영화를 위해서는 성공 사례인 칠레의 연금 개혁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1) 칠레의 민영화 사례
칠레의 사회보장제도는 1924년에 도입된 것으로서 지구상에서 매우 긴 역사를 가진 제도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만성적인 연금재정 적자로 1970년대 말 더 이상 지속 불가능한 상태에 도달하였으며, 근로자와 사용자가 납부하는 사회보장세는 임금의 20%를 상회하고 있었으나 연금급여의 28%가 일반 세금수입에서 지급되고 있었다. 그러나 1978∼1980년 칠레의 노동부 장관이었던 호세 삐녜라의 주도 아래 1981년 5월 1일부터 정부 독점적 부과식에서 민간주도의 적립식으로 전환함으로써, 개인의 선택의 자유를 증진하고, 연금기금운용기관 간의 경쟁을 유도함과 동시에 적립액과 수익률만큼 연금으로 지급하도록 함으로써 연금기금 재정을 건실화하였다.

칠레 연금 개혁의 요체는 개인연금저축구좌(PSA: Pension Savings Account)와 연금기금을 운용하는 민간연금기금관리회사(AFP: Pension Fund Administration Companies: Administradoras de Fondos de Pensiones)인데, 이 제도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근로자는 사용자로 하여금 매월 자신의 임금 중 10%를 PSA에 연금기금으로 의무적으로 적립하도록 하는데, 이는 근로자가 은퇴 후 받을 연금 수준을 결정하는 근간이 된다. 이에 더하여 근로자는 임금의 10%를 추가하여 자율저축 형식으로 적립할 수 있는데, 이 부분은 면세가 가능하기 때문에 저축 유인을 제공한다. 또한 근로자는 자신이 선택한 AFP에 연금기금 운용을 맡기므로 각 개인의 선택의 자유가 보장되며, 사용자는 더 이상 근로자의 연금기금의 일부분을 부담하지 않았다. 따라서 사용자와 근로자 모두 사회보장세를 납부하지 않으므로 노동비용이 낮아졌다.

둘째, PSA 구좌를 가진 근로자는 세 달에 한 번씩 자신의 구좌에 적립된 연금액, 연금기금의 운용 실적 및 내용 등을 통보 받는다. 운용 실적과 그 내용에 불만족스러운 근로자는 다른 AFP로 1년에 4번까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따라서 AFP 간에는 더 높은 수익률과 기금운용에 소요되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새로운 금융기법을 개발하는 등 경쟁이 생기게 된다. 경쟁이 전제되는 만큼 PSA를 가진 근로자에 대한 서비스도 다양하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면, 근로자가 자신의 구좌에 적립된 금액과 은퇴하고자 하는 연도에 근거하여 장래 지급 받을 연금 급여액을 미리 계산해 볼 수 있고, 특정 나이에 은퇴하여 매월 일정한 연금 급여액을 받기 위해서는 매월 얼마씩 납입해야 하는지도 쉽게 알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즉, 근로자가 자신이 원하는 연금 급여액과 은퇴 연령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다. 한편 AFP는 신탁기금을 운영하여 자신이 선택한 증권과 채권 등에 투자하며, 정부는 각 투자 부문과 포트폴리오 총 합계의 상한선만 규정하고 있다. AFP 회사들이 더 발전해감에 따라 이러한 규정은 점차 완화될 예정이다.

셋째, PSA 시스템은 근로자를 고용하는 회사와 완전히 독립되어 있으므로 근로자가 자신의 PSA를 항상 휴대한다. 따라서 근로자가 재직하는 회사의 도산과 사용자 주도의 개인 연금기금 파산으로 근로자가 입을 손해는 없다.

넷째, 은퇴 시 근로자는 두 가지 지급방법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우선 PSA에 적립된 자금을 이용하여 민간 생명보험회사와 종신연금계약을 체결하고, 근로자의 부양가족에 해당하는 유족연금을 포함하여 물가연동이 지수화된 월수입을 종신토록 받을 수 있다. 칠레 금융시장에서는 지수화(indexed)된 채권거래가 가능하다. 다음으로 은퇴자는 그의 기금을 PSA에 그대로 남겨두고 자신과 부양가족의 기대 수명에 의한 제한 사항에 따라 계획적인 급여 인출을 할 수 있다. 물론 은퇴자 사망 시 PSA의 잔여 기금은 상속재산이 된다. 또한 종신연금계약에 필요한 금액, 또는 최종 임금의 70%에 해당하는 계획적인 급여 인출을 위해 필요한 금액을 PSA 적립금에서 일시금으로 인출할 수 있다.

다섯째, 은퇴 연령이 될 때까지 최소한 20년간 연금기금을 납부하였으나, 법정 최소 연금보다 적을 경우에는 근로자의 PSA가 고갈된 뒤 국가로부터 연금을 받는다. 또한 연금기금 납입 기간이 20년에 미달한 사람은 더 낮은 수준의 복리후생 형태의 연금 급여를 신청할 수 있으므로 어느 누구도 사전(事前)에 가난한 사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여섯째, 제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필히 과도기적 진통이 수반되는데, 칠레는 이미 연금을 받고 있는 사람에게는 연금제도 개혁으로 인한 어떠한 손해도 입지 않도록 보장하였다. 즉, 기존의 부과방식 하에서 이미 연금기금을 내고 있던 근로자에게는 현 제도에 머물거나 PSA 시스템으로 바꿀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함으로써 그 비용을 최소화하였다. 전환 기한인 1986년까지 90%가 PSA 시스템으로 전환하였고, PSA로 전환하는 근로자에게는 물가연동이 지수화되어 4%의 실질 수익률을 가진 인정채권(recognition bond)으로 발급하여 이를 자신의 PSA에 예치토록 하고, 시장에서 거래 가능하도록 하였다. 또한 노동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사람은 PSA에 가입하도록 함으로써 과거의 부과식 시스템에 남아있던 마지막 근로자가 은퇴함과 동시에 부과식 시스템은 종료되도록 하였다.

