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가난에 시달릴 때 대만은 왜 부유해졌는가?

Jose Nino / 2019-07-09 / 조회: 328


cfe_해외칼럼_19-140.pdf


*본 내용은 아래 기사 및 칼럼 내용을 요약 번역한 내용임*

Jose Nino,

Why Taiwan Grew Rich While the Mainland Starved

23 January, 2019


지난 몇 달 동안 중국과 대만 사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시진핑 중국 주석은 최근 대만을 중국 본토에 통일시키고 싶다는 뜻을 밝혔고 이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무력사용 또한 염두에 두었다.


1949년 국공 내전 이후 대만이 중국 본토로부터 분리된 이후에도 중국은 그들을 중국에 속한 한 성()으로 취급할 뿐 대만을 결코 독립적인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2019년에도 양국의 관계는 여전히 원만하지 않다. 대만은 최근에 중국의 잠재적인 침략에 대비해 대규모의 군사훈련을 시행하였다. 중국 공산당은 대만을 무력으로 합병하여 대만을 그들과 같은 정치체제로 끌어오는 것을 가장 원할 것이다. 대만은 반면에 북경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많을 것이다.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경제체제의 건전성은 높은 생활 수준과 함께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


1980년대 이후 대만은 자유시장 정책을 채택하여 국가의 경제발전을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2018년 헤리티지 재단(Heritage Foundation)의 경제 자유 지수에 따르면 대만은 1인당 GDP 48,095달러를 자랑하며 세계에서 13번째로 자유로운 경제체제를 가진 나라로 꼽혔다. 이 섬나라는 2018년 프레이저 연구소(Fraser Institute)의 인권 자유 지수 상에서 10위를 하며 극찬을 받았다.


대만이 어떻게 가장 두드러진 경제 성장의 기적 사례 중 하나가 되었는지는 21세기로 나아가는 시장 개혁에 대한 확고한 헌신과 혼합된 냉전 시대의 정치 이야기다.


대만은 원래 중국 본토의 일부였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은 1928년 국민당의 총재인 장제스가 집권하기 전까지 정치적 분열을 겪고 있었다.


같은 시기 게릴라에 충실했던 마오쩌둥이 이끄는 공산주의자들은 점점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결국 장제스의 국민당과 충돌하게 되었다. 1937년 일본의 침략은 국민당과 공산당을 당분간 연합하게 했다.


하지만 세계 2차 대전이 끝나자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공격하기 제일 좋은 기회라고 보았다. 공산주의자들은 1949년에 있던 중국 공산 혁명 시기 동안 중국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었고, 국민당은 지금의 대만으로 후퇴하여 중화민국을 수립하였다.


대만의 독립국으로서 지위는 초기에 장제스의 권위적인 통치 때문에 다소 위태로웠다. 그의 철권통치 하에 대만은 보호무역주의와 전략산업에 보조금을 주는 수입 대체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토와는 달리 대만은 그래도 외관상 재산권이 유지되었으며 민간 산업체가 숨 쉴 수 있는 여력을 남겨두었다. 1952년부터 1982년까지 대만의 평균 성장률은 8.7%였고 국민 총생산은 1965년부터 1986년까지 360%가 증가하였다.


1975년 장제스의 죽음 이후 대만은 경제정책에 보다 간섭을 줄이는 접근법을 채택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 대만은 시장 경제로 잘 나아가고 있었다.


2000년대 동안, 대만은 상당한 규모의 긴축 재정을 시행하였다. 특히 2001년부터 2006년까지 대만은 몇 가지 지출을 동결시켰는데 이는 민간 부문이 정부보다 빨리 성장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긴축 재정의 시기 동안 정부 지출은 총 GDP만큼 감소했다.


다른 국가들과는 달리 대만은 시장 개혁에 더더욱 힘썼다. Chirs Edwards는 2010년에 대만이 법인세를 20%에서 17%로 인하했다고 지적하였다. 현재 이 세율은 선진국 중에서 가장 낮은 법인세율이다.


반면에 중국은 이 섬나라로부터 한두 가지를 배울 수 있다.


20세기 내내 중국의 역사는 경제 전체주의 중 하나였다. 공산주의 독재자 마오쩌둥 치하에서 중국은 정부가 손아귀 안에 중국 경제를 집산화 시키기 위한 대규모 노력인 대약진 정책을 시작하였다. 시장의 메커니즘은 이 안에 아예 없었다.


대약진 정책이 중국의 생산성 부문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농업 부문에 가한 중국 정부의 과한 간섭으로 인해 수백만의 기아가 발생하였다. 마오쩌둥의 명성은 이 실패한 사회주의 실험으로 타격을 입었지만, 이는 1966년부터 1976년까지 일어난 문화대혁명과 같이 다른 방법의 사회공학을 추구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


다행히 덩샤오핑이 정계에 등장하자 이성적인 사람들이 만연해졌다. 덩은 국가를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해서는 새로운 길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는 해외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보일 경제특구의 설립, 토지의 사유화 등 몇 가지의 시장 개혁 정책들을 시행하였다. 제한적인 범위에서 시행되었지만, 중국의 개혁은 즉각적인 영향을 미쳤다. 1978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의 연간 GDP 성장률은 9.5%에서 11.5% 사이로 추정됐다.


그렇기는 하지만 중국은 아직도 나아갈 길이 멀다. 실제로 대만의 지속적인 자유화에 대한 노력은 대만이 중국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해주었다. 


중국은 헤리티지 재단의 경제 자유 지수에서 110위에 불과하지만 대만은 부럽게도 13위를 차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프레이저 연구소의 인권 자유 지수에서 의심스러운 점수인 135위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대만은 10위에 있다. 중국의 1인당 GDP는 높지 않은 15,399달러인 반면 대만의 1인당 GDP는 48,095달러이다.


대만은 국가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교훈을 제공한다. 하이에크는 그가 작은 정치 단위가 경제의 자유와 번영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했을 때 실제로 그는 대단한 사실을 발견해냈다. 


그의 저서 “노예의 길”에서 하이에크는 스위스와 네덜란드와 같은 국가들이 작은 정치 단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을 칭찬했다:


나는 스위스와 네덜란드와 같이 작은 국가들의 사례에서 영국과 같이 더 부유하고 더 큰 나라들이 배울 점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작은 국가들이 존재하기에 적합한 세상을 만들 수 있다면 우리 모두가 승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은 2,300만 명이 넘는 인구를 보유한 국가인 반면 중국은 14억 정도의 인구를 가졌다.


대만의 사례는 번영을 촉진하기 위한 수단으로 국가들이 화합하는 사회적인 환경을 유지하는 동시에 규모를 축소하고 심지어 관할 지역들을 분리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을 입증한다.


정치적 안정성에 있어서 더 큰 것이 항상 더 나은 것은 아니다.


번역: 이선민

출처: https://mises.org/wire/why-taiwan-grew-rich-while-mainland-sta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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