마지막으로 과도기의 재정문제 해결에 있어서 칠레는, 기금 증식을 통하여 적절한 연금 급여액을 보장하기 위한 기여금은 사회보장세보다 일반적으로 낮으므로 그 차액의 일부를 사회보장세로 전용함으로써 임금 감소나 노동비용이 증가하지 않게 하였고, 국채 등 부채를 이용하여 차세대와 부담을 나누었으며, 이러한 채권은 AFP가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구입하였다. 이 부채는 과거 시스템에 의한 연금 수급자가 더 이상 없을 때 사라진다. 또한, 과도기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정부의 낭비적 경비 지출 감소 유인이 작용하였고, PSA 시스템으로 경제 성장률이 높아져 조세수입이 실질적으로 증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개혁의 결과는 어떠했을까? 무엇보다도 연금기금의 고갈 가능성을 제거하여 제도 자체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또한, 대규모 투자기금의 형성으로 효율적인 금융시장과 관련 기관의 발전을 이룩하고, 자본의 생산성 증대로 경제 성장률을 높였고, PSA 시스템 완성 후 대규모 공기업의 민영화를 통한 생산성 증대로 커다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선순환을 이룩하였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결과이다. 연급 수급액은 공적연금 시절보다 더 높아져 과거 10년간 받았던 임금의 70%를 상회하였으며, 국영 연금제도가 없어지니 당연히 정치가들은 더 이상 표를 의식하여 연금제도를 이용할 유인이 없어져 연금은 더 이상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서 좌우되지 않았다. 이제 PSA는 연금 가입자의 실질적이고 가시적인 소유권을 의미하게 되었으며, 은퇴 시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 되어 칠레 근로자는 증권시장이나 이자율 변화에 더 이상 무관심하지 않은 경제 참여 기회를 제공받고 있다.

(2) 한국의 국민연금 개선방안
우리의 국민연금 개혁을 위해서는 칠레의 연금 운영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첫째, 부과식은 노령 인구의 증가에 탄력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단점이 있으므로 현재의 적립식을 유지하되, 정부 독점을 폐지하고 민간도 연금 시장에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민영화가 우선되어야 한다. 물론, 정부 독점을 폐지해야 한다고 해서 정부가 연금 시장에 연금 상품을 공급하지 않아야 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도 원한다면 연금 판매를 하되 민간과 경쟁할 수 있는 제도로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민간의 연금시장 참여가 전제된다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이긴 하지만, 현재의 저비용-고수익 구조를 개선하여 개인이 불입한 보험료를 연금기금 운용회사가 올린 수익률만큼 더하여 지급하는 방향으로 개편한다.

셋째, 임금의 일정 비율을 연금으로 적립하도록 의무화하되, 은퇴 연령 및 은퇴 후 받고자 하는 연금 급여액을 기준으로 자신이 스스로 구체적인 연금 내용을 설계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물론 일정 비율을 연금으로 적립하도록 의무화하는 것은 '자유와 책임’의 원리에 반하는 강제 사항임에 틀림없다. 연금 가입 의무화로 인한 문제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모든 개인이 각자의 방법대로 노후에 대비한다면 이러한 의무조항은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개인이 다 그러하지는 않거나 그럴 수 없다면 최소한의 의무를 부과하는 것은 현실적인 타협이 될 것이다. 다만, 연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노후를 대비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개인에게는 예외가 될 수 있을 것이므로, 추이를 지켜보면서 보완해 갈 필요가 있다. 또한 소득의 일정 비율을 의무적으로 적립하도록 하므로 소득 파악 문제가 제기될 수 있으나, 민영화된 연금은 소득재분배 원리가 적용되지 않고 각 개인이 적립한 연금기금에 근거하여 연금 수급액이 결정되므로 소득 파악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지 않는다.

넷째, 제도 변화에 따른 과도기 문제는 칠레 사례와 유사한 방법으로 해결한다.

마지막으로 국민연금제도의 소득재분배 기능은 현재 시행 중인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를 수정·보완하여 통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국민연금의 본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며, 사회 전체의 복지비용 추계도 용이해진다.


Ⅵ. 결어

거의 모든 국가들의 연금제도가 그러하듯이 현행 한국의 국민연금제도는 인기 영합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국민연금제도는 연금 수급자가 많지 않은 지금 개혁을 단행하지 않으면, 연금 수급자가 많아지는 시점에 연금기금이 고갈되어 걷잡을 수 없는 사회적 혼란을 초래할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국민연금 개편 방안은 연금 급여액(소득 보전률)을 낮추고 보험료율을 높여 연금기금의 고갈 시점을 연기할 수는 있으나, 종국적인 고갈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개혁 방안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땜질식 개편은 차세대 연금 수급자들의 저항에 부딪쳐 그 시행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다.

앞서 살펴본 칠레의 사례는 앞으로 우리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준다. 개인의 '자유와 책임’ 원리에 입각한 민영화를 단행함으로써 정부 독점으로 인한 폐해를 제거하고 건실한 연금을 만들 수 있다. 정부도 원한다면 연금 판매를 하되 정부재정에 의한 연금기금 보조는 법적으로 금지하고, 다만 정부가 판매하는 연금뿐만 아니라 민간이 판매하는 연금 모두에 대해 최저 연금 수급액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정부 보조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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